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네번째 주일/1월 네번째 주일
주현절, 나를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으셨으니
디모데전서 1:12 – 17
정해빈 목사
오늘 예배는 이상철 목사님 2주기 추모예배로 드립니다. 오늘 추모예배를 맞이해서 3가지 이야기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북간도 독립운동” 이야기입니다. 2019년은 3.1절 100주년, 상해 임시정부가 선포한 대한민국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올해에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를 보면 당시 기독교인들 숫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3.1 운동과 독립운동에 열심히 참여하였습니다. 지난 2019년 1월 1일과 1월 2일 한국기독교방송(CBS)에서 “북간도의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특집 다큐멘타리를 방송한 적이 있었습니다. 압록강과 두만강 북쪽 지역을 간도 땅이라고 부르는데 서북쪽은 서간도, 동북쪽은 북간도라고 부릅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3월 13일 북간도 서전평야에서 3만 명의 한인들이 참여하는 독립만세운동이 열렸습니다. 두만강 북쪽 땅에서 3만 명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그때 평화적인 만세운동을 벌이다가 여러 명이 희생당했는데 그 이후로 본격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되었고 북간도는 상해임시정부의 토양이 되었습니다. 이동녕, 이동휘, 김약연, 문재린, 문익환, 문동환, 윤동주, 송명규, 김재준, 정대위 등 많은 지도자들이 북간도에서 배출되었습니다. 당시 북간도 용정에서는 캐나다연합교회가 운영하는 은진중학교와 명신여자중학교가 있었고 캐나다 선교사님들은 기독교인들의 독립운동을 후원하였습니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북간도 지역은 기독교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를 생각해 보면 우리 교회가 속한 캐나다연합교회에 감사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상철 목사님께서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나신 후에 소련의 핍박을 피해서 7살 때 북간도로 이주하셔서 용정에 있는 은진중학을 다니셨고 그곳에서 교목으로 계시는 김재준 목사님을 만나셨습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이상철 목사님께서 방송설교집 [지구촌 일각에 서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목사님은 1970년대에 일주일에 한번씩 교민들을 향해서 방송설교를 하셨는데 그 책에 보면 [한국 민족을 자랑한다]라는 제목의 글이 나옵니다. “종종 동포들 입에서 ‘한국 사람은 할 수 없어’하는 말을 듣는 수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한국 사람은 신통치 않은 민족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고 말해 온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외국 생활을 하면서 여러 민족을 접촉하면서 내 생각은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지난 몇 해 동안 ‘한국 사람은 틀렸어’ 하는 말 대신에 ‘한국 사람은 훌륭해!, 한국 민족은 희망이 있는 민족이야’ 하는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첫째로 한국 사람은 인정이 넘쳐흐르는 민족입니다. 커피 마시러 가자고 해놓고서는 커피를 마신 후 자기 커피 값만 내고 네 커피 값은 네가 내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서구 사람보다는 음식점 카운터에서 서로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밀고 당기는 한국 사람들이 나는 존경이 가고 좋아집니다. 둘째로 한국 사람은 정서적이고 로맨틱합니다. 서구 사람들의 외향적인 정열은 금방 식어버리지만 한국 사람들의 내향적인 정열은 오래 가고 쉽게 식지 않고 두고두고 마음에 간직할 만한 저력이 있어 훨씬 믿음직하고 흐뭇합니다. 셋째로 한국 사람은 단결력이 없어서 희망이 없는 민족이라고 자학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 사람은 과잉 단결의욕을 가진 민족이라고 보여집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람은 정의감이 강한 민족입니다. 일본 식민지하에서나 북한 공산치하에서나 남한 독재정권 하에서 뜻 있는 한국 사람들이 정의와 자유를 외치고 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고 사형을 당한 사실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보기 힘든 자랑스러운 모습입니다.”
