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두번째 주일 / 1월 세번째 주일
사무엘기상 3:15-20, 고린도전서 6:13-20
주현절, 소명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정해빈 목사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마이클 샌달(Michael J. Sandel)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을 써서 다시한번 주목을 받았습니다. 책의 원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능력의 폭정: 과연 무엇이 공동선을 만드나?] 한글 번역 서적은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를 이 책의 부제로 달았습니다. 책의 제목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노력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노력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서 그것은 당신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성공했기 때문에 나는 성공을 누릴 권리가 있고 당신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당신이 게을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능력주의”는 각자 처한 삶의 환경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가난한 환경을 뚫고 소위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개천에서 용 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요즘 세상은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부유한 동네/집안에서 태어나서 좋은 학교를 다니고 비싼 과외를 받고 부모나 집안을 통해서 좋은 정보/인맥을 얻는 사람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합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부유한 재산을 물려받을 것이고 좋은 배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좋은 배경을 물려받을 것이고 지식인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지식을 물려받을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이미 절반의 성공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신입생의 52%가 소득 상위 20%에 해당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전체 신입생의 1/3에 해당하는 기회균형, 지역균형선발 학생을 제외하면 일반 신입생의 대부분이 상류층 자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세계적인 기업가가 나오지 않는 것은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기업할 수 있는 환경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노력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 남들보다 더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불우한 환경을 뚫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통계로 보면 불우한 환경을 뚫고 성공한 사람보다는 좋은 환경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능력주의”는 부자/성공한 사람에게는 교만을 주고 가난한 사람/실패한 사람에게는 절망을 줍니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노력 때문에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실패한 사람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샌달 교수는 성공한 사람은 자신이 남들보다 좋은 환경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겸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이 남들보다 사회적인 혜택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성공을 그들과 나누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이 사회는 완벽하지는 않아도 조금 더 공정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능력주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이 사회를 병들게 만듭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할 것이고 무시받은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을 향해 적개심을 가질 것입니다.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능력주의에서 낙오된 백인 저학력/저소득층이 워싱턴 엘리트에 대해 반감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이클 샌달 교수는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은 잡화상 계산원들, 배달원들, 방문의료서비스담당자들, 그밖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면서 박봉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일을 소명으로 여기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사회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사무엘기상 3장은 고대 이스라엘 사사시대에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장면을 기록했습니다. 옛날 사사시대에는 왕이 없었고 사사(판관)가 행정/외교를 담당했고, 제사장이 제사/일상생활을 담당했습니다. 사무엘이 어렸을 때 늙은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직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행실이 좋지 못했습니다. 사무엘기상 2장에 의하면 두 아들은 백성들이 제물로 드리는 고기를 빼앗았고 성막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간음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집안에게 저주를 내리셨고 엘리의 집안 대신 사무엘을 선택하셨습니다. 본래 사무엘은 에브라임 지파 산간지방에서 사는 엘가나와 한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가 산간지방에서 살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사무엘의 집안이 평범한 집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부모는 사무엘을 서원하여 낳았기 때문에 사무엘이 젖을 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를 엘리에게 나실인으로 바쳤습니다.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늙은 제사장 엘리의 시종을 맡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무엘기상 3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린 사무엘을 3번 부르셨고 그에게 선지자/제사장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엘리의 집안은 본래 제사장 집안이었으나 두 아들이 자신들의 사명을 소홀히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특권으로 여기고 소홀히 하는 사람은 공동체에 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공/특권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쉽게 교만해지고 쉽게 유혹에 빠지고 쉽게 타락할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기득권/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기득권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이 모든 기득권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저절로 주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겸손하지 못했고 오히려 반대로 기득권을 남용하였고 공동체에 해를 끼쳤습니다. 참된 소명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면, 만일 내가 다른 사람보다 유리한 환경의 혜택을 보고 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고, 내가 가진 기득권/특권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고린도전서 6장에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에는 영혼구원과 육체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나의 영혼은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 육체는 어차피 썩어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육체로 무엇을 하든지 상관이 없다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종교/철학에 대한 지식이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주장을 하면서 방탕한 삶을 살았고 신앙 수준이 높지 않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지 못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육체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몸은 음행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고 말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도바울은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소명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내가 가진 좋은 환경/특권/기득권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15:10)”이라는 유명한 고백을 했습니다. 나의 몸도 주님의 것이고 나의 성공도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건강/물질/환경/성공을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겸손하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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