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2021.10.7. 목요 cafe

목요 CAFE
작성자
akuc
작성일
2021-10-01 15:16
조회
920
노트 25

사건과 상징으로서의 십자가와 부활

기독론은 본질적으로 구원론의 기능을 담보한다. 우리는 진지하게 질문하고 대답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어떤 방법으로, 왜 ‘그리스도이신 예수’가 구세주 메시아인가를 변증해야 한다.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그리스도 예수라는 유일한 분의 삶과 가르침, 그 모든 것의 총괄적 사건으로서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모든 인간의 문제가 해결되는 보편적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하는가를 밝혀야 한다.
모든 종교사에 나타난 구원 신화나 구원 종교와 비교할 때 기독교가 갖는 특이성과 우월성은, 역설적으로 역사적 인간으로서 예수의 구체성과 역사성이 그 구체성과 한계성을 지니고 뚫고 나가면서 우주적 보편성과 궁극적 진리를 드러냈다는 점에 있다.
구체성과 보편성, 개체성과 전체성, 시간성과 영원성 등 상충되는 요소를 동시에 갖춘 기독론의 담론들은 그 역설적 진리성을 표현해내기 위해 필요한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설화론적, 신화론적, 상징적 표현들을 사용했다. 그러나 성서의 메시지를 해석하기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방법인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는 잘못된 해석학이다. 왜냐 하면 ‘비신화화’는 종교적 상징 언어를 폐기하고 잘못하면 당대의 자연과학적 진리관이나 도덕주의적 윤리적 의미로 성서의 메시지를 제한시키기 때문이다.
성서적 케류그마를 통속적, 미신적 종교나 객관적 문자주의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는 상징 기능을 중시해야 한다. 신약 성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론의 최고 정점은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이라는 ‘사건이면서도 상징 ’인 두 가지로 총괄 집약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Cross of the Christ)’와 ‘그리스도의 부활 (Resur­ rection of the Christ)’은 상호 의존적 상징이다. 그것들의 의미를 잃지
않으려면 그 둘을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실존적 소외의 표징인 죽음을 극복한 분의 십자가를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과정에서 수없이 등장한 위대한 인간들의 비극적 죽음 이야기의 또 다른 사례가 될 뿐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은 자기 자신을 실존적 소외의 극치인 죽음으로 내맡기신 분의 부활이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사에 적지 않게 등장하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다소 의심스러운 기적 설화의 또 다른 사례로 전락하고 만다. 십자가와 부활이 불가분리적 상호의존 관계라면, 십자가와 부활은 ‘실재이면서 상징(both reality and symbol)’이어야만 한다. 두 가지 사건에는 무엇인가 실존적, 역사적 예수 인간에게 아주 특별한 일이 일어났음을 증언한다.
십자가 사건은 대낮에 일어난 일로, 관찰과 탐구가 가능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부활 사건과 그에 관한 신약 성경의 보도는 깊은 신비의 베일에 싸여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의 자료 성격적 차이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 제자들과 신약 성서 집필자들의 마음에 십자가가 ‘사건이면서 상징’이라면 부활은 ‘상징이면서 사건’이라고 말이다.
신약 성서의 부활 사건을 전해주는 복음서 전승 자료에는 세 가지 입장이 혼재되어 있다. 첫째 입장은 ‘육체적(physical) 부활설’이다. 이에 따르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현은 육체를 지니고 되살아나신 예수가 그들 가운데 현존하는 것으로 보도된다. 상처 난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만져보라는 보도나 ‘구운 생선’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는 설화가 그 사례들이다. 둘째 입장은, 육체성 혹은 몸과는 전혀 상관없는 ‘영적 (spiritual) 부활설’이다. 셋째는 제자들의 심령 안에 현존하시는 ‘심리적(psychological) 부활설이다. 나는 이 세 가지 부활 이해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복권적 (restitutionary) 부활설’을 제기하고 싶다. 육체적, 영적, 심리적 부활설에 대비할 때 내가 말하는 ‘복권’ 혹은 ‘복위 (restitution)’설은 부활 사건이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복권, 복위 사건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말하는 의미 해석에서 내가 주장하는 복위설 혹은 복권설은, 부활 사건에 관한 육체적, 영적, 심리적 해석과 대비되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고백에 걸맞게 독특하고 권위적이며 존엄하고 영광스런 위상으로 복원하고 복귀하는 사건이 부활이라는 것이다. 그 복권은 예수와 하나님과의 하나 됨의 실재성에 뿌리내리고 있고, 동시에 그 하나 되심이 예수 제자들에게 끼친 영향력에 뿌리내리고 있다. 「조직신학」제2권, 150-158쪽

