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2021.11.11. 목요 cafe

목요 CAFE
작성자
akuc
작성일
2021-11-12 21:26
조회
818
노트 48

기독교와 이웃 종교들의 만남

종교 간의 대화와 만남의 현실에서 마지막으로 문제되는 점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종교 다원 사회인 현재 상황을 면밀히 분석할 때 세 가지 가능성이 떠오른다. 첫째는, 모든 종교를 종합하여 원만한 세계적 보편 종교를 만들어내는 게 옳지 않을까? 둘째는, 한 종교가 교세를 막강하게 키워서 다른 종교들을 정복하는 게 옳지 않을까? 셋째는, 세계사가 세속화의 거대한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모든 종교가 종말을 맞이할 때가 왔다고 인정하는 게 옳지 않을까?
우리는 단언한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가능성은 어느 것도 옳지 않으며, 또한 불가능하다. 첫 번째로 모든 고등 종교들을 종합하여 그 럴듯하고 보편적인 세계 종교를 만든다는 망상은 각 종교들을 역동적 종교로 숨 쉬게 하는 구체적 핵심 생명력을 파괴해버리기 때문에 선택할 수가 없다. 그러한 발상은 종교를 살아 숨 쉬는 실재로 경험하지 않고 단순히 이론적 체계로만 이해하는 현학적 지식인들의 망상에 불과하다.
두 번째 가능성,곧 어느 특정 종교가 다른 종교들을 정복해서 흡수 통일시킨다는 생각은 특정 종교가 가르치는 실존적 인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의 방식을, 다른 종교 전통을 가진 신앙인에게 동일한 대답을 덮어 씌우는 셈이므로 옳은 길이 아니다. 역사적 종교들은 각각의 문화와 역사 에서 발생한 실존적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세속화가 더욱 진전되어 종교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는 발상법은 그 자체가 잘못이다. 물론 역사적 종교들은 계속해서 흥망성쇠를 거듭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서 인간 존재가 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열정이 살아 있는 한, 종교가 문화 속에서 아예 없어지는 끝장에 도달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종교가 종말에 이를 가능성은 없다. 특정 종교는 역사적 종교로서 자기가 지닌 특수성을 절대화하지 않고 거듭 극복하면서 자기를 부정하는 능력을 지니는 동안만큼 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모든 인간이 지니는 실존적 물음에 종교적 대답을 줄 수 있는 담지자가 되는 길은, 역설이지만 자기 자신이 지닌 역사적-구체적 특수한 요소들을 돌파하는 한도 내에서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조건을 성취할 수 있을까? 보편적 종교 개념은 자신의 종교 전통을 가볍게 포기 해버림으로써 문제 해결이 달성 되는 게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보편적 종교 개념이란 추상적 개념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영원한 보편적 종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각자 자신의 종교가 지닌 신앙, 사상, 실천의 가장 깊은 차원에까지 들어가는 길 뿐이다. 모든 살아 숨 쉬는 역사적 종교들의 깊은 곳에는 역사적 종교들 자신의 중요성을 상대화시키며, 심지어 잃게 만드는 한 점(a point)이 있다. 모든 역사적 종교들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가리키고 있는 거룩한 ‘그 한 점’은, 개별 종교의 역사적 특수성마저 돌파하게 하면서 역사적 종교들을 영적자유(spiritual freedom)로 고양시킨다.
그 영적 자유를 갖게 되면 인간 실존의 궁극적 의미에 관한 이웃 종 교의 표현들 안에서 성령의 현존을 볼 수 있도록 기독교 영성을 고양 시킨다. 바로 이러한 태도가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의 다른 이웃 종교들과 만날 때 갖추어야 할 본질적인 태도이다. -「기독교와 세계 종교들과의 만남」, 96〜97쪽

