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세번째주일 / 3월 두번째 주일
당신은 특별한 사람
출애굽기 17:1-7, 요한복음 4:5-15, 25-26, 28-30
서동천 목사
이 시간 이스라엘 사람들의 광야 이야기를 생각해봅시다.
그들은 출애굽과 약속의 땅 사이에서 여정을 계속합니다. 광야에서 떠돌이 백성으로,
불평하는 민족으로서 주어진 기회, 축복, 은혜에 감사하는 대신, 먹을것과 마실물이 없다는
이유로 지도자 모세에게 불만을 터뜨리고 모든 책임을 그에게 떠맡깁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데리고 나왔느냐?” 그리고는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계신가? 계시면 증명해 보라. 목마를때 물을, 배고플때 양식을 주시는지 우리 눈으로
분명히 봐야 하나님을 믿겠다. “
하나님 자신이 모세앞에 나타나십니다. 모세와 그가 갖고있는 지팡이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의심과 염려, 불안에 쌓인 백성들을 보살피시며, 신뢰관계를 이루시려고 애쓰십니다.
이 백성들의 광야 여정은 목마름과 하나님 시험의 이야기입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나
바라는 것을 갖게 되면,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하신다고 믿으나, 배고프고 갈증이 나며,
괴로울때는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리고 배반했다고 소리질렀습니다.
불평하고 반항하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봅니다. 진취적 대신에 후퇴적, 긍정적
대신에 부정적, 적극적이기 보다는 소극적, 새로운것을 추진하기 보다는 구태의연하고, 있는
그대로 만족하려 하며, 열린 마음과 자세보다는 닫히고 완고하며 고집부리는, 그리고
믿기보다는 의심하며 시험해보려는 모습과 태도를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백성을 은혜스럽게 돌보십니다. 모세와 그의 지팡이 그리고
장로들과 지도자들 앞에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 주십니다.
애굽에서의 노예생활, 그리고 억압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을 향해 가는 이 여정의 이스라엘
공동체와 백성에게 그 광야는 더 이상 지리적 공간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마음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항상
가려고하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항상 오아시스같이 편한곳이라고
말할수는 있는 것은 아니죠. 그러니까 이 백성은 하나님을 시험해보기도 하고, 투정하고
불평하며, 불만을 나타내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과연 우리 가운데 계신것이냐, 아니냐?”
모세가 자기 심정을 토로합니다. “ 하나님, 이 백성을 어찌하면 좋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저를 돌로 쳐 죽일것만 같습니다.” 현대 목회자들이나 평신도 지도자들이,
“ 주님, 저를 (혹은 저희를 ) 여기에 부르시고 혹은 지도자로 뽑으시며, 새 비젼을 갖고 이
교우들을 인도하도록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동의하고 얼마 동안은 잘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여기 저기서 수근수근, 투덜 투덜, 불평 불만이 새어 나오는데,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고 저의 역할 제대로 하기 힘듭니다.”
출애굽과 광야 이야기를 통해 생각할수있는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아직도 노예와
속박의 땅과 관련된 생각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지금 무엇에 혹은 누구에게
예속되어 살고 있습니까? 두려움, 걱정, 염려와 조바심 등으로부터 어떻게 자유해집니까?
속박의 삶에서 자유하여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의 삶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과 어느 사마리아 여인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 여인은
종교적으로나, 사회적, 정치적으로 보나 소외된 집단인 이방인에 속했고, 이름도 없는데,
대낮에 유대 청년인 예수와 우물가에서 만나 대화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을 제약하고 있는 사회적 장애, 전통과 제한성을 극복하며, 생명의 물, 예배, 메시야 등에
관한 신학적인 토론을 예수와 함께 합니다. 자신이 알고 싶고 필요로 하는 것을 예수께
간청합니다. “내가 바로 네가 기대하는 그리스도라는 메시야 그 사람이다.” 예수는
우물가에서 이 여인에게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해주시며, 이 여인을 예수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는 동역 증언자로 선택했습니다. 예수가 누구인것을 보여주실뿐 아니라, 그 여인
자신이 누구인것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를 만남으로해서 하나님과 예수가 누구신것을 알게되며, 우리 자신이 달라지고,
변화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시는 예수의 선언과
진실에 우리는 얼마나 목말라하며, 그를 따라 살려고 합니까? “와서 보라.”고 우리의
이웃들을 초대하며 예수의 경험을 나눕니까?
하나님은 모세와 예수가 자기자신들의 상황을 극복하며,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도구나
능력을 갖고 있음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즉, 모세의 손에 들린 마른 지팡이, 사람들을 직접
만나 대화하며, 그들과 함께하는 예수의 현장목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도구나 능력은 무엇일까요? 남의 말을 잘 듣는 귀, 예언자적인 역활, 이웃과
함께 아파하거나 기뻐할 줄 아는 일, 남을 받아들이는 일, 우리의 마음을 여는 일, 책임성있는
봉사나 헌신, 서로 신뢰관계를 맺는 일들이 거기에 속할까요?
아오람 브라운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몇가지 사항을 제시합니다.
첫째, 안락하고 편한 영역을 벗어나라.
둘째, 자신의 삶의 존재의미를 찾으라.
셋째, 가치있는 일에 헌신하라.
넷째, 의미있는 목적을 가지라,
다섯째, 대화하려고 하는 상대방이 사용하는 말로 대화하라.
우리 교회를 남들을 위하고 또 그들과 함께 살수있는 믿음의 공동체로 변화시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 왈트 칼레스타드의 “당신의 교회를 뒤집어보라”에서)
가) 남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경청하라.
나) 그들에게 용기를 주라.
다) 그들과 진정한 관계를 가지라.
라) 그들을 친절히 대하라.
마) 그들을 격려하라.
바) 그들을 선물로 생각하고 받아 드려라.
여러분 모두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구로, 능력있는 사람들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계획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계속 감당해 나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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