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나무들 / Rev. David Kim-Cragg

오순절 후 네번째 주일
창세기 (Genesis) 1:11-13, 호세아 (Hosea) 14:4-7
Rev. David Kim-Cragg

 

여름철에 할 수 있는 최고의 활동 중 하나는 나무 혹은 숲의 존재 안에서 앉아서그 영광을 감상하는 것입니다. 이 설교에서 저는 여러분이 비유적으로 그런 경험을 하도록 초대하고 싶습니다. 나무 아래에 앉는 것만큼 기도와 가까운 활동은 드뭅니다. 전 세계 많은 문화에서 나무 아래에 앉는 것은 평화, 지식, 깨달음, 안식의 상징입니다. 동아시아의 한자 “휴(休)”도 사람과 나무가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나무는 생태적으로, 문화적으로, 영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루터교 평신도 신학자인 게일 램쇼는 나무가 전 세계 모든 종교, 문화, 이야기에서 두드러지는 이미지라고 말합니다. 많은 문화와 종교에서 나무 이미지는 우주, 나라, 공동체, 개인의 온전함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모두 나무가 환경적, 생태적 보전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나무 보호는 그러한 노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의 나무들은 신성한 일, 신과의 교감, 세상과의 친교로 우리를 이끕니다. 성경의 나무들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램쇼는 그녀의 저서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먼저 생명의 나무에 애착을 가졌기에 살아 있는 나무를 돌보게 되었다. 비유가 물질로 나를 끌어들였다. 내가 연구한 종교에서 신화적이고 마법적이며 물리적으로 특별한 나무에 대한 이미지는 결국 우리 집 마당 나무들 […]나의 관심을 모았다. 이것이 비유의 힘이다. 우리는 새롭게 볼 수 있게 된다.”

이번 여름의 성경 나무 설교가 여러분에게도 비슷한 경험을 주길 바랍니다.

오늘은 특정 나무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성경 속의 나무를 다루겠습니다. 창세기의 본문은 성경에서 나무가 처음 언급되는 부분입니다. 나무는 하나님의 창조, 곧 셋째 날의 산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다양한 나무를 창조하셨음을 강조합니다. 또 그 씨앗이 흩어진다고 말하는데, 이는 나무가 세계 곳곳 다양한 환경에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즉 씨가 온갖 곳에 떨어지는 것을 생각나게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관대하고 스스로 번식하는 말씀의 표징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나무는 이러한 이유로 중심적 상징입니다. 성경 전체에 골고루 등장합니다. 구원 이야기는 에덴동산의 나무, 완벽한 낙원, 그리고 그 낙원을 위협하는 연약한 인간으로 시작됩니다. 나무는 창세기부터 인간의 타락과 구원의 가능성을 일깨웁니다. 족장 아브라함과 사라, 그 가족의 이야기에서도 중요한 순간마다 나무, 특히 마므레의 상수리나무가 등장합니다. 모세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시편에서는 시인 자신을 나무에 비유하여, 나무가 시냇물을 빨아들이듯 하나님의 말씀에서 지혜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나무에 달렸고(사도행전 13:29; 갈라디아서 3:13),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생명나무를 묘사합니다(계 22:22). 성경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사이를 나무가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솔로몬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에덴동산과 그 나무들은 성전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성전 건축에도 나무 이미지는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열왕기상은 “성전의 내실과 외실 사방 벽에 그룹과 종려나무와 핀 꽃을 새겼다.”고 기록합니다(왕상 6:29). 에스겔의 성전 환상(에스겔 40장)에도 종려나무는 중요한 이미지로 나타나며, 성전 전체가 마치 숲처럼 그려집니다.

성경에서 나무는 왕권과 국가 정체성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나무는 이스라엘 만이 아니라 그 시대 여러 민족의 신전에서도 선함과 연결된 상징이었습니다.

카나다 학자인 Arthur Walker-Jones는 시편에 나타난 나무 이미지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시편 1편 에서는 의인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합니다. 시편 80편에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향목”에, 시편 92편에서는 의인을 “종려나무, 레바논의 백향목”에 비유합니다. 시편 96편에서는 “숲의 모든 나무가 기뻐 외칠 것”을, 시편 148편에서는 “열매 맺는 나무와 모든 백향목”이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노래합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예가 있습니다.

이러한 희망의 이미지들이 성경에서 강렬한 이유는, 죄의 맥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비전에서 벗어나 죽음의 원인이 되었음을 자각해 왔습니다. 아름다운 나무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우리는 오늘날 캐나다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불타는 숲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산불의 규모와 강도는 우리 인간의 무절제한 소비에서 비롯된 새로운 현상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부정과 갈등에 머무는 듯합니다. 타오르는 나무들이 내뿜는 연기 너머로, 나무들이 과연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힘이 있을지 질문하게 됩니다.

기독교인의 삶에서 중심에는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나무와 교류하셨고, 많은 가르침에 나무를 비유로 사용하셨으며, 그 배경에도 나무가 함께했습니다. 어떤 본문들에서는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를 나무라고 하여 저주의 나무가 부활을 통해 생명나무로 변한다고 말합니다. 죽은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는다는 이사야의 “이새의 줄기”와 같이, 예수님을 새 생명의 상징으로 묘사한 본문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 우리를 가지라 하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님은 생명나무이자 모두를 품는 큰 그늘입니다.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적 사랑이 우리 안에 뿌리내릴 때,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생명나무가 됩니다. 나무는 이런 영적 회복력의 상징입니다.

호세아서의 본문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아름다운 나무에 비유합니다.

“그들은 레바논의 숲처럼 뿌리를 내릴 것이다.

그들의 새싹은 퍼져나가며,

그들의 아름다움은 올리브나무와 같고,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꽃을 피우리라.”

이 본문들에는 희망의 빛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예배와 세상, 예식과 생활, 은유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이어야 합니다. 이 연결이 일어날 때, 그것은 기적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증인이 됩니다.

그러니 올해 여름에는 씨 뿌리는 자의 씨앗처럼 우리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흩어봅시다. 성경 속 나무들과 우리 주변 나무들을 더 깊이 들여다봅시다. 나뭇잎, 기름, 메이플 시럽, 씨앗, 약재, 꽃, 도구, 열매와 음식까지 나무가 만들어내는 것들을 묵상합시다. 나무의 약효,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생각해 봅시다. 뿌리가 토양을 지탱하고 홍수를 막으며, 잎은 산소를 내고 그늘을 만들고 아름다운 색으로 우리를 기쁘게 하며, 줄기와 가지는 새와 여러 생물, 그리고 우리에게 집이 되어주는 것을 떠올려봅시다. 쓰러진 나무가 죽어서도 새 생명에 양분이 되는 너스 로그(nurse log), 우리 산책길에서 발견합시다. 장작 역시 죽은 나무의 선물입니다. 사순절의 재는 종려나무 잎에서 얻기도 하며, 이처럼 나무는 예배에도 함께합니다.

기독교인에게 나무를 아는 것은 성경을 아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나무와 구원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램쇼가 경험했듯, 신성함은 우리를 나무로 이끌고, 나무는 우리를 신성함으로 이끕니다.

아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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