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친밀한 관계와 공적인 삶

주현절 첫번째 주일 / 1월 두번째 주일
주현절, 친밀한 관계와 공적인 삶
이사야서 43:1-7, 누가복음서 3:21-22
정해빈목사

 

행복의 비결에 대한 유명한 연구조사가 있습니다. 1938년 미국 보스턴 하바드대학교 성인연구소가 19세 하바드대학교 대학생들과 보스턴 빈민촌에서 사는 청년들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지를 조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조사는 짧게 하는 조사가 아니라 그들의 자녀/손자녀까지 연구하는 긴 조사였습니다. 성인연구소는 1938년부터 2010년까지 72년간에 걸쳐서 조사 대상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를 조사하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대학생들과 빈민촌에 사는 청년들 중에서 누가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요? 우리의 예상대로 세계 최고의 대학을 다닌 학생들은 대부분 졸업 이후에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았습니다. 돈도 많이 벌었고 명성도 얻었습니다. 반대로 빈민촌에서 사는 청년들은 평생 빈민촌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 중에서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예상한 것처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72년간에 걸쳐서 연구한 이 조사는 “어떤 사람들이 성공하였는가” 와 같은 조사가 아니었습니다. 이 조사의 목표는 단한가지, “어떤 사람들이 행복한 인생을 살았는가, 행복의 비결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행복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조사해 보았더니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행복한 것도 아니었고 빈민촌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불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의 가정이 빈민촌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가정보다 확률적으로 더 행복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대학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인생을 산 사람들도 있었고 반대로 빈민촌에서 태어나서 사회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내 삶이 행복하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행복의 조건이 출신이나 학력이 아니라면 행복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자신의 인생이 행복하다고 대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았더니 그 공통점은 관계/연결에 있었습니다. 가족, 친구, 공동체에서 좋은 관계/연결을 가진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의 인생이 행복하다고 답변하였습니다. 비록 빈민촌에서 태어났고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관계가 좋은 사람은 인생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좋은 가정을 가진 사람, 좋은 친구를 가진 사람, 좋은 공동체/교회를 가진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고 우리 삶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꼽으라면 돈과 건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돈과 건강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돈과 건강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친밀한 관계일 것입니다. 따뜻하고 친밀한 관계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따뜻한 가정, 따뜻한 친구, 따뜻한 공동체/교회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네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가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와 누가복음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설명하였습니다.이사야 43장은 창조신앙과 속량신앙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신앙이 창조신앙이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돌보신다는 신앙이 속량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창조신앙도 필요하고 속량신앙도 필요합니다. 마치 부모가 아이를 낳는 것을 창조라고 말한다면 부모가 아이를 보호하고 돌보는 것을 속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후에 우리를 내버려두신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히브리 백성들이 처한 상황이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지금 히브리 백성들은 나라가 망한 후에 바벨론 포로로 끌려와 있었는데 그들은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망했고 지금 그들은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후에 우리를 속량하지 않고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부모가 아이를 낳은 후에 아이를 버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후에 우리가 미워서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언제든지 망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를 뒤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들은 망했고 남의 나라에서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실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버리신 것이 아닐까?”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에 큰 회의가 몰려왔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속량주이시라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고 값을 지불해서라도 우리를 다른 사람의 손에서 건져오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속량을 히브리어로 표현한 말이 고엘(Goel)입니다. 어떤 사람이 빚이 너무 많아서 다른 사람에게 팔려갔을 때는 그 사람의 친척이 값을 치루고 팔려간 사람을 다시 데리고 와야 합니다. 자원해서 값을 치루고 친척을 다시 데려오는 사람을 고엘/속량자라고 부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엘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우리의 고엘되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대가를 치루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히브리 백성들을 다시 데려올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사야서 43장은 성경 전체 본문 중에서 가장 친밀한 언어로 백성들을 위로하였습니다. 내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불 가운데로 걸어갈 때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말씀을 반대로 뒤집어보면 그만큼 백성들이 오랜 포로생활 때문에 마음이 외롭고 지쳐있기 때문에, 이사야 선지자가 최고의 따뜻하고 친밀한 표현을 통해서 백성들을 위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친밀한 관계가 우리에게 힘을 주고 우리를 다시 일으켜 줍니다.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위로가 필요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백성을 고엘/속량하신다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누가복음도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의 친밀함을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때가 되어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님 위에 내려왔고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하나님께서 세례받으시는 예수님을 보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어린시절/청년시절을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대략 30세에 세례받으셨다고 가정하면 태어나서 30세가 될 때까지 무엇을 하셨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 요셉을 따라서 목수 일을 했을 수도 있고 세례요한의 공동체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았을 수도 있고 광야에서 오랜 시간 기도생활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대략 10세에서 30세까지 2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예수님은 많은 경험을 하셨고 고민과 훈련을 받으셨습니다.

옛날에는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옛날의 10세는 오늘날의 20세, 옛날의 30세는 오늘날의 40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긴 과정을 거치신 후에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나라의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고민과 훈련을 다 마치고 세례받으시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셨고 지금까지의 사적인 생활을 마감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고난받는 이웃을 위해서 공적인 삶을 시작하시는 것을 보고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기 원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공적인 삶을 사는 것을 보시며 기뻐하십니다. 나만을 위한 사적인 삶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공적인 삶, 봉사의 삶을 살 때 주님께서는 나를 보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새해를 시작합시다. 가정과 친구와 교회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새해를 시작합시다. 공적인 삶을 실천하며 새해를 시작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축복해주시고 우리와 동행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