이런 내용의 글을 방송하셨는데 그 다음 주에 “다시 한국 민족을 자랑한다”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방송 설교를 하셧습니다. “지난 토요일 아침, 나는 한국 사람이 훌륭한 민족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이에 대해 여러분들이 각자의 견해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국 사람이 그렇게 훌륭한 민족이라면 어째서 반만 년의 역사를 항상 외적인 억압과 내적인 당파 싸움으로 일관했느냐? 고 묻는 분도 계셨습니다. 나는 이런 역사적인 비극이 한국 사람의 죄 때문이라든지 우리의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한국 민족이 아니라 한국 민족을 침략하고 우리 문화를 짓밟고 생존권을 약탈해간 강대국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민족은 역사의 비극을 경험하면서 종교적인 희망을 개척해 왔습니다. 그래서 한국 민족은 종교적인 민족이 되었습니다. 고난과 절망을 신앙으로 견뎌온 한국 민족의 신앙경험은 세계인에게 나누어 줄 충분한 가치가 있고 그것으로 한국 민족이 인류에게 공헌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들은 친절하고 무슨 말이든지 금방 동의하고 이쪽 의견을 무조건 수락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예의적인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데, 한국 사람들은 대하는 태도가 일대일이고 개방적이고 자기 의견을 분명히 밝히고 그러면서도 친근미와 동지의식이 강해서 훨씬 믿음직하다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합니다. 저는 이런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한국민족은 그 깊은 곳에 세계인이 될 수 있는 소양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내용의 방송 설교를 하셨는데 우리가 한번쯤 되새길만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번째 이야기는 일본인으로 태어났다가 한국인으로 귀화한 호사까 유지라는 분이 쓴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본 사람들에게 사무라이 무사 정신이 있다면 한국 사람들에게는 선비 정신이 있습니다. 일본은 사무라이 무사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은 많지 않지만 초등학교에 수영장을 설치해서 전교생이 수영교습을 받아야 하고 중고등학교에서는 스포츠가 활발해서 거의 모든 고등학교에 야구부가 있습니다. 반대로 한국의 선비 문화는 철학/문화/예술/예절을 중요시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실제적인 일을 가지고 토론을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추상적인 사상을 가지고 토론을 벌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저자는 일본 사람들은 우월감과 편협함을 버리고 다른 민족과의 예절을 더 배워야 하고 한국 사람들은 피해의식과 추상적인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작은 일에 총명하고 큰 일에 둔하고 한국 사람들은 큰 일에 총명하고 작은 일에 둔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3가지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이 세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고 우리를 복음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우리를 새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우리들과 우리 민족에게는 반성하고 고쳐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고난을 통해서 때로는 깨달음을 통해서 과거의 우리를 미래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디모데전서 1장에서 자신을 가리켜서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내가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물론 바울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대교를 사랑했고 율법을 열심히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는 교만하고 배타적이고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바울을 자비롭고 너그러운 사람, 이방인을 사랑하는 사람, 생명과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 뜻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끝없이 참아 주심의 한 사례를 먼저 나에게서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앞으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사람이 이렇게 변화될 수 있다는 본보기로 나를 삼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민족을 변화시켜 주시고 사람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을 부르신 것처럼, 이상철 목사님을 일찍 부르셔서 민족과 인류를 위해서 일하게 하시고 그를 우리들의 신앙의 모범/본보기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높고 넓고 깊은 것인지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상철 목사님은 키는 작으셨지만 누구보다도 가슴이 크셔서 모든 사람들을 품에 안으셨습니다. 우리들에게 크고 높고 넓은 신앙을 물려주신 신앙의 선배님들을 기억하며 그 아름다운 신앙을 계속 이어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piphany, making an example to believers
1 Timothy 1:12 – 17)
I am grateful to Christ Jesus our Lord, who has strengthened me, because he judged me faithful and appointed me to his service, even though I was formerly a blasphemer, a persecutor, and a man of violence. But I received mercy because I had acted ignorantly in unbelief, and the grace of our Lord overflowed for me with the faith and love that are in Christ Jesus. The saying is sure and worthy of full acceptance, that Christ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save sinners—of whom I am the foremost. But for that very reason I received mercy, so that in me, as the foremost, Jesus Christ might display the utmost patience, making me an example to those who would come to believe in him for eternal life. To the King of the ages, immortal, invisible, the only God, be honor and glory forever and ever. Amen. (1 Timothy 1:12 – 17)
Just as God loved and transformed the apostle Paul, God has protected and transformed the Koreans for the past 100 years. God has also transformed the Very Rev. Sang Chul Lee, who was born in Russia and made him an example of faith. He showed us how high and wide the life of the person called to God can live. The Very Rev. Dr. Lee was not tall, but his heart was bigger than anyone, so he held everyone in his arms. We are called to keep that beautiful faith, remembering our seniors of faith who have given us a big, high and wide faith.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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