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후 열세번째 주일 / 8월 세번째 주일
시편 22:24-26, 요한복음 6:35, 마태복음 13:33
김훈 목사
지난 주와 오늘 두 주 연속으로 성경본문은 예수님이 생명의 양식임을 선언한 이야기입니다. 육신의 양식을 공급하신 예수님처럼 모두가 굶주리지 않는 사회적 인프라를 유지해야 함을 말씀드렸고; 음식을 나누어 주신 후에 천상의 양식인 정의, 공의, 사랑, 희망을 공급하시리가 말씀 드렸습니다. 지난 주의 양식, 음식은 우리를 음식을 만드는 공간으로 데려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 양식이 만들어 지는 곳으로 가 봅시다.
누룩의 비유: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누룩으로 비유하십니다. 많은 밀가루에 소량의 누룩을 넣고, 반죽하고, 그리고 따뜻한 곳에 놓아 두면 2시간 전후해서 빵이 뜨는 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반죽이 부풀어 오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양의 누룩은 보이지 않게 은밀하게 활동합니다. 누룩은 보이지 않게 조금씩 밀가루의 탄수화물을 발효시켜 약간의 알콜을 만들어 달콤한 냄새를 풍기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탄산가스가 반죽에 갇히어 반죽을 부풀게 합니다. 이 때 쯤이면 아무도 이 누룩의 놀라운 힘을 보지 않을 수도 더 이상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대한민국이나 카나다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평화는 누룩처럼 눈에 보이지 않으나 사회를 내부로부터 변화시키고 정의와 평화를 실현시키십니다.
광복절 하면 우선 3-1절, 독립군들이 떠 오릅니다. 유관순이 떠오르고 이갑성 옹이 떠 오르고, 그리고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대한민국 독립군 대장이다”라고 소리친 안중근 의사가 떠 오릅니다. 한상구 교수는 신문 기사와 광고들을 연구하여 일제 강점기 동안 그러면 일반 백성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탐구해 왔습니다. 첫째로 그는 마을 주민들이 지역의 학교, 공회당, 고아원, 유치원, 도서관, 그리고 건축, 교량이나 도로의 건설 및 보수를 위해 수많은 모금 운동 벌였고, 여기에는 남녀노소, 부자와 가난한 이들이 모두 기부에 참여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마을 주민들은 군중대회를 열어 각가지 민원들을 성토하고 대표자를 선출하여 결의사항들의 당위성을 면사무소, 군 사무소등에 직접 방문 설득하여 대의 민주주의를 실습하였다고 말합니다. 일반 백성들의 참여와 일반 백성들에 의해 대표를 뽑는 과정을 통해 민중의 의식화가 이루어졌고, 그것이 해방후의 현대식 국가의 형성에 기여 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상구 교수의 연구에서는 저는 하나님의 누룩, 평화와 민주의 누룩이 역사했음을 봅니다. 자유와 평화의 누룩은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끊임없이 활동했음으로 광복에 큰 몫을 했음이 분명합니다.
여인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를 생각할 때 우리의 관심의 밖에서 떠 도는 분이 있습니다. 누구일 까요? 네 맞습니다. 이 비유의 행동 주체는 바로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누룩을 밀가루에 숨기고, 반죽하고, 따뜻한 곳에 이 반죽을 놓아 둡니다. 그리고는 “발효가 다 되나” 기다립니다. 한 가지 누룩이란 수퍼마케트에서 살 수 있은 정제된 이스트가 아닙니다. 여기서 누룩은 지난번에 빵을 만들면서 약간 떼어 놓아 잘 보관해 놓은 이른바 빵씨입니다. 어쩌면 이는 이 여인의 어머니에게서, 시 어머니에게서 물려 받아 잘 간수한 것일 것입니다. 이 소중한 누룩의 관리자 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빵씨를, 알파 연합교회의 빵씨를 들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커다란 질문을 안고 있습니다. 혹시 내가? 내 믿음으로? 이 나이에?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에는 누룩은 오염의 상징이요 악의 근원이라 생각하여 종교의식에서 제외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의식에서 누룩이 들지 않은 무교병을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인들은 차별을 받아 왔습니다. 성전에서도 여인들은 외곽에서 의식을 처다 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누룩과 이 여인과 비교하셨습니다. 예수님 손에서는 무엇이나 도구가 되고 도우미가 됩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나이, 여러분의 믿음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어떻게 쓰임을 받을까 겸손히 생각할 때입니다. 적게는 코비드 이후 시대, 범 사회적으로는 종교 이후 시대, 종교 경험이 없는 엠젵 세대들을 발효해야 합니다. 누룩을 포함한 미생물 – micro organism – 특징은 이들의 무한한 적응력입니다. 공기가 없으면 없는 데서, 유황을 함유한 심해의 샘물에서, 적응을 하여 자신의 형태를 변경하면서 자라고 주위를 변화시킵니다. 이제 하나님의 누룩으로 우리가 해보지 않았던 것, 하기가 쑥스러운 것을 배워 나 가, 지금 여기 알파교회라는 반죽을 발효시킬 때입니다. 음악을 어떻게 외우느냐고 물었더니, “새 곡의 악보를 놓고 뚫어질 때까지 쳐다 보고 연습하고 연습하니 곡이 외워지더라” 하더군요. 새 것을 시도해 볼 때입니다. 이제 비유 속의 여인이 여러분을 어떤 반죽에 넣을 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누룩이 되어 보십시요.
김진홍 목사님이 한번은 손톱을 다쳤습니다. 벌어진 손톱 틈이 자꾸 걸립니다. 아침에 일어나 팔을 뻗치면 이불의 작은 실 조각에 걸려 온 몸이 경련하듯 아프고 찌릿했다고 합니다. 커피를 마실 때도 꼭 그곳에 커피가 떨어지기도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상한 손톱의 아래를 보니 구불구불한 새 손톱이 자라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순간 “바로 이거다” 소리 쳤습니다. 떨어져 나갈 손톱이 아니라 새로 나는 손톱을 키워야 한다는 느꼈다고 합니다.
지금의 알파교회가 옛날 같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100 파운드에 넣은 누룩의 양보다는 몇 십 배 몇 백 배 많습니다. 옛 손톱 밑에서 자라고 있는 새 손톱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위에서 하나님의 사랑, 공의, 예의의 싹들을 찾고, 희망을 갖고 침착하게 기다리며 키우십시요.
Jesus is the bread of life. This image of bread takes us to where bread is made: kitchen.
Jesus compares the Kingdom of God to the leaven. The tiny amount of leaven eventually transforms the whole dough. In this parable, God’s Kingdom is not a visible nation but society in which God’s will such as peace, love, equality, is being realized. According to Professor Han,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grassroot people (i) participate in raising fund to help the less fortunate and (ii) rallied on justice issues in front of Japanese authorities. If necessary, they sent their representatives to negotiate. They, like leaven, prepare the society for modern society.
Jesus compares God’s Kingdom to the woman, who take care of the leaven. We are care-taker of the leaven – God’s will. God will use each of us to leaven this ever-changing: post-religion, post-church, and MZ generation. Be adoptive to new environment. When you are getting new finger nail, look for the sign of the new growth under the old finger nail.
We are a much larger group comparing to the leaven in a d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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