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2021.7.22. 목요 cafe

목요 CAFE
작성자
akuc
작성일
2021-07-18 13:50
조회
991
노트 29

생명의 세 가지 기본운동
자기 통전, 자기 창조, 자기 초월 운동

생명이란 잠재적 가능태가 현실화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모든 생명 과정에서 그러한 현실화가 일어나고 있다. 현실화 과정에는 중심을 지닌 어떤 생명체가 중심을 잃지 않고 지탱하면서도 자기 변화를 통해서만 이런 변화가 가능하다. 끊임없는 자기 변화 속에서도 자기됨을 잃지 않는 역설적 현상 속에 생명의 경이로움이 있다. 생명의 자기 동일성, 생명의 자기 변화, 그리고 다시 자기 동일성의 재형성이라는 3단계 운동의 연속 동작이 다름 아닌 생명현상이다.
이러한 생명 운동의 기본 특성은 모든 생명체의 세 가지 기본적인 기능, 혹은 기본적인 운동으로 총괄될 수 있다. 첫째는 생명의 자기 통전 운동(self- integration movement)이요, 둘째는 생명의 자기 창조 운동(self-creation movement)이요, 셋째는 생명의 자기 초월 운동(self­transcendence movement) 이다.
생명의 자기 통전 운동의 밑바탕에는 중심 갖기 (centeredness) 원리가 작용한다. 생명체란 아메바로부터 동식물을 거쳐 인간 생명에 이르기까지 자기 주위의 조건들과 관계적 길항 작용을 하면서 끊임없이 이전의 자기 동일성을 스스로 해체하는 동시에 새롭게 재형성해가는 중심 갖기 운동을 해왔다. 기하학적 은유를 사용하면 생명체들의 자기 정체성 혹은 자기 동일성은 기하학적 점(point)이나 원(circle)과 같아서 분할될 수 없고 완전한 모형을 지닌다.
생명의 자기 통전 운동이란 타자와 구별되어, 의식적이든 본능적이 든 ‘자기 자신’이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 생명체 단계에 이르러 생명의 자기 통전 운동은 대체 불가능하며 물리적 폭력으로도 없앨 수 없는 ‘인격적 자기, 양심적 자기, 주체적 자기’로 정립된다. 인간의 책임적 응답성인 ‘도덕성’이란 인간에 이르러 영글어진 생명의 자기 통전 운동의 결정체이다.
생명의 자기 창조 운동의 밑바탕에서 작용하는 원리는 동일성 반복이 아니라 자람(growth)의 원리이다. 생명은 변화하되 연자방아를 돌리는 당나귀처럼 반복적인 원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앞을 향하여, 수평적 지향성을 가지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창조하려고 한다. 변화 운동을 하면서도 새로운 중심을 가지려는 몸짓을 통해 모든 생명체는 미세한 차이라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것, 질량적으로 자라고 영글고 아름다워진 것을 창조하고자 한다.
‘창조’라는 단어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 세계 사이의 관계성을 서술하는 데 가장 중요한 성서적 범주 개념이지만, 성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음 받은 인간성의 본질적 특징으로 제2차적 ‘창조 능력 ’에 주목했다. 생명의 진화 곡선상에서 인간 생명 단계에 이르면 생명의 자기 창조 운동이 마침내 진선미를 주구하는 ‘문화 창조’로 나타난다.
생명의 자기 초월 운동의 밑바탕에서 작용하는 것은 한계를 돌파하여 보다 위대하고 높은 가치와 뜻을 주구하는 ‘숭고함(sublime, subli­mation, sublimity)’의 원리이다. 모든 생명체는 유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유한성과 연약성과 제한성에 갇히지 않고 그것들을 돌파하려는 운동을 한다. 기하학적 은유를 빌려 말하자면, 생명의 자기 통전 운동은 원운동을 하고 자기 창조 운동은 수평 운동을 한다면 자기 초월 운동은 수직 방향(vertical direction)으로 운동한다.
유한자 생명체는 무한자 생명 그 자체처럼 온전한 자기 초월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인간은 좌절당할 때 당하더라도 초월하려고 한다. 모든 위대한 비극적 예술 작품의 테마가 그것이다. 인간 존재의 출현이라는 생명현상에 이르러, 생명의 자기 초월 운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것이 모든 종교의 본질이다. 줄여 말하면‘종교’란 생명이 표출하는 자기 초월 운동의 가장 숭고한 몸짓이요, 표현이자 갈증이다.
문제의 핵심은 인간 생명 단계에 이르러 생명의 자기 통전, 자기 창조, 자기 초월 운동이 실존적 죄성으로 인해, 혹은 자유 의지의 오용으로 인해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창발되거나 완성되지 않고, 갈등과 분열과 모순과 상호 적대 관계로까지 오염된다는 현실에 있다. 그것은 실존적 인간 단계에서 생명의 애매한 불안정성(ambiguity of existential human life)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애매한 불안정성의 극복과 치유를 기독교 신앙에서는 ‘성령의 임재 가운데’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남으로써만 가능하다고 증언하는 것이다. 「조직신학」제3권, 30~32쪽