되새김

틸리히는 20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대두된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 문제에 관해 선구적 역할을 한 기독교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서구 기독교 사상계가 세계 문명사 속에 살아 숨 쉬면서 엄존하는 세계 고등 종교들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유교, 도교 등)과의 올바른 관계 정립에 깊고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그 결과,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1-1965)에서 이 문제를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다루었다. 그리고 r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Nostra Aetate)」이라는 역사적 공의회 문서를 채택하여 2천여 년 동안 유지해오던 타 종교들에 대한 기존의 태도에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 이전까지 로마 가톨릭 교회는 다른 종교를 기독교보다 훨씬 열등한 종교로 보았기 때문에 기독교에 의해 정복되고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타적-우월적 입장이 었던 것이다.
로마 교황청 당국은「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이라는 문서를 통해 힌두교와 불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 다른 종교들에도 거룩한 계시와 영성과 윤리와 예술과 숭고한 가르침이 있다는 것과, 가톨릭 교회는 그것들을 존중 하고 경청하며 대화를 나누고 협력할 것을 천명했다(『제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605~612쪽 참조).
틸리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회의와 그 결과물이 나오기 전, 그러니까 1960년에 일본을 방문하여 1년간 불교 학자들 및 선승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또 일본 불교 문화의 정수가 모여 있는 교토를 답사해 불교 의례도 깊이 성찰했다. 그런 다음 미국에 돌아가 뱀프턴 강좌를 통해 그 내용을 널리 알렸다. 여기 노트 48에서 인용 발췌한 내용이 주제에 관련된 틸리히 사상의 핵심이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과의 관계를 어떤 입장에서 접근해야 할까? 오늘날엔 이웃 종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틸리히는 먼저 세 가지 가능성을 열거하고, 그 세 가지 입장이 잘못된 생각임을 강력하게 천명한다.
첫 번째는 배타적-정복적-우월주의적 입장인 셈이다.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들은 기독교에 비해 열등한 종교, 계시 종교가 아닌 인간적인 종교, 심지어 미신적인 종교, 비윤리적인 종교라고 폄훼하며 가급적 기독교가 정복하여 기독교라는 계시 종교로 대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극보수 성향의 근본주의자들과 배타적 기독교인들과 그 지도자들이 취하는 태도이다. 이는 이웃 종교에 대해 무지하거나 편협한 지식으로 이웃 종교를 판단하는 무지의 결과일 뿐이다. 이런 태도는 오늘날 지구촌에서 종교 전쟁을 일으키며 종교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용납될 수 없다고 틸리히는 강조한다.
두 번째는 첫 번째와 정반대 입장인데, 보편적 지식인과 종교적 관 용주의자와 인문학자들이 흔히 취할 수 있는 태도이다. 이들의 입장은 그동 안 지구상에 나타났던 전통적인 종교들은 모두 그 나름대로 가치와 의미가 있지만, 역사적-문화적-지정학적 한계를 지닌 상대적 종교들이기 때문에 인류의 미래를 위해 ‘세계적 종교 사상’을 종합하여 새롭게‘인류 종교’를 정립하자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틸리히는 이러한 종교 혼합주의적 방법을 통한 ‘세계 종교’ 정립은 불가능하며 가치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 면 역사적 종교들은 이념의 체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거목(巨木)과 같아서, 땅에서 뿌리 뽑히는 순간 그 종교는 시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종교를 관념적으로,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최선의 교의와 상징체계와 성직 질서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공허한 이론일 뿐이므 로 인위적 종교 습합은 거론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계몽주의 시대 이후 종교가 세속화의 거대한 시대적 물결에 계속 침투당하여 종교적 영향력과 추종자들이 줄어드는 경향을 직시하려는 입장이다. 특히 프로이트나 도킨스처럼 무신론적 생물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종교란 결국 ‘환상’에 불과하므로 종교의 종말을 예견하고 그 역사적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과학적 인본주의적 세계관을 정립해야 한다는 입장이 다.
