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요일, 두려움과 외로움과 연약함

성금요일 / 2022년 4월 15일
성금요일, 두려움과 외로움과 연약함
정해빈목사

Good Friday in France

 

예배의 부름 / 이사야 53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님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님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아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고난을 당하고 난 뒤에 그는 생명의 빛을 보고 만족할 것이다. 나의 의로운 종이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자기가 짊어질 것이다. 아멘.

공동기도 / 다같이

사랑의 하나님,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시고 운명하신 성금요일을 맞아 회개와 고백, 감사와 결단의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나라의 기쁜 소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셨습니다. 어둠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셨고 굶주린 이들을 먹이셨고 병든 이들을 고치셨고 사람을 괴롭히는 악한 영을 꾸짖으셨습니다. 사탄의 권세 아래 신음하는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셨고 사탄의 통치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일요일에는 어린 나귀를 타시고 평화의 왕이 되어 겸손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월요일에는 부패하고 타락한 예루살렘 성전을 심판하셨고, 화요일에는 성전 제사장들 및 헤롯 당원들과 토론하셨고, 수요일에는 마르다/마리아/나사로의 집에서 식사하셨고, 목요일에는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로마 군대 병사들에게 붙잡히셨습니다. 주님은 금요일 새벽 대제사장과 빌라도 총독에게 심문받으시고 오전 9시 십자가에 매달리셨다가 오후 3시 운명하셨습니다. 저희들을 위해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시고 불의에 저항하시고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신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하오니 모든 인류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저희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옵소서. 질병과 전쟁과 폭력이 물러가게 하시고 모든 인류가 주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폭력과 불의와 정복과 탐욕은 죽음의 길이요, 비폭력과 공의와 사랑과 섬김은 생명의 길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아멘.

찬송가 / 158: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성경봉독 / 마태복음 27:27-31, 45-50

총독의 병사들이 예수를 총독 관저로 끌고 들어가서 온 부대를 다 그의 앞에 불러모았다. 그리고 예수의 옷을 벗기고 주홍색 걸침 옷을 걸치게 한 다음에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그의 오른손에 갈대를 들게 하였다. 그리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 만세!” 하고 말하면서 그를 희롱하였다. 또 그들은 그에게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서 머리를 쳤다. 이렇게 희롱한 다음에 그들은 주홍 옷을 벗기고 그의 옷을 도로 입혔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그를 끌고 나갔다.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세 시쯤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이 이 말을 듣고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르고 있다.” 그러자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셔서 갈대에 꿰어 그에게 마시게 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하여 주나 두고 보자”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셨다.