되새김

거듭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생명의 본질을 밝혀보려는 전통적 담론의 울타리를 넘어서, 19세기 이후부터 특히 20세기에 들어와서 자연과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생명에 대한 정의는 더욱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 자연과학적 입장, 사회과학적 입장, 인문과학적 입장 가운데 어느 하나도 생명의 본질을 독점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틸리히는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생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린다. “생명이란 가능적 잠재태의 실재가 현실적으로 실현해가는 과정 혹은 현상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이란 정지 상태의 정태적(靜態的) 실재가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는 동태적(動態的) 실재이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한겨울의 나무숲이나 땅속에서 동면하는 동물들이라 해도 생명이 완전히 정지되어 있는 순간은 없다. 기후 환경에 적응하면서 최소한의 자기 변화와 생명 운동의 과정을 지속하고 있다. 생명의 특징이랄 수 있는 변화와 생성 과정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어떤 생명체라도 자기 동일성의 확립, 그렇게 확립된 자기 정체성의 변화, 그리고 다시 새로운 자기 동일성을 지닌 개체적 생명체로서 자기 형성이라는 3단계 운동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 있는 나무는 작년과 어제의 그 나무가 아니라, 자라고 노쇠하고 변화된 나무이다. 사람 생명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몸과 얼굴과 내부 장기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과 사상과 가치관도 작년과 어제의 그것과 똑같지 않다. 그러나 똑같은 것이 아니면서도 우리는 마당 가운데 서 있는 그 목련나무가 작년의 그 목련나무라는 것을 알고, 작년에 상품 계약을 한 계약자가 동일인이라는 것을 안다. 자기 동일성, 자기 변화, 재창조와 재구성, 그 3단계가 불연속적인 연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생명의 실상이자 신비이다.
틸리히는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탁월한 조직신학자답게, 다양한 생명체들의 다양한 운동과 변화의 본질적 기능을 세 가지 범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설명한다. 모든 생명은 세 가지 기본적 기능 혹은 기본적 운동을 하는데 그것을 생명의 자기 통전 운동, 자기 창조 운동, 자기 초월 운동이라고 불렀다.
첫째, 모든 구체적 생명체는 자기 통전(self-integration)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통전 운동을 하려는 본구적(本具的) 속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통전(統全, integration)’은 우리말 사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교육심리학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어휘다. 한 인간 안에는 다중인격체가 있는데 언어와 행동이 일관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통전된 인격체가 아닌 상태라고 할 수 있다.‘통전’이란 다양한 요소와 관계가 혼란스럽지 않게 통합적 질서와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한 그루의 나무는 뿌리와 가지, 나뭇잎과 꽃, 열매들을 지닌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를 형성하면서도 은행나무와 목련나무, 감나무 등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면서 성장과 번식, 노쇠, 순환을 계속 이어나간다.
생명을 이루는 다양한 구성소가 가장 온전한 형태로 통전된 생명현상은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온전한 형태(상태)란 완전한(perfect) 형태(상태)라는 말이 아니다. 생명의 특수 기능 측면에서 볼 때 사람보다 훨씬 완전한 형태를 구현한 생명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생명 단계에 이르러 개별 생명체는 온전한 자기 통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기 통전은 중심을 지닌 자기의식의 출현을 말한다. 테이야르 드 샤르댕은 그 생명의 법칙을 ‘의식-복잡화 법칙(law of complexity-consciousness)’이라고 명명했다. 특히 뇌신경 구조와의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의식 현상의 심도가 깊어져서 마침내 자기가 자기의식을 되새김하고 재의식하는 ‘반성적 사유 능력 ’이 생긴다.
인격체의 중심이 생기고 통전된 인격체가 양심과 도덕성을 느끼면서 ‘깨트려 분할시킬 수 없는(individual)’ 존엄한 자아가 탄생한다. 기하학적 은유로 말하자면, 생명의 자기 통전은 중심을 향해 나아가려는 원운동을 하면서 무기물과 타자로부터 구별된 ‘자기이려고’ 한다. 생리적·정신적 질병이란 자기 통전의 위기 상태를 말하며, 재통전 능력을 상실하면 ‘죽음’이라는 계기를 맞게 된다.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의 투병과 죽음도 심각한 문제지만, 정신적으로 도덕적·인격적 파탄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공동체에 더 큰 해악을 끼친다. 성경은 그런 극단적인 사람을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치가, 사업가, 종교인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틸리히가 말하는 생명체 기능의 두 번째 기본 운동은 생명의 자기 창조(self-creation) 운동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창조’ 개념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가는 능력’ 정도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엄밀한 의미의 ‘창조’는 전능자 하나님에게서만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도신조의 유일한 규정을 보면 ‘전능하시어 창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창조성은 하나님의 고유한 특징이자 능력이다. 그러한 창조 개념을 틸리히는 원창조성 (original creativity)이라 부르며 지속적 창조(sustaining creativity)나 목적 지향적 창조(diecting creativity) 와 구별했다.
