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나를 따라오너라

종려주일 / 3월 네번째 주일
종려주일, 나를 따라오너라
요한복음 12:20 – 33
정해빈 목사

오늘 설교 동영상 (2)(3)(4)는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영상이 고르지 않아 죄송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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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사순절 마지막 주일, 종려주일/고난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보내신 마지막 일주일을 종려주일/고난주일이라고 부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는 오늘 일요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월요일에 예루살렘 성전을 심판하셨습니다. 화요일에 성전 제사장및 헤롯 당원들과 토론하셨고, 수요일에 마르다/마리아/나사로의 집에 머무르셨습니다. 목요일 저녁에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로마 병사들에게 붙잡히셨습니다. 금요일 새벽에 대제사장과 빌라도 총독에게 심문받으시고 금요일 오전 9시 십자가에 매달리셨다가 6시간이 지난 오후 3시 운명하셨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께서는 오늘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는데 군중들이 주님을 환영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종려나무는 오하시스에서 자라기 때문에 사막 길을 걸어가다가 종려나무가 보이면 오하시스가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출애굽을 한 히브리 백성들이 광야를 걸어가다가 종려나무를 보며 기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종려나무가 있는 곳에 물과 그늘이 있습니다. 또 종려나무는 대추 열매를 많이 맺기 때문에 다산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둘째로 종려나무는 밑으로는 땅 속 깊은 곳 물 있는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위로는 30미터까지 올라가고 나무를 베고 남은 그루터기를 불에 태워도 그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나기 때문에 고난을 이기는 용기와 강인한 생명과 승리와 부활을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이 나무는 유대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셋째로 옛날 여자 사사였던 드보라는 종려나무 아래에서 공정한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종려나무는 공정한 재판과 정의와 정직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주님을 향해서 “주님,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과 안식을 주십시오. 우리에게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용기와 강인한 생명과 죽음을 이기는 승리와 부활을 주십시오. 우리에게 공정한 재판과 정의와 정직을 주십시오” 이렇게 외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2장 말씀을 보면 유대교 명절인 유월절에 그리스/헬라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주님을 뵙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들으신 주님은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헬라 사람들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자신들이 자랑하는 많은 신들과 영웅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우스 신을 자랑했고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을 자랑했습니다. 그리스/헬라 사람들은 웅변을 잘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제야 비로소 주님께서 참 메시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말 잘하는 사람도 많고 철학자들도 많고 왕들도 많고 신들도 많지만 주님 같은 분은 없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참 메시야는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고,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어야 열매를 많이 맺는 것처럼 자기를 버려서 이웃을 살리는 사람이 참 메시야라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주장하는 자칭 영웅/통치자/철학자/메시야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를 따르십시오. 내가 세상을 구원하겠습니다. 내가 나라를 일으키겠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부자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주장하면서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진정한 지도자가 아니라 거짓말쟁이요 사기꾼이라는 것이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지금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이다. 이제는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날 것이다. 내가 땅에서 들려서 올라갈 때에 나는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올 것이다.” 주님께서는 내가 십자가에 들려 올라갈 때에 이 세상의 통치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죄 없으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주님과 세상 왕들을 비교하게 됩니다. 주님과 세상 왕들을 비교함으로서 누가 참 왕이고 누가 참 메시야인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게 비교되는 것 자체가 세상 통치자들이 심판을 받는 것과 같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초대교회가 박해받은 시절 지하 동굴 카타콤에 예수님이 두 팔을 벌리고 서 계시는 그림이 있습니다. 사람이 손을 자기 앞으로 하면 무엇을 자기 쪽으로 움켜쥐는 모습이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손을 밖으로 벌리면 자기를 개방해서 이웃을 환영하고 베푸는 모습이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향해서 손을 들고 서 계십니다. 지하 동굴 그림이 보여주는 것처럼 손을 벌려서 이웃을 환영하시고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통해서 주님과 세상 왕들을 비교하였고 그런 비교를 통해서 세상 왕들은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 34절, “예수께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다.” 저 옛날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 목자가 없으므로 그들이 흩어져서 들짐승의 밥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의 거짓 목자들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선한 목자로 오신 주님께서는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 주님은 우리들이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옛날 히브리/유대인들은 죄를 지었으면 그 죄값으로 피를 흘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동물의 피를 흘려서 죄를 사죄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예수님이 우리 대신 피를 흘리셔서 우리 죄값을 사해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꼭 이렇게 유대교 식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한 목자로 오신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돌보고 지키기 위해 오셨다가 이리와 늑대 같은 이들에게 붙잡히시고 죽으셨습니다. 양들을 사랑하고 돌보고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참 사랑은 자기 목숨을 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으면 고난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습니다. 우리 옛말에 기쁨은 함께하면 두배가 되고 고난은 함께하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고난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아파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의 고난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우리도 고난받은 이들의 고난을 같이 그리고 대신 짊어질 때 그들의 고난은 절반으로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종려주일을 묵상하며, 우리들도 주님처럼 이웃의 고난을 같이 짊어짐으로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그들을 살리는 선한 목자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alm Sunday, follow me
John 12:20 – 33

Now among those who went up to worship at the festival were some Greeks. They came to Philip, who was from Bethsaida in Galilee, and said to him, ‘Sir, we wish to see Jesus.’ Philip went and told Andrew; then Andrew and Philip went and told Jesus. Jesus answered them, ‘The hour has come for the Son of Man to be glorified. Very truly, I tell you, unless a grain of wheat falls into the earth and dies, it remains just a single grain; but if it dies, it bears much fruit. Those who love their life lose it, and those who hate their life in this world will keep it for eternal life. Whoever serves me must follow me, and where I am, there will my servant be also. Whoever serves me, the Father will honour. Now my soul is troubled. And what should I say—“Father, save me from this hour”? No, it is for this reason that I have come to this hour. Father, glorify your name.’ Then a voice came from heaven, ‘I have glorified it, and I will glorify it again.’ The crowd standing there heard it and said that it was thunder. Others said, ‘An angel has spoken to him.’ Jesus answered, ‘This voice has come for your sake, not for mine. Now is the judgement of this world; now the ruler of this world will be driven out. And I, when I am lifted up from the earth, will draw all people to myself.’ He said this to indicate the kind of death he was to die. (John 12:20 – 33)

Jesus, our Lord and Shepherd, had suffered for us. Mark 6:34 says that Jesus saw a great crowd and felt compassion for them as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So he taught them many things. The ancient prophet Ezekiel also stated that the Israelites did not have a true shepherd, so they were scattered and became the food of the wild animals, because of the false shepherds of Israel who eat their own. But the Lord, who came as a good shepherd, gave his life for the sheep. John 10:10 says, “Thieves are only to steal, kill, and destroy. But I have come to bring the sheep to life and to overflow.” The Lord came to love, care for, and keep us, and as a result, he was caught and killed by those thieves who had earthly powers. True love is to give his life. If I do not love others, I do not have to remember their pain and suffer with them. It is the love for them that I take their suffering. Our old saying says, joy is doubled and suffering is reduced to half when we share it together. Because Jesus loved us, he took our suffering instead. As Jesus did for us, when we bear the afflictions of others, their suffering will be cut in half. The Lord has told us to follow him. Remembering Palm Sunday, we meditate on bearing our neighbor’s sufferings like our Lord. We are called to share their pain and live a life of a good shepherd.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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