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주현절 세번째 주일/1월 세번째 주일
주현절,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빌립보서 4:1 – 7
정해빈 목사

 

날씨가 아주 추운 1월 세번째 주일입니다. 어제 토요일 있었던 제직수련회에서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함께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보통 교회를 가리켜서 성부, 성자, 성령께서 만들어 주신 성도의 모임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신 것처럼 우리를 당신의 일꾼으로 부르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셨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성도의 모임”이 됩니다. 둘째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제자로 부르셨기 때문에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제자 모임”이 됩니다. 셋째로 교회는 오순절 성령체험을 하고 나서 세워졌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공동체”가 됩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교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성도의 모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제자의 모임,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공동체” 이렇게 3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Ecclesia)” 라고 부르는데 에클레시아는 “불러내다, 회의를 소집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에클레시아는 옛날 고대 그리스 도시들의 총회를 가리킵니다. 도시 시민들이 광장에 다 모였다고 해서 민회라고도 부릅니다. 옛날 아테네에서 전쟁이 벌어지거나 중요한 일이 벌어지면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서 회의를 하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 총회/민회에는 그 도시에 거주하는 “성인 남자 자유인 시민권자”만 참석할 수 있었고 아이, 여자, 노예, 이방인은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히브리/이스라엘 사회에서도 지파 백성들이 다 모이는 총회가 있었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카할(Qahal)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카할도 그리스의 에클레시아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성인 남자 정상적인 유대인”만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 여자, 병자/장애인, 이방인은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카할과 그리스의 에클레시아가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신약성경의 초대교회를 가리켜서 “에클레시아”라고 불렀습니다. 고대 그리스나 고대 이스라엘의 기준으로 보면 초대교회는 에클레시아가 될 수 없었습니다. 첫째로 초대 교회는 도시 사람들이 다 모인 것이 아니라 많아야 50여명 모인 것이기 때문에 에클레시아가 될 수 없었고, 둘째로 초대 교회에는 성인 남자 자유인 시민권자만 모인 것이 아니라 아이, 여자, 나그네, 외국인, 병자, 가난한 사람들이 다 모였기 때문에 헬라인들이나 유대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교회는 총회/민회/에클레시아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꿋꿋하게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불렀습니다. 왜 바울은 꿋꿋하게 교회를 에클레시아로 불렀을까요? 바울은 성인 남자 자유인 시민권자만 참석하는 모임은 진정한 사람들의 모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모임이 진정한 총회/민회/에클레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성도의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유대인과 헬라인, 남자와 여자, 주인과 종의 구별이 없고 모두가 함께 예배드리는 교회가 그 도시를 대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교회가 옛날 모임과 얼마나 달랐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떤 모임이든지 누구든지 원하면 참석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에는 항상 구별과 차별이 있었습니다. 대체로 건강한 성인 남자 자유인 시민권자만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이러한 구별과 차별을 깨트리고 인류 역사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사람은 인종이나 성별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 교회의 식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인류의 희망이요 모범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옛날 모임과 다르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교회로 모여서 함께 예배드리고 신앙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격스러운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진실로 교회는 인류의 희망이요 모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교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교회는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세상 구원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교회가 이렇게 감격스럽고 귀하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교회를 소중히 여기고 더 좋은 교회로 만들 사명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우리 교회를 더 좋은 교회로 만들 수 있을까요? 세상 구원을 위해서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꼭 반드시 크고 대단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크고 대단하지 않아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어제 제직수련회에서 3가지 구체적인 목회의 목표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로 우리 교회가 토론토 노스욕 한인타운 새 건물로 이사했으니 열심히 전도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필요한 사람들, 교회 안다니거나 교회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를 소개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좋은 교회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가서 “여기 건강하고 따뜻하고 올바른 교회가 있습니다.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합시다” 권유하고 전도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누구나 와서 은혜받고 교회의 식구가 될 수 있도록 교회의 문을 활짝 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두번째로 목회와 행정을 분리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한국교회들 중에는 하나의 기관이 교회의 모든 일을 다 결정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의 조직이 모든 권한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일은 목회자와 당회가 맡아서 하고 행정과 재정과 봉사는 제직회가 맡아서 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권한과 역할이 분명하고 모든 성도님들이 참여하고 민주적이고 투명하고 깨끗한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새해에는 성도님들께서 교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셔서 우리 교회가 자발적이고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교회가 되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성도님들 스스로가 교회의 주인이 되어서 교회를 이끌어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우리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먼저 체험하고 세상에 전하는 교회, 하늘의 기쁨이 충만한 교회가 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교회에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 말씀과 찬양과 기도의 기쁨, 성도의 교제의 기쁨, 사랑과 격려와 위로의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이런 기쁨이 없다면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하늘의 기쁨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올 수 있는 교회, 자유롭고 평등한 교회, 은혜와 사랑, 격려와 위로가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을 주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빌립보서 4장에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외쳤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편지를 썼기 때문에 기뻐하고 싶어도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홀로가 아니고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는 교인들을 걱정하고 위로하고 교인들은 목회자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아름다운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지금 고난을 겪고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힘주시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세상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에클레시아, 아무런 차별이 없는 교회를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어려운 문제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 문제가 없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문제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보다 기쁨이 클 때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어려운 점도 있고 문제도 있지만 그 문제보다 우리의 기쁨이 더 크면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교회가 더 기쁘고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먼저 체험하고 그 기쁨을 세상에 전하는 복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멘.

Epiphany, rejoice in the Lord
Philippians 4:1 – 7

Therefore, my brothers and sisters, whom I love and long for, my joy and crown, stand firm in the Lord in this way, my beloved. I urge Euodia and I urge Syntyche to be of the same mind in the Lord. Yes, and I ask you also, my loyal companion, help these women, for they have struggled beside me in the work of the gospel, together with Clement and the rest of my co-workers, whose names are in the book of life. Rejoice in the Lord always; again I will say, Rejoice. Let your gentleness be known to everyone. The Lord is near. Do not worry about anything, but in everything by prayer and supplication with thanksgiving let your requests be made known to God. And the peace of God, which surpasses all understanding, will guard your hearts and your minds in Christ Jesus. (Philippians 4:1 – 7)

Paul said to the members of the Philippian church, “Rejoice always in the Lord.” We can rejoice because the Lord is with us when we suffer. We can rejoice because the pastor worries and comforts the members and the members worry and comfort the pastor. We can rejoice because we believe that we will be resurrected as Christ is resurrected. We can rejoice because the Holy Spirit comforts us and strengthens us. We can rejoice because we have created a church that is free, equal, and non-discriminatory. We are delighted not because there is no problem. There is a problem, but we can rejoice because the joy within us is greater than the problem. I ask you to pray that our church will experience the joy of the kingdom of God first and be a blessed church that conveys its joy to the world.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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