여하튼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자기 통전 운동을 지속하되 공장에서 공산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듯 동일한 것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더하여 질량적으로 성장·성숙해간다. 30 억 년의 지구 행성 위에서 전개되어온 생명의 진화 과정은 생명의 종(種)이 다양해지고 아름다움과 새로움이 점증해가는 창조적 진화를 보여준다. 유전생물학이나 진화생물학은 그 현상을 유전자 돌연변이를 통한 ‘자연 선택’ 과정으로 설명하지만, 이는 너무나 단순하고 메마른 설명이다. 그렇다면 왜 생명의 진화 과정에 이전에 없던 새로움과 아름다움이 더해지며 창조적 진화를 하는 걸까? 이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답은 자연과학적 인과율 법칙이나 돌연변이설로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거기엔 형이상학적 요인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라는 과정철학자는 구체적 존재자를 창발시키는 ‘형이상학적 형성 원리들’로 현실재(actual entities), 영원한 이데아(eternal objects), 창조성(creativity), 그리고 신(God)을 꼽았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관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인 창조성과 로고스적 이념들을 하나님께 돌렸는데, 화이트헤드는 각각 독립시켜 설명한 것이다. 우리 기독교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왜소하게 줄어든 화이트 헤드의 신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인은 창조성의 능력과 원인과 근거는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생명 진화 단계에 인간이 출현하면서 생명의 ‘자기 창조’ 운동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 결과가 바로 문화 현상이다. 문학과 음악 등 예술 활동, 인공 지능 로봇을 비롯해 컴퓨터와 휴대폰 등의 발명으로 인간의 자기 창조적 기능과 운동은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활짝 열렸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와 문명의 발견과 발명은 역기능도 하기 때문에 인간을 소외시키고 멸종시킬 위험이 있으며 생태계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를 파괴시킬지 모른다. 왜 이러한 부정적 역기능이 발생하는 걸까? 인간의 자기 창조성이 실존적 상태에서, 자유의지의 남용과 과욕으로 인해 창조적 형태성을 파괴적 혼돈 상태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논의할 것이다.
틸리히가 생명 운동의 기본적인 기능 중 세 번째로 주목한 것은 생명의 자기 초월 운동이다. 생명의 자기 초월이 유한자 생명체가 유한성을 온전히 극복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시 한번 기하학적 공간 은유를 빌려 말하자면 중심을 향해 나아가는 원운동도 아니고, 새로움을 지향하여 앞으로 전진해나가려는 수평 운동도 아니다. 그 두 가지 운동을 하면서도 생명체는 수직으로 혹은 대각선으로 비상(飛翔)하려는 충동을 받는다. 쉽게 말해, 날아오르려 하는 것이다. 생명 진화 과정에서 날짐승의 출현은 신비한 생명의 모험이고 도약이었다.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체가 부력을 받아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습과 같다.
생물학적 몸을 공중으로 날아오르게 하려는 충동을 넘어, 인간 생명 단계에 이르러 정신적 - 영적으로 생명은 자기 초월을 하려고 한다. 여기에 인간 삶에서 특이하게 나타나는 숭고함(sublimity)과 거룩함 (holiness)에 대한 정신적 비전과 영적 갈증이 나타난다. 한마디로 종교란 생명의 자기 초월 기능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사람이 느끼는 숭고의 감정(feeling of the sublime)은 사람이 대자연의 웅장함, 예술적 아름다움의 극치, 자아를 희생하고 대아를 살려내는 영웅들의 자기희생적 삶을 목도할 때 느끼는 독특한 감정이다. 고난과 시련을 극복한 숭고의 감정은 인간의 도덕성을 고양시키고, 물욕과 허탄한 야망을 지닌 인간 심령을 정화시킨다. 모든 위대한 예술 작품은 숭고함의 결실이다.
숭고함과 거룩함에 대한 외경(畏敬)의 마음을 잃어버린 종교는 천박한 기복 신앙, 엄격한 율법주의, 그리고 기적을 추구하는 열광적 광신 종교로 전락한다. 1차원적 문명사회 풍조가 널리 퍼져 있는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근본 위기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목요CAFE’는 한사람의 강의를 일방적으로 듣기보다는 교재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나름으로 자신이 소화해서 자기의 신앙에 소리를 내보자는 의도입니다.
편한 마음으로 사랑방을 드나들 듯이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미 동부표준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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