찬송 묵상 / 153: 가시 면류관

설교 / “성금요일, 두려움과 외로움과 연약함

오늘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시고 운명하신 날을 기념하는 성금요일(Good Friday)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랑과 용서만 말씀하셨더라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빛으로 오셔서 세상의 어둠을 비추셨고 부패하고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폭력으로 억압하는 헤롯을 꾸짖으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먹이셨고 병자들을 치료하셨고 사탄을 쫓아내셨고 하나님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불의한 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주님을 죽였습니다. 십자가는 로마제국이 반역자들을 처형하는 데 사용하는 가장 잔인한 사형 도구였습니다. 기독교는 폭력과 불의와 전쟁승리를 통한 평화를 반대합니다. 기독교는 사랑과 섬김과 정의를 통한 평화를 선포합니다. 기독교는 고난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억울하게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고 그들의 손을 잡아주며 억울한 희생자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성금요일은 고통받는 이웃을 기억하고 그들의 고난에 참여하는 신앙이 참된 신앙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의인의 고난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6백만 명이 죽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5백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고 많은 민간인들과 젊은 군인들이 죽었습니다. 요즘 세계 강대국들은 저마다 강력하고 위대한 국가를 꿈꾸고 있습니다. 위대한 러시아, 위대한 중국을 꿈꾸고 있습니다. 소위 강대국들이 과거의 제국주의를 그리워하며 주변의 약한 나라를 침략할 때 인류는 파멸의 길로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제국의 길이 죽음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 생명의 길임을 모든 인류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최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NCK)는 202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 70년을 앞두고 캐나다연합교회(UCC)에 평화협정 1만인 서명운동을 요청했습니다. 현재 약 1,000명의 캐나다연합교회 교인들이 서명을 했습니다. (https://united-church.ca/social-action/act-now/korea-peace-appeal) 우크라이나와 중동과 한반도를 비롯한 지구촌 모든 곳의 공생과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겪으시면서 두려움과 외로움과 연약함을 경험하셨습니다. 이 3가지 감정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감정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계가 있는 피조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를 찾아오는 이러한 감정들을 무조건 부정할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대면하고 인정하고 수용할 때, 우리는 이 3가지 생각들과 동행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들판에 심은 꽃 한송이가 추위와 비바람을 겪은 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두려움과 외로움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견디고 통과하는 사람은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도우심과 이웃의 따뜻한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3가지의 부정적인 생각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겪으시면서 두려움을 체험하셨습니다. 목요일 저녁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마26:38)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주십시오” (마26:39)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인간이셨기 때문에 수치와 모욕과 고문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겪으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유혹에 대한 두려움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십자가의 고난을 회피하고 불의한 세력과 타협하자는 유혹도 있었고 반대로 칼과 창을 들고 폭력의 힘으로 악에 저항하자는 유혹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죽음과 유혹에 대한 두려움이 예수님을 사로잡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두려움의 감정을 숨기지 않으시고 정직하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고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고 불의에 무릎꿇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두려움을 극복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인생을 살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죽음과 실패와 인정받지 못함에 대한 두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서 두려움을 겪으셨고 두려움을 인정하셨고 두려움과 씨름하셨고 두려움을 극복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두려움을 통과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두번째로 예수님은 외로움을 경험하셨습니다. 빌라도 총독 앞에서 홀로 모욕과 멸시를 당하실 때 외로움을 경험하셨고 제자들이 모두 떠난 것을 보시며 외로움을 경험하셨고 십자가 위해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외치실 때 외로움과 버림받음을 경험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인생을 살면서 외로움과 버림받음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할 때, 자녀들이 모두 떠날 때, 홀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때, 나의 마음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 친구가 없다고 느낄 때,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다고 느낄 때, 우리는 외로움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외로움과 버림받음을 경험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는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잠시 침묵하실지라도 예수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2일간의 침묵이 있었지만 3일째 되는 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켜 주셨습니다.

세번째로 예수님은 연약함을 경험하셨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산 언덕을 올라가시다가 지쳐 쓰러지셨고 십자가 위에서는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육신을 가진 인간이었기 육신의 피곤함과 목마름과 연약함을 체험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육신의 연약함을 경험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점점 쇠약해지고 늙어갑니다. 하지만 우리의 겉사람은 쇠약해질지라도 우리의 속사람은 강건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또다른 장막, 또다른 부활의 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두려움과 외로움과 연약함을 경험합니다. 두려움과 외로움과 연약함이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보다 앞서서 두려움과 외로움과 연약함을 인정하시고 경험하시고 통과하시고 극복하셨음을 기억합시다. 우리보다 앞서 가신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고 우리를 절망에서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경험하시고 통과하시고 승리하신 것을 기억하며 두려움과 외로움과 연약함을 통과하고 승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설교 후 기도

사랑의 하나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겪어야만 하는 고통을 우리보다 앞서 경험하셨고 극복하셨고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걸어가신 주님을 바라보며 두려움과 외로움과 연약함을 회피하지 않고 통과하게 하옵소서. 부활의 영광이 다가올 때까지 주님과 더불어 이웃과 더불어 삶의 고통을 견디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 456(구찬송가 509):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축복 기도 / 인도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인생의 모든 고난을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을 따라가는 저희들 모두의 삶 위에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해 주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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