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막힌 담을 허무시고

성령강림절  아홉번째 주일 / 7월 세번째 주일
사무엘기하 7:1-7, 에베소서 2:14-22
성령강림절, 막힌 담을 허무시고
정해빈목사

 

세계의 모든 종교에는 그 종교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 또는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의 크기와 구조를 보면 그 종교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유대/기독교 신앙은 성전이 아니라 성막/천막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성막/천막은 한 곳에 설치했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성막/천막은 유대/기독교 신앙이 가난한 사람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유목민들과 함께하는 신앙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막은 성전으로 바뀌었습니다. 성막이 성전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유대/기독교 신앙이 더 이상 유목민들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다른 종교들처럼 기득권을 위한 종교, 국가를 위한 종교로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전을 건축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성전을 짓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기 위해 성전을 짓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최초로 성전을 지은 사람은 솔로몬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넓은 지역을 통치한 솔로몬은 7년 동안 18만 명을 동원해서 성막을 몇배로 확대한 화려한 성전을 지었습니다. 이 성전을 짓기 위해서 솔로몬은 레바논의 백향목을 비롯하여 많은 귀금속과 석재를 사용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그후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에 의해 500년 만에 두번째로 건축되었고 다시 500년이 지난 후에 로마시대 가나안을 통치했던 헤롯대왕에 의해 세번째로 건축되었습니다. 헤롯이 지은 세번째 성전은 첫번째와 두번째 성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였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동쪽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기 때문에 지중해 사람들이 성전을 구경하기 위해 관광을 올 정도로 크고 화려했습니다. 갈릴리에서 올라온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보며 감탄하였을 때 예수님은 이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고 곧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3일 만에 새로운 성전을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각 종교가 지은 거대한 성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저렇게 거대한 성전을 짓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기독교를 예로 든다면 지금 현재 현존하는 교회당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교회당은 바티칸에 있는 성베드로 성당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묻혀 있다고 알려진 이 성당은 1506년 건축을 시작해서 120년간의 공사 끝에 162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성베드로 성당 건축 공사 때문에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황 레오 10세는 성베드로 성당 건축기금을 모으기 위해서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면죄부를 사면 가족들이 지옥과 연옥의 고통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선전하였는데 이것을 보다 못한 마틴 루터는 1517년 비텐베르크교회 정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내걸며 면죄부를 판매하는 카톨릭을 비판하였습니다. 결국 이를 기점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심하게 표현하면 중세시대 수많은 성도들의 피와 땀을 빼앗아서, 거짓으로 면죄부를 팔아서 성베드로 성당을 지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베드로 성당과 쌍벽을 이루는 성당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면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볼 수 있습니다. 1882년 건축을 시작하여 지금도 공사가 진행 중인 이 성당은 144년 동안의 공사 끝에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사무엘기하 7장을 보면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고 계획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에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자신은 궁궐에서 사는데 하나님의 언약궤가 휘장 안에 있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다윗을 보좌하는 나단 선지자는 다윗의 말에 동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에게 나타나셔서 다윗과 나단의 생각을 꾸짖으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집에서도 살지 않고 오직 장막이나 성막에 있으면서 옮겨 다니며 지냈다. 내가 이스라엘 그 어느 지파에게라도 나에게 백향목 집을 지어 주지 않은 것을 두고 말한 적이 있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백향목으로 지은 거대한 성전을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사실과 주님은 한 곳에 머무르는 분이 아니라 성막을 통해서 히브리 백성들과 함께 동행하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기독교 신앙은 본래 유목민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 떠돌이들, 양을 치는 사람들, 히브리 백성들과 늘 함께 하셨습니다. 백성들과 동행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성막이 필요했습니다.

성전은 두가지 점에서 본래의 히브리 신앙과 배치됩니다. 첫째로 성전을 짓고 성전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르면 하나님을 성전에 가두게 됩니다.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 되었으니 하나님을 만나려면 성전에 가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본래 히브리인들의 조상들은 하나님께서 어느 곳이나 계시다고 고백했습니다. 야곱은 돌베개를 베고 자면서 하나님을 만났고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시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 가까운 곳에 늘 동행하십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기도 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기도 하고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기도 하고 인생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성전을 지어놓고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하면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성전에 가두게 됩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우리와 동행하시는 성막신앙이 본래의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성전은 사람들을 거룩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으로 나눕니다. 성전 건물을 보면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성전 바깥뜰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고 여성들은 여성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전 안마당은 유대인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고 성소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고 지성소는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전은 사람을 나누는 장벽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성전이 하나님을 가두고 사람을 나누는 장벽을 만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계획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성전과 정반대되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일상생활의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사람을 차별없이 사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성전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에베소서 2장에서 막힌 담을 허무시고 사람을 화해시키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증언하였습니다. 당시 에베소를 비롯한 소아시아 지역 초대교회에서는 유대인 성도들과 헬라인 성도들 사이에 인종적/문화적/신앙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은 똑같이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였지만 먹는 것도 달랐고 생활습관도 달라고 신앙전통도 달랐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화이심을 증언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유대인과 헬라인을 나누는 거대한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과거의 성전을 허무시고 3일 만에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새로운 성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님이 성전의 머릿돌이라면 우리는 성전의 지체입니다. 이제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이 성전이 되었습니다. 건물로 지어진 성전은 하나님을 건물에 가두고 사람을 차별합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사람들의 모임이 성전이 되었으니 큰 건물도 필요없고 옛날 성전처럼 사람을 나누는 장벽도 필요 없습니다. 그곳이 어느 곳이든지 사람들이 모여서 주님을 예배하는 곳이 성전입니다. 5명이 모여서 예배드려도 예배드리는 그곳이 성전이 됩니다. 주님께서 만들어 주신 새로운 성전, 교회에는 막힌 담이 없습니다. 누구나 환영하고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장벽이 없는 교회, 따뜻한 교회, 사랑이 넘치는 교회, 개방적인 교회를 만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인종의 장벽, 성별의 장벽, 계층의 장벽을 허무시고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을 따라 평화의 복음, 화해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