틸리히는 전통이 축적된 기존의 종교들은 흥망성쇠를 경험하겠지만, 종교 자체가 사라지는 ‘종교의 종말’이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 이 인간인 한 ‘궁극적 관심’을 갖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무신론적 과학자 들이 주장하는 새로운 세계관이나 실재관은 결국엔 신이 없는 ‘과학 종교 ’를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틸리히는 이러한 세 가지 입장을 비판하고 기독교가 미래에도 세계의 보편 종교로서 그 영성적 영향력을 지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뱀프턴 강좌의 마지막에 피력한다. 그것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역사적 종교들이 자기를 부정하고 각 종교를 탄생시킨 본래의 자리, 틸리히는 그것을 각 종교 속에 깊이 자리 잡은 ‘거룩한 한 점’이라고 은유적으로 말하는데, 그 자리로 거듭 되돌아감으로써 영적 자유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영적 자유를 가지면 다른 종교들에서도 빛나는 성령의 임재와 그 능력이나 결실을 간파해내는 속눈이 뜨이고, 기독교적이면서 타 종교와 대화하고 협력하는 영적 자유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함석헌은 말한다. "각각의 역사적 종교들은 위대하다. 그러나 진리는 그보다 더 위대하다.” 역사적 종교들은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손가락들이 다.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불교 선승들의 가르침도 대동소이한 것이다. 힌두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유교 등 모든 역사적 종교들은 그들 종교가 출현될 당시의 ‘삶의 자리’를 가지고 있다.
‘삶의 자리’를 이루는 구성소들은 역사적인 조건, 지질 및 기후 풍토 적 조건, 언어적·문화적 조건, 경제사회적 생산 양식과 분배 조건 등 아주 다양하다. 종교 창시자들과 그들의 첫 제자들은 ‘거룩한 진리, 말씀, 하나 님’을 체험하고, 또 그것들을 표현한다. 그때 그들은 백지상태에서 하지 않고 ‘삶의 자리’를 구성하는 ‘해석학적 지평(地平)과 시계(視界)’를 통해 경험하며, 그 경험을 표현한다.
그래서 모든 위대한 종교에는 특수성이 있고, 구원의 패러다임이 달 라진다. 기독교는 보다 인격적-역사적-정치적 색깔을 지닌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한다. 불교는 업(業, karma)의 윤회에서 해탈하여 일체의 욕망과 집착에서 해방된 존재론적-비시간적-탈정치적 색깔을 지닌 열반(니르바나)을 대망한다. 기독교는 인격적 죄의 문제와 죄책감을 극복하기 위해 속죄제사 종교로서의 패러다임을 지닌다. 불교는 인간의 삼독심(三毒心)을 극복하기 위해 마음 수행과 깨달음의 종교로서의 패러다임을 지닌다.
역사적 종교들을 각각 특색 있게 만들고 역동적이게 하는 구체적인 특성 (particularity) 은 종교 의례와 경건 양태, 신심, 교의, 상징, 사회적· 개인적 윤리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것들은 보존해야 할 소중한 특징이다. 그러나 동시에 틸리히는 각 종교의 특성을 돌파하여 한발 더 깊게 들어가면, 각 종교의 유형적 특징들을 만들어내고 값있게 만드는 ‘존재론적 지반과 능력’을 만나고 체험하게 될 것인바, 그 ‘궁극적 실재’는 어떤 형태의 언어나 상징이나 설명이 불가능한 ‘신비(mystery)’, ‘공(void)’, ‘거룩(holy)’, ‘신성(godhead)’이 영원한 현재로서 항상 현존한다.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은 각 종교의 유형적 특징을 간직하면서도 이 자리에까지 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틸리히는 조언한다. 이른바 역사적 신들을 넘어선 하나님(God beyond gods), 이름 없는 하나님 (nameless God), 언표 불가능한 브라만이다.
한국은 종교 다원 사회이다. 종교 간에 큰 갈등 없이 평화롭게 공존 하면서 지내왔다. 1919년 3·1 만세 사건에서 보듯이 나라의 독립이라는 큰 과제 앞에서 천도교, 기독교, 불교, 유교 등 지도자들은 함께 뜻을 모아 독립선언서를 만들고 독립운동을 펼쳤다. 20세기 후반이 시작 되어 지구촌 에서는 로마 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한국에서는 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이셨던 강원용 목사의 제청을 받아들여 1965년 10월에 6대 종단 대표들이 모여 대화하고 협력하며 인간적 삶을 위한 공동 과제에 힘을 기울이기로 다짐했 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한국종교인협회’라는 상설 기구가 만들어졌다.
1986년에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결성되어 북한의 식량 지원, 의료 기구 돕기. 우리 사회의 갈등 해소 등을 위해 실천적 사업을 활발하게 벌였다. 그동안 각 종단의 지도자들은 열린 마음과 협동 정신으로 큰 힘을 발휘했다. 불교계의 청담스님과 법정스님, 능가스님, 가톨릭계의 김수환 추기경과 정몽은 신부, 김화중 신부, 유교계의 유승국 교수와 최근덕 관장, 원불교계의 유병덕 교수와 김성곤 의원, 박광수 교수, 기독교계의 김재준 목사와 강원용 목사, 변선환 목사, 유동식 교수, 길희성 교수, 이정배 교수, 그리고 천도교와 민족 종교 대표 등 많은 분들이 힘을 모았다.
2012년 2월에는 ‘UN 종교 간 평화추진 한국협회(KSUNIPAR)’가 결성되 었는데, UN 총회에서 결의한 종교 간 평화 협력을 촉구하는 총회 결의문 문헌 자료가 한국협회 대표인 김윤열 선생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그리고 UN 총회가 회원국들에게 권고한 매해 2월 첫 주의 ‘세계 종교 간 하모니 주간행사(Wbrid Interfaith Harmony Week)’가 서울과 지방을 순회하며 꾸준히 실행되고 있다. 하모니란 본래 관현악단에서 음색이 서로 다른 악기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음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그와 같이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해서는 배타주의와 우월주의, 획일적 통합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각 종교가 고유한 전통과 유산을 지키면서 인류 평화를 위해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협력하며 연대하면서 일해야 하는 것이다. 한스 큉 박사의 말씀대로 종교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도 없다. 그것은 오늘날 지구촌이 처해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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