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열한번째 주일 / 11월 두번째 주일
창조절, 선한 일과 선한 말
학개서 2:1-5, 데살로니가후서 2:13-17
정해빈 목사
성경말씀을 묵상하기 전에 3가지 이야기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캐나다 현충일(Remembrance Day)입니다. 1918년 11월 11일에 1차 세계대전이 끝났기 때문에 이 날을 휴전기념일로 지키다가 나중에 전쟁에 참전한 모든 남녀들을 기념하는 날로 바뀌었습니다.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고 재향군인회를 돕기 위해서 빨간 포피꽃(Poppies)를 사서 가슴에 붙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우리교회가 예배드렸던 토론토 다운타운 블루어스트릿연합교회 예배당 입구에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수십 명의 교회 청년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교인 가족들 중에 목숨을 잃은 자녀들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 교회가 한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유럽에 간 청년들과 그 가족들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1940년대 캐나다연합교회 자료를 보면 캐나다가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몇몇 소수의 목회자들은 전쟁은 어떤 이유로든 거부해야 하고 캐나다는 전쟁에 참여하면 안 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캐나다연합교회는 독일 나치 정권이 유럽을 침략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참전을 지지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도자들과 교회가 솔선수범하니까 국민들이 지도자들과 교회를 존경하게 됩니다. 지도자들이 군복무도 안하고 세금도 안내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됩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는 캐나다 문화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유진벨 재단입니다. 우리 교회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술품 전시/판매”를 하고 있는데 그 수익금 일부를 유진벨 재단에 기부하려고 합니다. 유진벨 재단은 북한결핵환자를 돕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1895년 1대 유진 벨(Eugene Bell) 선교사가 미국 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목포와 광주에서 많은 교회와 학교와 병원을 세웠습니다. 유진벨 부부는 현재 서울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 잠들어 있습니다. 유진벨 딸과 결혼한 사위 윌리엄 린튼(William A. Linton)이 2대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린튼은 40년 동안 군산, 전주, 목포, 대전 등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세웠습니다. 윌리엄 린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휴 린튼이 3대 선교사가 되어서 전라남도 섬 지방과 벽지를 돌아다니며 200곳이 넘는 교회를 개척하였고 순천 지역에 결핵요양원을 세웠습니다. 휴 린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스티븐 린튼(Stephen W. Linton, 한국 이름 인세반)이 현재 4대 선교사로 활동 중인데 이 사람이 1995년 한국 선교사역 100주년을 기념하여 유진벨재단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순천에서 보냈고 1979년부터 지금까지 북한결핵환자를 돕고 있습니다. 120년 전 유진 벨로 시작된 한국선교가 4대째 계속되고 있는 것이 감동적입니다.
결핵은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면역이 약하면 걸리게 됩니다. 현재 북한에는 13만 명의 결핵환자가 있는데 초기에 발견하면 쉽게 치료할 수 있는데 대부분 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유진벨 재단은 매년 북한을 방문해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의료기기를 기증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독재국가이고 핵무기를 만드는데 왜 도와주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포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가 유진벨 재단을 돕는 것이 참으로 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번째 이야기는 [국경선 평화학교]입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평화학을 공부하신 정지석 목사님께서 함석헌 선생님과 퀘이커 신자들의 삶에 영향을 받아서 비무장지대가 있는 철원에 [국경선 평화학교] 대안학교를 세웠습니다. 학생들이 그곳에서 평화학, 갈등해결, 유기농농사짓기, 집짓기, 건강보건 등을 배우고 있습니다. 평화는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공부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어떻게 평화를 이룰 것인가,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갈등을 해결할 것인가, 과거에 국가와 국가 사이에 민족과 민족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갈등을 해결했는가, 예를 들면 캐나다에서 영국계와 프랑스계는 어떻게 갈등을 해결했는가, 영국과 아일랜드는 민족갈등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이런 주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유진벨 재단]도 돕고 [국경선평화학교]도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도님들 혹시 여유가 있으시면 오늘 전시회하는 그림 꼭 사시기 바랍니다. 판매 수익금은 전액 이런 단체에 기부될 예정입니다.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학개서 2장 말씀을 보면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 예언자 학개 이렇게 3명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한지 70년만에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와보니 옛날 다윗/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했는데 중간에 방해가 만아서 16년 동안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개 선지자가 다시 건축을 독려해서 20년 만에 성전을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옛날 다윗/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비교하니 너무 초라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 성전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너희 눈에는 하찮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힘을 내어라. 이 땅의 모든 백성아, 힘을 내어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너희는 일을 계속하여라. 내가 너희와 맺은 언약이 변함없고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으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옛날과 비교할 때 우리의 행동이 초라해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술품 전시회를 하는 것이 작은 일이지만 그 작은 나비의 날개 짓이 역사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하는 일을 계속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옛날에 했던 큰일과 비교하면 우리가 하는 일은 작고 초라합니다. 하지만 작은 선한 일들이 쌓이고 쌓일 때 세상은 달라지고 변화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두 번째로 읽은 데살로니가후서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든든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로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세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 중에는 영광의 날, 주님오시는 날, 재림을 기다리면서 아무 일도 안하고 세상 사람들의 신세를 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서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가만히 기다리지만 말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 보면 “선한 일과 선한 말”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선한 일을 한 두 가지 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열매를 얻든지 못 얻든지 선한 일을 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11월 11일 Remembrance Day 선한 일에 목숨을 바친 이들을 추모하면서 그리고 학개서와 데살로니가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한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선한 말을 계속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Creation, good work and word
Haggai 2:1-5, 2 Thessalonians 2:13-17
Haggai 2 we read today is about the rebuilding of the temple. When the Hebrew people had returned from captivity in seventy years, they rebuilt the temple first. However, compared with the first temple in David-Solomon’s time, the second temple was small and shabby. Yet God told Governor Zerubbabel, the high priest Joshua, and the prophet Haggai: “Is it not in your sight as nothing? This temple will seem trivial in your eyes. But take courage. Work, for I am with you. My spirit abides among you. Do not fear.” Compared to the big things we did in the past, what we do now can be small and trivial. But when little good things accumulate, we believe, the world will be changed. The Lord has told us not to give up on small good things but to continue.
The same is true in 2 Thessalonians, which we read today as the second text. “May our Father and our Lord Jesus Christ, who love us and give us everlasting comfort and good hope by grace, encourage you in your hearts and strengthen you in every good work and word.” Among the Thessalonians, there were those who did nothing and waited for the Lord’s return. Paul admonished them not only to wait for the Lord to come again but to do “good things and good words” until the Lord comes again. Doing one or two good works will not change the world. But we are called to do good, whether we gain fruit or not Tomorrow is Remembrance Day. In remembrance of those who gave their lives to good works, and meditating on the books of Haggai and Thessalonica, we believe we should be glorifying God by continuing to do the good things we can do, the positive good things we can do.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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