되새김

틸리히의 「조직신학」제2권 후반부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심장하며 논쟁적인 부분이 바로 모든 신학의 최종적 논제인 십자가와 부활의 해석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자란 나에게 틸리히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해석은 무릇 위대한 지혜 종교로 받아들여지는 동아시아의 보편적 세계 종교, 즉 불교나 유교나 노장사상과 비교해 기독교라는 종교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분명히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그의 부활 해석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틸리히의 그리스도론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대로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과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을 통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굳이 말한다면‘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에 가깝다. 왜냐하면 역사적 인물인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 곧 그리스도 구세주가 된 것은 그분이 본래 신적인 존재였다가 초자연적 기적사건을 통해 인간으로 형태 변화해서 온갖 지혜와 구원의 길을 제시했다고 강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기독교의 특징은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라는 인간 실존의 구체적 인간성, 역사성, 그리고 인간 일반이 겪는 소외적 한계상황에 철저하게 동참하고 공통 조건을 지니면서도, 실존적 소외가 비극적으로 결실 맺는 온갖 비본래적 생명 모습을 극복했다는 데 그 놀라움이 있다. 그 극복의 힘은 인간 예수가 ‘하늘 아버지’라고 부르고 순명했던 하나님과의 온전한 ‘하나 되심’의 삶, 동료 인간에 대한 철저한 동병상련과 섬김과 용서와 대속의 삶, 그리고 자연 일반의 우주적 힘과 에너지들과의 적대적 분리 관계를 극복한 삶에 있다.
십자가는 종교적 교권과 정치권력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정치범으로 내몰리면서 당한 ‘돌발 사건’이 아니라, 예수의 그리스도로서의 삶이 초지일관 관철됨으로써 겪고 부딪힐 수밖에 없는 운명적 결과였다. 하나님의 뜻과 사명에 순명하는 그의 삶은 구체적으로 진실, 공의, 공생, 상호 섬김, 사랑과 용서의 실천적 삶인데, 이 세상적 삶의 힘과 원리는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새로운 존재’로서의 삶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적대 세력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예수는 빌라도의 최후 법정에서 현실을 도피하여 종교적 관념 세계로 물러서지 않고 ‘내가 이 세상의 진정한 왕이다’라고 선언한다. 십자가는 이 세상의 거짓 왕들, 우상들과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이었다.
그래서 틸리히는 십자가가 구원의 상징인 것은 단순한 ‘고난의 상징’이라서가 아니라, 그 십자가를 짊어진 당사자가 ‘새로운 존재’이신 예수의 십자가였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그리스도가 되셨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리스도로서의 십자가였기에 구원의 십자가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노예 해방 운동가 스파르타쿠스를 비롯해, 위대한 인류사의 인간 해방 운동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순교자 영웅이 짊어진 십자가와 다른 점이 거기에 있다고 본 것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할 때 이미 예수는 그리스도셨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눈으로 보면 수치와 무능력, 패배, 실패로 보이는데, 부활 사건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본질을 드러내준다. 십자가와 부활 해석에 있어 두 사건의 상호 의존성과, 두 사건 이해에서‘사건’으로서의 성격과‘상징’으로서의 성격을 동시에 통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십자가는‘사건이면서 상징’이고 부활은‘상징이면서 사건’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틸리히 신학에서‘상징’이 갖는 심오한 의미를 늘 기억해야 하지만, ‘사건-상징’ 그리고‘상징-사건’으로 단어의 순서를 달리하는 데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틸리히는‘부활 사건’이 지닌 초이성적이고 초역사적인 측면을 사람들이 무시하고 ‘객관적 확실성 확보’라는 신념을 앞세워 부활 사건을 신체 소생 혹은 영혼불멸설과 동일시하려는 잘못을 피하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틸리히의 ‘복원설’은 신약 성경의 증언자들이 목숨 걸고 증언하려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건’으로서 부활 케류그마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불트만이 신약 성서를 연구하면서 부활 사건을 비롯해 기적 설화 등을 ‘비신화화(非神話化, demythologization)’하려고 했던 시도를 틸리히는 비판했다. 틸리히는 비신화화가 아니라 ‘비문자화(非文字化, deliteralization)’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문자화로 비신화화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틸리히의 용감한 탁견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불트만은 비신화화의 참 의도가 신화를 제거하자는 것이 아니라 ‘실존론적 의미로 재해석하자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비신화화는 해석자의 전이해(前理解)와 ‘영향사적 의식’ 안에서는 뉴턴-데카르트적인 세계관과 칸트적인 윤리의식이 사건 해석의 최종 규범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틸리히 신학을 되새김하는 나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틸리히의 부활 사건 해석이 복원설에 머무는 것은 틸리히 또한 불트만과 같은 동시대의 아들로서 뉴턴-데카르트적 세계관과 칸트적 실천이성의 한계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라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틸리히가 부활 사건 해석에 있어서 육체적, 영적, 심리적 해석 지평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 것은 옳지만, 사도 바울이「고린도 전서」 15장에서 말하는 ‘새로운 영적 몸으로의 형태 변화(transforma­tion)’를 마치 신화론적 신체 변화론(mutation)의 범주에 넣는 듯한 해석을 한 것은 지나친 억지이다. 틸리히는『조직신학』제5부 ‘천국과 영생’을 다룰 때 사도 바울의 ‘영적 몸’을 긍정적으로 다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부활 사건에 대한 틸리히의 이해는 초기 저작물과 후기 저작물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왜 그럴까? 그의 하나님론은 ‘존재 자체로서의 하나님’이라는 존재론적 입장이 강한 나머지 아브라함과 성서의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 곧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불러내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롬 4: 17)이라는 이해와는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약 성경 자체가 부활 사건을 인간 담론으로 이해하려 할 때는 ‘어리석고 낯설고 당혹스럽고 비이성적이고 우스꽝스런 이야기’로 들린다고 성서는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십자가는 사건이고 상징이지만. 부활은 상징이고 사건이다”라는, 순서를 달리하는 틸리히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신약 성경의 증언은 십자가와 부활이 모두 ‘사건이면서 상징’이며 부활 사건을 이해할 때도 그 순서가 뒤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일상적 인간 경험의 ‘사건’이란 시공 4차원에서 일어나지만, 인격적-영적 사건은 시공 4차원에 제한되지 않고 발생할 수 있다. 사실적 사건을 탐구할 때는 역사 이성의 탐구가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밝혀지지 않는 ‘생명적, 현실적 사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열린 실재관’ 또는 ‘다중 실재관’이 21세기 우리 시대에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10월 7일 목요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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