창조절, 행복한 사람

창조절 아홉번째 주일 / 11월 첫번째 주일
신명기 33:1, 26-29, 마태복음 5:1-12
창조절, 행복한 사람
최성혜 목사

 

행복은 개인의 감정에 관한 것이고 주관적이어서 단일한 기준과 틀을 만들기가 어렵습니다그러나 분명한건행복은 단순히 즐거운 감정이나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행복은 몰입하거나보람된 일을 행하거나어떤 목표를 이루어내고자하는 의욕으로 경험되어집니다그래서 어떤 사람이 티비 보는 것을 좋아한다하더라도 하루종일 티비를 본다고해서 결코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단순히 내가 지금 좋아하는 일즐거운 일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것을 이루어가는 상태가 행복의 과정입니다.

행복은 찰나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좀 더 높고좀 더 깊은 차원이 연루되어지는 문제입니다결국 본능에 충실한 삶이 아니라보다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추구할 때 느끼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입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최고의 선이 행복이며이 행복은 심리적인 상태가 아니라인간이 활동을 수행할때 얻는 것이라고 말합니다그래서 행복의 정의를 규정하는데 중요한 개념이 바로 ()’입니다덕은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실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그러나 이런 철학적 사상을 실천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힘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분명 사람은 윤리적이고 자기충만한 삶을 살 때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우리가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동력을 가하는 힘의 근원이 무엇일까요오늘 나눈 성서의 말씀을 통해 이에 대한 물음을 생각해보려합니다.


종교가 행복이나 복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합니다성경에도 복에 대해 수없이 언급을 하고 있고또 예수님께서도 직접 ‘산상수훈이라고 알려진 이른바 ‘팔복(八福)’의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그런데 예수께서는 당시나 현세에서 제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행복의 개념을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의 설교를 통해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의 과정을 통해욕심을 내려놓는 과정을 통해 그리고 갈등을 해결하고 화해와 평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통해 복있는 사람이 됨을 가르쳐주셨습니다사랑과 겸손을 실천하고이 땅 위에 정의와 평화를 이루어가는 이런 실천적 모습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일 먼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피조물인 인간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 앞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세상 부귀영화를 누리더라도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야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그렇기때문에 인간의 가난한 실존적 존재를 인정하며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우치는 사람이 천국을 소유하는 사람이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또한 인간이라는 존재의 약함과 자기 한계를 깨달은 사람은 겸손하게 삶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그래서 슬퍼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보며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압니다이렇게 마음이 정화되고 이웃을 향한 원망이 아닌 함께 슬퍼하고 아파할 줄 아는 마음을 지닌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 합니다마음을 열어 타인을 받아들이고그들의 상처와 허물까지도 따뜻하게 품에 안는 사람예수님은 이런 온유한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구약의 약속을 되새겨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말씀하시며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이 복이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하나님의 본성은 자비로우시고 의로우신 분입니다이 땅에 하나님의 의를 실천하며그리스도의 자비를 나누는 사람이들이 곧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하나님은 이들에게 복이 있다하십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사람은 누구나 욕구가 있습니다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적당한 타협은 괜찮다는 사회적 이기심 앞에서세상의 융통성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깨끗하고 투명한 마음을 지키는 자가 복있는 사람이라 가르치셨습니다. ‘자기의 의에 사로잡히지 않고청명하게 성찰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이 세상은 경쟁과 효율성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갈등과 분열과 폭력이 일상이 된 이 현실 세계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절대 만만해보여서는 안된다고 세상은 가르치지만예수님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복이 있다 하십니다자비와 의의 실천이 개별적 선행에 머무르지 않고창조주 하나님의 주권 아래의 관계속에서 평화를 지키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즉 나눔과 돌봄과 존중과 섬김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 평화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가르치신 이 말씀들은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함께 선포하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또한 이 말씀은 주님의 가르침에 동참하는 이들이 누릴 축복의 선물입니다그러나 이러한 복의 목표는 저절로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거기에는 치러야 할 수고의 비용이 있고 마땅히 감내해야 할 장애가 적지 않습니다세상은 거친 현실을 안전하게 살아가려면 눈을 딱 감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지만예수님은 의를 이루기위해 포기하지 않고 전진해 나가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늘의 말씀을 통해행복은 단지 우리의 현 상태에 대한 만족이나상대적으로 느껴지는 만족감이 아니라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하고온유한 자가 되어야 하며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합니다더 나아가 예수님은우리가 일반적으로 복 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오히려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어떻게 가난한 사람이슬퍼하는 사람이배고픈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고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성서일과를 통해 얼마전까지 묵상한 모세의 인생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모세는 오늘 함께 나눈 신명기 말씀을 통해,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마치며약속의 땅을 건너다보면서 정착생활의 경험이 없이 광야에서 자란 후세대들에게 복을 빌며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이스라엘아너희는 복을 받았다주님께 구원을 받은 백성 가운데서 어느 누가 또 너희와 같겠느냐? ( 33:29)” 모세와 함께 한 40년의 광야생활을 회상할때과연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복되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꼈을까요먹는 것입는 것자는 것이 불편했음은 물론이고하루 앞이 불투명한 절망적 상황을 긴 세월 감내하며 살아야 했습니다또한 이제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이들의 앞날은 여전히 암담하기만 합니다저 땅에 들어가더라도 어떻게 무엇을 해서 먹고 살지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약속된 것이 없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는 곳마다 정착민들과 끊임없이 마주하며 싸웠고앞으로도 싸워야하는 삶의 고난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이스라엘이여너희는 복을 받았다라고 선언합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나 약속의 땅에 도달하는 광야의 여정 가운데에서 모세는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그러나 굽이굽이마다삶이 곤두박질치는 힘든 여정 가운데서도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선택하였습니다그리고 고통스런 광야의 인생길에서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었기에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삶을 선택하였기에 복이 있다 말할 수 있었습니다나그네 인생길에서 때로는 쓰러지고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날 수도 있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선택하였기에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다 말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재미있는 일만 하며 사는 것이 결코 행복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인생의 목표를 달성한 사람만이 행복을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목표에 미달한 사람도실패한 사람도 모두 행복할 수 있습니다부와 명예를 얻은 삶이고난없이 순탄한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닙니다십자가에 달리기까지 하나님과 함께했던 예수님의 고난의 삶이 우리에게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십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에는 절망할 때가 있고고난의 시간이 지날 때가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절망과 고난의 인생의 길에서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함으로죽음의 어둠을 부활의 영광으로 이겨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켜 행함으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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