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예언자가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주현절 네번째 주일 / 1월 다섯번째 주일
주현절, 예언자가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에레미야서 1:5-10, 누가복음서 4:24-30
정해빈목사

 

1300년대 중세시대에 흑사병(Black Death)으로 인해 유럽인구의 절반이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피부가 검게 변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 병을 흑사병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병이 검은 고양이와 관련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당시 카톨릭 교회는 검은 고양이가 악마의 동물이라고 생각해서 보이는 대로 다 죽였습니다. 검은 고양이가 보기에 좋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검은 고양이를 가까이하는 여자를 마녀라고 생각해서 화형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고양이들이 사라지자 쥐들이 늘어났고 쥐 안에 있는 벼룩이 병균을 사람에게 옮기게 되었습니다. 흑사병은 치사율이 95%에 달할 정도로 치명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병의 원인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병을 퍼트린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병을 없애기 위해서 교회에 가서 기도하거나 무당을 찾아가서 부적을 붙이거나 굿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중세시대에 잘못된 종교와 미신과 편견이 얼마나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흑사병의 원인을 제공했고 무당들이 병을 더 악화시켰습니다. 의학지식이 없는 종교나 무당이 사회를 망칩니다. 오늘날에도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있는데 그렇게 주장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코로나에 걸려서 죽는 일도 있었습니다. 잘못된 종교와 잘못된 무당을 멀리해야 합니다. 흑사병으로 인해서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시대가 무너지고 과학과 인문학을 중요하게 여기는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흑사병은 1300년대부터 300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1500년대 미래 예언가로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는 청결하지 못한 위생이 흑사병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물을 끓여 마시게 하였고 상수도와 하수도를 분리하게 하였고 길거리에 있는 시체들을 땅 속으로 매장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위생관리를 하게 되자 차츰 흑사병이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미신과 편견을 물리치고 원인을 분석하고 의학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구약성경 레위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히브리 백성들에게 거룩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분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인류가 미신을 따르지 않고 레위기의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였더라면 흑사병과 같은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흑사병은 종교개혁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집에 불이 났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물에 빠졌을 때 수영하지 말고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익사해야 하는가? 다리가 부러졌을 때 의사의 도움을 받지 말고 ‘이건 하나님의 심판이야. 저절로 나을 때까지 참고 버텨야 해’라고 해야 하는가? 나는 하나님께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를 지켜달라고 간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소독하여 공기를 정화할 것이고 약을 지어 먹을 것이다. 나는 내가 꼭 가야 할 장소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피하여 나와 이웃 간의 감염을 예방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누구든 어떤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미신과 편견을 멀리하고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고 이웃을 돌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누가복음서 4장은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배척받으시는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묵상한 것처럼 예수님은 세례받으시고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후에 고향 나사렛에 오셔서 취임설교를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고 희년의 기쁜 소식을 전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고향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요셉의 아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고향 사람들 중에는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예수님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회당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마음속으로 예수님의 취임설교가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복음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갈릴리 지도를 보면 예수님이 자란 나사렛은 농촌지역에 속해 있고 가버나움은 호숫가에 속해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헬라인들도 만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유대인과 헬라인을 만날 수 있고 농부와 어부를 만날 수 있고 배를 타고 이동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가버나움을 공생애 장소로 선정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하나님나라를 가르치시고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가버나움에 사는 유대인/헬라인들은 예수님을 환영하고 말씀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고향 나사렛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해안가에 위치한 가버나움이 개방적인 곳이었다면 오래된 나사렛 마을은 보수적인 곳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엘리야와 엘리사 예언자의 예를 들어서 때로는 이방인들이 유대인들보다 더 개방적이고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을 피해서 시돈으로 도망을 갔을 때 마침 3년 6개월 동안 기근이 들었습니다. 시돈에 사는 사르밧 과부는 멀리선 온 엘리야에게 물을 주고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을 가지고 엘리야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또 시리아의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의 지시를 순종하였기 때문에 나병에서 고침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때로는 이방인들이 이웃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우월의식과 배타주의와 미신과 편견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더 우월하다는 편견, 요셉의 아들이 우리를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말씀과 새로운 이웃을 환영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우월의식과 편견은 참사랑을 방해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떤 마을은 외지인을 환영하는 곳도 있지만 어떤 마을은 텃새가 너무 심해서 외지인이 정착하지 못하는 곳도 있습니다. 인종에 대한 편견과 우월의식과 잘못된 지식을 버리고 이웃을 환영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예레미야서 1장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부르시는 장면을 기록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말도 할 줄 모르고 나이도 어리다고 말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너를 누구에게로 보내든지 너는 그에게로 가고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남유다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남유다가 망할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이 때문에 같은 동포들로부터 많은 모욕과 학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예레미야가 동포들로부터 학대받는 것을 생각하시고 예언자가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예언자는 시대를 앞서가서 불편한 진리를 말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미움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예언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인류는 무지와 편견과 미신에서 벗어나 앞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예언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고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었습니다. 인류는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남성과 여성을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인류에게로 확대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도 사랑하시고 몸이 아픈 사람도 사랑하시고 성적 소수자도 사랑하시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잘못된 지식, 잘못된 편견, 잘못된 우상을 버리고 이웃을 환영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흑사병처럼 잘못된 편견과 지식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종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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