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아홉번째 주일 / 10월 네번째 주일
당신의 GPS는?
욥기(Job) 42:1-6, 10-17,
마가(Mark) 10:46-52
서동천 목사
허물어진 여리고 동네에 여행자들이 모여듭니다. 어떤 눈먼 사람이 길가에 앉아 구걸합니다. 그의 목에는 “내 이름은 바르티매오인데 예수가 오면 알려주세요” 라는 표시가 걸려 있읍니다.
예수가 오신다는 소리를 듣고는, “다윗의 자손이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하고 외칩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시자, “ 제 눈을 뜨게해 주십시요” 라고 호소합니다.
“다윗의 자손”—그가 이 말을 어떻게, 어디에서 알았을까요? 회당 도서관에서? 회당 지도자들에게서?
혹은 “구글”을 눌러서? 여하튼 이 사람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믿음의 눈을 가졌읍니다. 희망과 추진력, 인내와 결심이 대단했죠.
이 이야기는 치유뿐 아니라 부름에 관한 사건입니다. 그는 열정적으로 예수의 부름에 응답했읍니다. 높은 자리를 예수께 요구한 야고보와 요한과는 다릅니다. 그는 눈을 뜨게 되었고, 신실한 행동을 보여 주었으며, 결심하고, 거지의 상태에서도 예수의 제자가 되어 그를 따라 나섰읍니다.
욥기에 나오는 욥은 자기 삶의 여러가지 변화에 대해 지금까지 남들이 하는 얘기만 듣고, 고민하다가 마침내, “이제는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듣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내가 변화하고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여러 다른 눈으로 예수를 보기도 합니다.
혹은 두려움, 의심, 또는 남을 정죄하는 눈으로. 바르티매오는 외부자(어떤그릅에 속하지못한)이지만, 소위 내부자( 어떤 구룹에속한) 라고 자칭하는 제자들의 눈멈과는 대조됩니다.
예수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바르티매오에게 입 다물고 조용하라고 꾸짖듯이, 현대에도 힘없고, 별볼일 없는 소수자, 소외자들이 불의를 경험하고 억울함을 당하여 이를 지적하고, 호소하려하면, 힘있는 다수, 기득권자, 권력자들은 자기들이 불의하게 행한 일들, 불편한 진실들이 드러나고, 알려지는 것을 숨기고 막으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약자, 소수자, 소외자들을 억압, 통제, 감금, 또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왜곡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게됩니다. 일본 침략자들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고는 우리의 어린여성들을 성노예로 착취하고, 청년들을 강제징용하여 노예처럼 학대하고서도 이를 철저히 부인하거나 돈으로 입막으려 하는 불의한 행동, 또한 이런 일본에 동조하여 같은 민족 피해자들의 입을 막고, 권리를 박탈하려는 지난 한국정권의 수치한 모습도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눈먼 사람을 부르시고, 그의 호소를 들으시며, 치유를 허락하셨죠. 욥과 바르티매오는 둘 다 많은 것을 잃고, 주위로부터 침묵을 강요 당했으나, 새 삶을 회복을 했읍니다.
“컴패션(compassion)”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남의 고통과 어려움에 직각적으로 나서서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에게 기쁨과 평화가 없으면 ,나에게도 참된 평화와 기쁨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몇 달전에 연합교회 총회가 열렸는데, 총회 마지막날은 안건종결, 저녁식사, 그리고 폐회예배가 예정되어 있었읍니다.
그런데 순서에도 없던 일이 벌어졌읍니다. 인종차별, 편견, 차별대우 등으로 고통스럽고, 잊을 수 없는 아픈 경험을 한 사람들이 그런 경험들을 나누는 시간이었읍니다. 이 시간은 연합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인종차별, 편견 등으로 아파하고, 상처받은 –눈을 가리도록 강요 받아온 소위 이민자, 소수자, 소수민족들의 외침을 통해서 다수자, 소위 유럽계통의 전국
연합교회 교인들, 총회 총대들의 가려진 눈들이 뜨이고, 막힌 귀들이 열리는 소중한 치유의 시간이었읍니다.
예수가 바르티매오를 부르시듯 우리를 불러 새 삶을 갖게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주시기를 바라나요? 예수를 따르기 위해 벗어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삶의 여정을 믿음의 눈으로 보시나요? 하느님은 우리의 상황이 어떻든 간에 계속해서 우리를 찾으시고, 부르십니다. 예수의 치유의 능력은 모든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특히 연약한 사람들을 버리시거나 소외시키지 않으십니다. 상처받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감싸주십니다. 우리의 어려움에 동참하십니다. 그리고 미래를 보고 걸을 수 있는 희망을 주십니다.
어느 어머니가 어린 두 딸을 차에 태우고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서 두 어린 아이들은 현장에서 죽고, 어머니는 목을 제외하고는 전신을 못쓰게 되었읍니다. 남편은 지난 30년간 아내의 손과 발이 되어 모든 일을 해내며 헌신했읍니다. 한편 자기 아내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알게되어 그들도 돕기 시작했죠. 그리고 그런 장애인들을 위한 평화 공동체를 만들고 지금도 목회를 계속하고 있읍니다. 그 남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제 가정의 시련과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일을 통해 하느님께서 이런 목회의 기회를 주셨다. 역경과 아픔가운데서 나와 아내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와 희망을 주셨다.”
여러분, 삶에 변화가 필요하나요? 변화를 원하시나요? 그러면 다음의 제시를 실천해 보세요.
1. 편안하고, 안락한 상황 (그래서 움직이기 싫은)에서 벗어 나라.
2. 자신의존재나 삶의 의미를 찾아라.
3. 가치있는 일에 헌신하라.
4. 의미있는 목적을 가져라.
5. 남과 함께 대화하거나 관계를 가지려고 할 때, 그가 사용하는 말로 대화하라.
연합교회에서 목회하기를 원하는 목사 후보자들에게 질문하는 세가지 중요한 내용이 있읍니다.
첫째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 있느냐? ( Gifts from God)
즉, 하느님이 주시는 열린 마음, 듣는 귀, 보는 눈, 포용력, 하느님의 손길, 하느님께서 함께 하고계심을 확신하는가?
둘째는, 하느님의 일을 하려는 열정적 뜨거운 마음, 의지, 능력이 있느냐? (Passion).
세째, 하느님의 일 하는데 필요한 훈련과 준비가 되어 있느냐? ( Skills).
이 세 가지 내용의 첫 글자들은 영어로G. P. S 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하느님의 선교와 목회를 위해 이 G.P.S 로 무장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삶의 모든 순간을 선물과 은혜로 깨닫고 감사합시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모든 순간에 놀라운 기회와 새로운 가능성을 줄 것입니다. 열정과 헌신, 그리고 용기를 갖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때, 우리의 공동체가 변화합니다.
당신의 G.P.S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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