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두번째 주일 / 3월 세번째 주일
사순절, 암탉이 제 새끼를 품듯이
누가복음 13:31 – 35
정해빈 목사
지난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었습니다. 매년 3월 달이 되면 여성의 날과 관련된 행사가 많이 열립니다. 사람의 절반은 여성이고, 할머니/어머니/아내/누이/딸/며느리가 여성입니다. 여성의 날이 있으면 남성의 날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성의 날을 지키는 것은 여성 차별이 세상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크게 3가지 차별, 계급차별, 인종차별, 성차별이 있었습니다. 계급차별은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공식적으로는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노예제도는 없어졌지만 빈부격차라는 새로운 계급차별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종차별은 옛날에 비하면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 남아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뉴질랜드에서는 백인 우월주의자가 이민자들과 이슬람 사람들을 향해서 총을 쏴서 49명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극단적인 인종차별/종교차별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3가지 차별 중에서 가장 많이 남아있는 차별을 꼽으라면 여성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성민우회라는 여성단체가 직장 여성들에게 지금까지 살면서 성차별/성희롱/성추행을 경험해 본적이 있냐고 설문 조사를 했더니 65%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여성들은 학교와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성차별/성희롱/성추행을 너무 많이 당해서 일일이 셀 수가 없다고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영국 BBC 방송국도 영국 여학생의 1/3이 성희롱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보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학교와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어떤 차별을 받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한국에서는 여자 검사가 남자 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발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검사는 사람을 기소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가장 힘이 센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이 센 검사들 사이에서도 성추행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런 성차별과 성추행이 직장에 만연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최근에는 미국 헐리우드 여배우들이 남자배우들에게 추행/폭력을 당했다고 고발하는 Me Too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고 최근 한국에서는 유명 남자 연예인들이 여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가 매일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18년 영국에서는 자기 이름으로 집을 가지고 있는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선거권이 처음 주어졌고 10년이 지난 1928년에 21세 이상 모든 여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니까 100년 전에는 여성들이 선거에 나갈 수도 없었고 투표할 수도 없었습니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을 주제로 한 <서프러제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서프러제트는 참정권을 뜻하는 서프러지(suffrage)에 여성을 뜻하는 접미사 ‘ette’를 붙인 말로 여성 참정권을 얻기 위해서 일하는 여성 운동가들을 가리킵니다.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한 여성이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살다가 차츰 여성 참정권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 영화를 보면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때로는 과격한 행동도 서슴치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 여성이 국왕이 타고 가는 말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왜 남자만 투표하고 여자는 투표하면 안 되냐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감동적인 영화는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 숨겨진 사람들>라는 영화입니다. 1960년대 초 미국 NASA는 우주 로켓을 먼저 개발한 소련을 따라잡기 위해서 기술자들을 모집하는데 3명의 천재 흑인 여성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3명의 흑인 여성들이 백인 여성들과 백인 남성들로부터 차별받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흑인이기 때문에 인종차별도 받아야 했고 여성이기 때문에 성차별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런 수모와 차별 끝에 이들은 전문가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여성들이 지난 1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차별을 받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번 주일 성서일과 누가복음 13장 말씀을 보면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걱정해서 갈릴리를 통치하는 헤롯 왕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니까 여기를 떠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헤롯을 여우라고 부르시면서,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칠 것이요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끝낸다고 여우에게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나는 내 길을 갈 것이고 예언자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죽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를 통치하는 헤롯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 갈릴리를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정치/경제/종교의 모든 권력이 몰려있는 예루살렘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을 다양한 모습으로 고백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새로운 율법을 가르치는 율법 교사로 묘사했고, 마가복음은 우리를 위해 고난받는 종으로 묘사했고, 요한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으로 묘사했습니다. 히브리서는 우리를 위해 대신 기도하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피 흘리신 대제사장/제물로 예수님을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말씀을 보면 누가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을 향해서 걸어가시는 정의의 예언자,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말씀을 선포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정의의 예언자로 고백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언자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많은 예언자들이 예루살렘 권력자들에 의해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예레미야는 말씀을 전하다 예루살렘 감옥에 갇혔고 이사야는 전설에 의하면 톱으로 몸이 잘려지는 순교를 당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걸어갔던 길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누가복음이 예수님을 정의의 예언자로 고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꾸짖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부패하고 타락한 그곳을 향해서 슬퍼하시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예루살렘은 예루(도시)+살렘(평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글자 그대로 “평화의 도시”가 되어서 암탉이 새끼를 품에 안듯이 가난한 사람들을 품어주고 하나님의 평화와 자비를 드러내는 곳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부패하고 타락한 강도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스럽고 정의롭고 따뜻한 도시가 아니라 부패하고 타락한 도시를 바라보면서 슬퍼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무섭고 잔인하고 진노하시는 분으로 묘사하는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잔인한 하나님을 왜 믿어야 하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확실히 성경에는 그런 장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을 무섭고 잔인하고 진노하시는 분, 남성 군대 사령관으로 묘사하는 장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예수님 말씀처럼 여우와 늑대가 병아리를 잡아먹으려고 올 때에 암탉이 목숨을 걸고 새끼를 보호하듯이 선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으시는 하나님의 모습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여성의 날을 맞이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여성의 마음과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여성을 비하하는 가장 잘못된 속담입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암탉이 울고 새끼를 낳고 알을 낳아야 집안이 잘 됩니다. 암탉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십니다. 가난한 자들을 먹이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교회가 가져야 할 마음이 암탉의 마음입니다. 우리 교회가 암탉이 날개를 펴서 자기 새끼를 보호하는 것처럼, 서로서로 보호하고 사랑하고 품어주는 곳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암탉과 같은 교회, 어머니와 같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모든 사람을 환영하고 품어주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 암탉이 목숨을 바쳐서 새끼를 보호하듯이 주님께서는 목숨을 바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십니다. 고난이 있을 때, 우리의 목자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순절을 묵상하면서 선하시고 자비로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Lent, as a hen gathers her brood
Luke 13:31 – 35
At that very hour some Pharisees came and said to him, “Get away from here, for Herod wants to kill you.” He said to them, “Go and tell that fox for me, ‘Listen, I am casting out demons and performing cures today and tomorrow, and on the third day I finish my work. Yet today, tomorrow, and the next day I must be on my way, because it is impossible for a prophet to be killed outside of Jerusalem.’ Jerusalem, Jerusalem, the city that kills the prophets and stones those who are sent to it! How often have I desired to gather your children together as a hen gathers her brood under her wings, and you were not willing! See, your house is left to you. And I tell you, you will not see me until the time comes when you say, ‘Blessed is the on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Luke 13:31 – 35)
Luke chapter 13 shows that Jesus is not only a prophet of justice who fights the injustice of Jerusalem, heal the sick, casts out demons, but is a prophet of compassion, grieving to the corrupt and fallen people. Jerusalem originally meant “a city of peace,” but it became a corrupt and depraved city. Grieving at the rebellion and disobedience of Jerusalem, Jesus expressed his heart with a hen who gathers her brood under her wings. From today’s passage, We find out that the God of Christianity can be best expressed as a good and merciful, not a cruel and terrible one. Truly, the heart of God is like the heart of a hen and the heart of a mother who loves children. Today’s scripture shows that the image of a hen should be one of the best images describing the church. We confess that our God will not break a bruised reed, nor will quench a dimly burning wick. We are called to be a church, protecting and loving one another with the Christ. Amen.
Leave a Comment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