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요예배 / 2021년 4월 2일
요한복음서 19:23-30, 가상칠언(架上七言)
정해빈 목사
오늘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시고 운명하신 날을 기념하는 성금요일(Good Friday)입니다. 오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해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셨고 자기 목숨을 버리셨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축복해 주셨기 때문에 기독교는 오늘을 Good Friday라고 부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오늘은 좋은 날이 아니라 예수님에게는 가장 비극적이고 고통스럽고 슬픈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서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끔찍한 고통 가운데서도 마지막 운명하실 때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축복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죄가 용서받고 거듭났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을 가리켜서 Good Friday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랑/자비/용서만 말씀하셨더라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빛으로 오셔서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셨고 부패하고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폭력으로 억압하는 헤롯/로마제국을 꾸짖으셨고 저항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먹이셨고 병자들을 치료하셨고 사탄을 쫓아내셨고 사랑과 나눔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종교/정치 권력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불의한 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주님을 죽였습니다. 십자가는 로마제국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형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사형 도구였습니다. 기독교는 억압과 폭력과 불의를 반대합니다. 전쟁승리를 통한 평화를 반대합니다. 기독교는 사랑과 섬김과 나눔을 선포합니다. 정의를 통한 평화를 선포합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들 중에서 가장 강하고 뜨겁게 고난과 씨름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고난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억울하게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고 함께 그들의 손을 잡아줍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자기희생이 없는 종교, 고난을 피하고 축복만 받으려는 종교, 고난받는 이들을 외면하는 종교는 거짓된 종교입니다. 성금요일은 피조물의 고난을 함께 아파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함께 고난에 참여하는 신앙이 참된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가상칠언(架上七言)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7가지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면 예수님이 그동안 행하셨던 모든 삶이 이 말씀속에 요약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눅 23:34) 주님은 의인을 잡아 죽이는 악인들의 행동을 보며 가슴 아파 하시고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저들이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류와 기독교는 역사와 자연 앞에서 많은 죄를 저질렀습니다. 인류와 기독교의 죄악을 용서해 주소서. 알지 못하고 저지르는 저희들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소서. 저희들도 주님처럼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용서하게 하소서. (침묵)
2.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눅 23:43) 주님의 십자가 양옆에 두 사람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들은 강도가 아니라 유대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옆의 두 사람을 위로하셨습니다. 주님은 외롭게 죽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를 위해 순교한 순교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정의를 위해 죽은 사람들은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 (침묵)
3.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요한아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 19:26-27)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면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에게는 제자들을 사랑해 줄 것을 부탁하셨고 제자 요한에게는 어머니를 돌봐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였습니다. 교회는 혈육을 뛰어넘어 주님 안에서 한가족을 이루는 곳입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과 돌봄이 있는 영적인 가정(교회)를 이루게 하소서. (침묵)
4.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마 27:46)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버림받음과 외로움을 경험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기도응답이 이루어지지 않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외로운 순간이 있습니다. 때로는 정의가 땅에 떨어지고 불의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고 침묵하실 때 우리는 고통스러워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때가 될 때 의인을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외침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외롭게 죽은 사람들을 대변합니다. 역사 속에서 잊혀진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 의를 위해 순교한 사람들을 기억합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때가 될 때 억울한 사람들을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침묵)
5. “내가 목마르다.” (요 19:28)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육체의 갈증과 마음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생수가 필요합니다. 생수가 없어 고통받는 지구촌 사람들을 기억합시다. 주님은 또한 정의와 평화에 목마르셨습니다.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강같이 흐르게 하소서. (침묵)
6. “다 이루었다.” (요 19:30) 주님은 후회없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랑을 주는 사람만이 후회없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처럼 “다 이루었다”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살게 하소서. (침묵)
7.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눅 23:46)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운명하셨습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에 아버지께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아버지께 맡길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정의롭게 완성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께서 받아주시니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인생을 마칠 수 있습니다. (침묵)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오늘날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을 기억합니다. 사회에서, 가정에서, 지역에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기억합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미얀마 국민들을 기억합니다. 전세계 곳곳에서 차별받고 무시받는 가난한 이웃들을 기억합니다. 고난이 닥쳐올 때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있는지 때로는 하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 죄 없으신 주님께서 고난받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생명이 살아있는 한 고난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고난과 씨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아직 이 세상의 창조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을 통과하며 창조의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 신앙은 고난을 회피하는 신앙이 아니라 고난과 씨름하고 고난을 통과하고 고난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고 세상을 치료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온 몸으로 겪으심으로서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두려워할 때, 주님께서 앞장서서 고난을 겪으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세상의 어둠이 잠시 빛을 억압할 수는 있지만 생명의 빛을 영원히 가둘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금요일을 묵상하며 오늘날 고난받는 이들이 고난을 통과할 수 있도록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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