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사람과 계약을 맺다

창조절 다섯번째 주일 / 10월 첫번째 주일
출애굽기 20:1-4, 7-9, 12-17, 빌립보서 3:5-12
창조절, 사람과 계약을 맺다
정해빈 목사

 

지난 주일에 “창조절, 자연과 계약을 맺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사람보다 먼저 자연을 창조하셨고 사람보다 먼저 자연을 축복하셨고 사람보다 먼저 자연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계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연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질서에 순종하고 다른 피조물들과 평화를 누리면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영원토록 축복해 주십니다. 자연은 지금까지 이 계약을 잘 지켰습니다. 사시사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곡식이 자라고 해가 뜨고 비가 오는 것을 보면 자연이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질서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침이 되면 해가 뜨고 저녁이 되면 해가 집니다. 하루는 24시간으로 되어 있고 1년은 365일로 되어 있습니다. 달은 지구를 28일에 한바퀴 돌고 지구는 태양을 1년에 한바퀴 돕니다. 자연은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질서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중세시대 아씨시의 성자 프란시스는 “태양의 노래”에서 이렇게 자연을 노래했습니다.

“내 주여! 당신의 모든 피조물 중에도 언니 햇님에게서 찬양을 받으소서. 달과 별들의 찬양을 내 주여 받으소서. 언니 바람과 공기와 구름과 날씨 그리고 사시사철의 찬양을 내 주여 받으소서. 내 주여, 누나요 우리의 어머니인 땅의 찬양을 받으소서.”

이렇게 자연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고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과의 계약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자연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다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고 했는데 영적으로 보면 창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여섯째날에 해당하고 아직 일곱째 날이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이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지진/홍수/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자연재해도 크게 보면 자연의 질서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보다 먼저 자연과 계약을 맺으셨고 자연은 지금까지 하나님과의 계약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자연이 지구를 파괴하거나 지구의 생명들을 죽이고 있다는 뉴스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자연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자녀처럼, 자연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질서에 순종하였고 계약을 잘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연을 축복하시고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연은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였기 때문에 복잡한 계명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남을 지배하고 자연을 파괴하고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합니다. 사람이 쉽게 교만해지고 탐욕스러워지고 불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바르게 인도할 구체적인 계명이 필요하셨습니다. 그것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과 같은 구체적인 계명이 없다면 사람은 이웃과 자연을 파괴하려고 할 것입니다. 너희가 십계명을 기억하고 지키면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약백성이 되는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계약이 십계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고대사회는 다신교 사회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신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술의 신 [바카스], 전쟁의 신 [마르스], 제국을 지켜주는 [태양신], 사랑의 신 [에로스], 생산과 풍요의 신 [바알] 같은 신을 사람들은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노예로 고통받는 히브리인들을 구원해 주신 자유와 해방의 하나님, 자비로우시고 진실하신 사랑의 하나님,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보호하시는 하나님,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고 모든 생명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것은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파괴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계명이 없다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어기고 스스로 신이 되어서 이 세상을 지배하고 파괴하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킬 때 이 세상은 생명과 평화, 정의와 사랑이 충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빌립보서 3장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할례를 받았고 정통 유대교 랍비였고 가장 정통성이 있는 지파 중 하나인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고 율법을 가장 잘 지키는 바리새파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교에 대한 우월감이 지나쳐서 초대교회를 박해하였고 십계명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율법을 다 지켰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자신이 가졌던 육체의 자랑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 때에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면 명예/지식/재물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육체의 자랑이 죽음과 부활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명예/지식/재물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명예/지식/재물로 우리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육체의 자랑거리를 오물로 여겼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으로 구원을 받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육체의 자랑이 아니라 예수님과 같은 신실함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육체의 자랑도 아니고 단순히 입으로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신실함입니다.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빌립보서 3장 9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여기 나오는 “믿음”이라는 말을 “신실함/충성됨”으로 바꾸면 오늘 말씀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신실함을 나도 따라갈 때, 나도 예수님처럼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삶을 사셨던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이요 계약의 완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약/계명을 끝까지 실천하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까지 신실한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계약을 다 지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신실함을 기뻐하셨고 그래서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셨습니다. 바울은 나에게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나도 예수님처럼 하나님 앞에서 평생 신실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셨던 것처럼 나도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자랑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계약백성으로서 얼마나 신실한 삶을 살았는지를 보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하나님과의 계약도 그렇고 세상에서의 계약도 그렇고 결혼서약도 그렇고 계약을 지키는 신실함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말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계약을 지키는 신실함으로 구원받습니다. 자연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잘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약백성들에게는 십계명을 만들어 주셨고 신약백성들에게는 신실하신 예수님을 본받으라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자연이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질서에 순종하고 하나님과의 계약을 잘 지키는 것을 보면 우리들이 부끄러워집니다. 왜 우리는 자연처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오직 계약을 지키는 신실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찬양하고 자연을 돌보고 이웃을 사랑하고 모든 생명을 풍성케 하는 계약백성의 삶을 신실하게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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