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세번째 주일 / 4월 세번째 주일
누가복음서 24:36-48, 사도행전 3:12-15
부활절, 트라우마에서 증인으로
정해빈 목사
폴란드의 작가 헨리크 센케비치는 [쿼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라는 소설을 써서 1905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말은 라틴어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는 뜻입니다. 이 책을 내용으로 하는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베드로는 네로황제의 박해를 피해서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를 떠나 지중해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당황한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묻자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내 양을 버리고 온 로마로 가서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려고 한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베드로는 가던 길을 돌이켜 로마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순교합니다. 한편 로마제국의 청년 장교 비니키우스는 기독교인 리디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같이 붙잡히게 됩니다. 그때 같이 붙잡힌 베드로가 이들의 결혼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네로황제는 로마에 불을 지르고 기독교인들에게 누명을 씌웠습니다. 두 사람은 원형 경기장에 묶이게 되는데 같이 잡혀온 노예가 들소와 싸운 끝에 그들을 구해 줍니다. 성경 66권에 포함되지 않은 외경(外經, Apocrypha) [베드로행전]에 베드로 순교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3번 부인했고 지중해로 도망갔던 베드로, 예수님을 부인했던 것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수제자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모든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로마에서 복음을 전했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처럼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독교 박해가 가장 심했던 시대는 네로황제 시대가 아니라 기원후 250-300년경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이 내외부적인 환경으로 흔들릴 때 황제들은 황제숭배를 강요하였고 이것이 기독교 박해의 주원인이 되었습니다. [쿼 바디스 도미네] 이야기와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누가복음 이야기는 예수님이 처형당하신 후에 제자들이 어떤 상처/트라우마를 겪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트라우마 혹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는 사람이 전쟁, 자연재해, 폭력, 사고 등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에 발생하는 육체적/정신적 외상, 심리적인 반응을 가리킵니다. 외부적인 큰 사건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학대, 따돌림, 괴롭힘, 배신 등이 사람에게 우울증/무기력 같은 트라우마를 일으킵니다. 트라우마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과거의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면 사람은 그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과거의 충격을 극복한 사람은 그 충격을 목격한 증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충격이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에 기여할 수도 있고 같은 경험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도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너무도 큰 충격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고 사회제도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고 영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은 예수님의 처형 이후에 제자들에게 어떤 트라우마가 일어났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처형에 실망한 두 제자는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제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그를 넘겨주어서 사형선고를 받게 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분에게 소망을 걸고 있었던 것입니다.”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을 제자들은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된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자를 먹이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던 능력있는 주님께서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제자는 충격을 받아서 엠마오로 도망갔고 베드로는 지중해로 피신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단 3일 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를 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고난을 이해하는데 10년이 걸렸을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부활을 이해하는데 10년이 걸렸을 수도 있습니다. 큰 충격/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자들은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수난받는 메시야를 예언했던 구약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고난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승리하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도 나오지만 반대로 이사야 53장처럼 우리를 위해 고난받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도 나옵니다. 제자들은 고난받은 메시야를 예언한 구약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고난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예수님의 고난을 깨닫는 과정을 설명한 이야기가 누가복음 24장입니다.
두 명의 제자들이 엠마오를 향해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였고 두 사람에게 당신의 고난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당신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니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셨다.” 두 명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첫째로 예수님이 들려주신 성경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고난을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둘째로 여관방에서 함께 나누었던 성찬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깨달았고 셋째로 이 사건은 3명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3가지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말씀묵상을 통해서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깨닫기 시작했고 성찬을 통해서 더 확실히 깨달았고 3명의 만남을 통해서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과 성찬이 이루어지는 곳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영으로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겪는 충격/트라우마는 혼자서 벗어날 수 없고 두명이 모여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3명이 모여야 합니다. 3명 이상의 공동체가 모여야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3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서 말씀과 성찬을 나누는 곳이 교회입니다.
엠마오로 향했던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다른 제자들에게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주님이 유령이 아니라는 것과 주님이 새로운 몸으로 부활했다는 것을 그들에게 다시한번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의 손과 발을 보여주셨고 그들과 같이 식사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부활이 착각이 아니라 그들이 분명하게 체험할 수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왜 메시야가 고난받아야 하는 지를 다시한번 가르쳐 주셨습니다. 앞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고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주님과의 다양한 만남을 통해서 주님의 십자가 처형이 가져온 충격/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주님의 부활을 알리는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3장에서 동포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이 수치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건이 되었습니다. 메시야의 죽음 때문에 트라우마에서 시달렸던 제자들은 자신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부활의 증인이 된 것을 세상에 알리고자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부활신앙은 우리를 일으켜 줍니다. 부활신앙은 트라우마를 증인으로 만들어 줍니다. 어떤 과거의 충격도 우리의 부활신앙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과거의 충격과 상처와 절망에서 벗어나 부활의 증인으로 이 땅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Leave a Comment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