ᄒᆞᆫ님 사람(그 사람을 가졌는가?) / 신중현 목사

성탄절 주일 / 12월 네 번째 주일
한님 사람(그 사람을 가졌는가?)
이사야 (Isaiah) 52: 7-10, 요한복음 (John ) 1: 1~14
신중현 목사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광야 시험을 거치신 후에 실제로 공적으로 처음 하신 일은 제자들을 부르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사람을 “낚게 하겠다” 하셨는데 영어번역으로는
“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 이 대세이지만 NRSV는 “I will make you fish for people” 이라고 번역 했습니다. 같은 의미라 할 수도 있겠지요만 재밌는 생각 들었죠. 문법적으로 ”Fish” 를 동사가 아닌 명사로 받으면 그 의미가 정말 찐할 거예요. 왜냐면 실제로 마지막 식탁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시잖아요? 그렇다면 제자들의 소명도 사람들을 “낚는” 거라기 보다 주님처럼 자신들이 곧 사람들을 위한 “물고기”가 되는 것일 거 아녜요? “I will teach you to catch people.” GNT는 심지어 그리 번역하는데 과연 교회가 사람을 많이 낚으면 뭘 하려는 걸까요? 그리고 지난 주 설교에서 나눴듯이 우리가 정말로 사람을 “낚으려” 한다면 그 대상에게 “이제부터 내 몸값이 곧 네 몸값”이라고 온 맘으로 말해 주는 것 외에는 없지 않겠어요?

그럼 서로에게 물고기 (Fish) 가 된다는 건 뭐냐? 간단히 말해 하나님을 가운데 모시고 누구라도 서로를 “이용가치”로써가 아니라 동료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겠어요. 예언자들이 그린 하나님 나라의 모습도 그랬고 (And then no person will be subject to another’s will.) 예수님도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말씀하시고 그리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잖아요? 그래서 베드로가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 하시리이다” 하니까 (요한 13: 8) “그러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까지 말하시는 것이며 태어나신 후 처음 누으신 곳이 “구유” 곧 여물통이었다는것과, 아울러, 물고기 모양이 초대 교회의 상징이었던 것도 우리에게 의미하려는 바 있다 생각해 보네요. 잘 아는대로 역사적인 로마의 교회박해의 시기에 희랍말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다섯 낱말들의 첫 글자들을 모아 “물고기”라는 낱말이 만들어져 가장 원초적인 신앙고백으로 사용됐었지요.

오늘 함선생님의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라는 시를 불러옵니다. “그 사람- 그  한 사람”은 과연 누굴까 많은 사람들이 흥미로워하는데 (알파 한인 연합교회에서는 통하기를 기대하면서) 긴 시간을 씨름하며 새겨 온 저의 결론을 나눠 보고 싶습니다.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救命袋)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마지막 숨 넘오는 순간
두 손을 붓석 쥐며
“여보게 이 조선을” 할
그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 (不義)의 사형장(死刑場)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가졌거든 그대는 행복이니라
그도 행복이니라
그 둘을 가지는 이 세상도 행복이니라
그러나 없거든 거친 들에 무덤 뿐이니라}

최근에 이광희 목사라는 이가 윌리암 윌리몬William Willimon의 책 (“Incarnation” -Surprising Overlap of Heaven and Earth “성육신” – 하늘과 땅이 겹치는 경이)을 번역하고 소개하는 글을 읽고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정현종의 시를 인용하면서 시작하는 데에선 무릎을 쳤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방문객’ 중)

함석헌의 “그 사람”- 그 한사람은 그렇게 “ᄒᆞᆫ님 사람 (God in Human Nature)” – 사람으로 오시는 인격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야 맞는거지요! “아래 아”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원본에 손수 지우신 부분까지 잘 드려다 볼 때 그렇게 봐야한다 생각해요. “누가 내게 그런 친구일까?” “나는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호기심 갖는 것은 그 선한 마음을 폄하할 생각이 추호도 없지만 그런 접근은 이 시의 값 싼 소비를 불러와서 오강남이 이야기하는 “예수는 없는” 표층 종교 라든지 본 훼퍼가 걱정했던 “값싼 은혜”의 영역으로 떨어지게 만든다는 걱정이 들죠. 누가 “나 그런 사람 될 수 있겠어요” 하겠습니까? 그런 건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서야”되는 건데 무슨 뜻이냐구요? 철이 바로 든 사람은 모든걸 하기는 제가 다 하면서 “절대로 내가 못 하는 거라” 말하게 된다는 말이죠. “하나님과 본체이시나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입으신” 주님처럼요. (빌 2: 6) 또 작곡가나 시인이 “난 그냥 받아 적기만 했을 뿐이야” 하는 경지를 예로 들 수도 있겠죠.

또 선생님이 지우신 넷째 연- {마지막 숨 넘오는 순간 두 손을 붓석 쥐며 “여보게 이 조선을” 할 그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을 볼 때 “그 사람”을 어느 진짜 친구 개인이 아니라 “성서 조선”을 쓰게 만드신 ᄒᆞᆫ님 사람이라 보는 게 맞다 생각해요. 그럴 때 함석헌의 “그 사람을 가지는 일”이 바로 심층종교의 일일 터이며이며 “그 사람”은 성탄의 날에 “구유”에 태어나시는 바로 그 아기 안에, 윌리몬이 강조하는대로 God Incarnating – 사람으로 오시는, 성육하시는 하나님이시죠.

윌리몬은 그의 책의 부제대로, “성육신은 곧 ‘하늘과 땅이 겹치는 경이’ 라고 말하고 있고 다석은 “사람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었다” “온통 하나” “귀일” 이런 말들로 설명하시는데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모두 다 통하는 말이겠구요. 저는 오늘 우리가 서로에게 “물고기(Fish)가 되면서” 한 분이신 하나님을 “ᄒᆞᆫ님 사람 (God of Human Nature) -“인간의 격”으로 오시는 인격신으로 드러내는 신비”로 묵상하는 거지요. 그래요. 성찬을 받아 나누며 “인자” -사람의 아들- 되시는 하늘 아들 “성자”와 함께 우리가 “땅의 아들/딸”이자 동시에 “하늘의 아들/딸”이 되는 겁니다. 만일 갓 잉태된 아기를 향해 하나님께서 친히 “내 몸값이 곧 네 몸값”이라 말해 주실 수 있다면 그 아기는 동시에 그의 부모와 동시에 “성령으로 말미암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똑같은 논리로 그 애기 엄마도 누구라도 하나님을 대해 “동정녀”로 불리울 수 있을 테지요.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다는 게 성탄절의 의미입니다. 이정배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석은 인간이 이런 절대(온통 하나)의 아들로 느껴질 때 누구나가 독생자가 되는 것이기에 예수나 나나 모두 독생자인 것을 강조했다.” (출처www.newsm.com)

사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고백을 한다면 그 분 안에서 우리가 그의 품성을 나눠야 한다는 거 당연하잖아요? 그래서 사람이 온다는 건 적어도 “하나님 나라” 에서는 곧 신이 오신다는 것이며 만일 그게 아니라 말하면 그건 싸구려 가짜 소리이며 그래서 시인의 심장을 갖지 않은 아닌 이가 설교를 한다는 건 죄일 수도… 라는 생각까지 하게됩니다.

이광희 목사의 글을 좀 더 봅니다: “예수께서 오셨다. 그리고 오신다. 예수라는 한 사람이지만, 그와 함께 오는 것은 한 사람의 일생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든 세대가 고대했던 참 생명의 빛이 그와 함께 돌입한다. 그러니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이 압도적인 경이 앞에서 터져 나오는 감탄사가 있다. 바로 ‘성육신’이다.”

저는 “성육신”이나 “화육” 보다 “화신”이란 말이 한국 교인들에게 훨씬 오해를 덜어 주겠다 생각해 오고 있는데요 “사람이 오는 것을 어마어마한 일이 되게 해 주시”는 바로 “ᄒᆞᆫ님 사람 (God in Human Nature)” “그님 사람”의 “화신”을 우리는 우리 속에 은혜로-공짜로 받아 모시게 되는데에 성탄절의 의미가 있지요. 함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시의 마지막 연도 지우셨던데 이렇습니다. {가졌거든 그대는 행복이니라 그도 행복이니라 그 둘을 가지는 이 세상도 행복이니라 그러나 없거든 거친 들에 무덤 뿐이니라} 진정 크리마스의 선물은 “그 사람을 가지게 되는” 것이며 그의 부르심에 따라 “Fish”를 “낚는다”는 동사로보다 명사로 “물고기”로 읽는데 있다고 해 보렵니다!

“거듭난 사람”을 표현해 보느라 “하늘빌어-사람”이란 표현을 한 번 만들어 봤었는데 서로를 그렇게 “하늘빌어-사람” (함석헌-유영모 식으로 “씨알”) 바라보면서 우리 모두가 아기에서 부터 노인까지 “그 사람”- “한님 사람”의 “화신”들로 거듭나는 것이겠으며 하나님께서, “참으로” 사람으로 오시려니, 구유에 누이시는 “아기”로 부터 시작하시는 게 또한 당연한 상상이겠죠!

차마고도 (KBS다큐) 감명 깊게 봤습니다. 2부에 2,100 Km,186일간의 오체투지(五體投地) 순례길을 가는 수행자들의 목표가 “이 세상 모든 생명의 평안을 기원함”에 있다고 하던데 이름이나 전례의식을 떠나서 참 종교의 근본은 여기에 있어야 할 거라는 생각도 다시 했지요.

오늘 주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하나님도 까불면 나한테 죽어” “예수 천당” 이런 표층 신앙들 가운데서 “그 사람을 가졌는가” 물으며 이렇게 하나님을 ᄒᆞᆫ님 사람으로, 그님 사람으로 받으며, 어마어마한 일, 곧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독생자들이 되는 성탄의 은총과 감격을 축원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할렐루야!

“신이 사람으로 오시는”
– 김남조

태어나
사랑하시고
사랑하므로
죽으실 일 하나로
성자
이 밤에 오시느니

훗날 십자가를 세울
나무 한 그루 심어 두고
우렁찬 이 찬미를
어리신 주여
용서하소서

땅끝까지 순지 (純紙)를 펴는
이 눈 벌에서
시린 무릎으로 아무리 기다린들
영혼의 장지문을 닫아 두면
동녘 하늘 큰 별은
아니 보일 것을

사랑의 말은
오직 하나
그건 기도라 하옵느니
인류의 심장에서
어느 세월 기도의 불씨야 사위리까
하여 마침내는
사랑 때문에
신이 사람으로 오시는
신비를
깨닫게 하소서

바라오니
그 날이 이 밤이게 하소서
열망하며 몸을 푸는
백랍의 눈물,
보혈빛 붉디 붉은
촛불이게 하소서

알렐루야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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