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네번째 주일 / 9월 네번째 주일
창세기 8:20-22, 9:12-17, 요한계시록 22:1-5
창조절, 자연과 계약을 맺다
정해빈 목사
영어 성경책 중에 [녹색성경, The Green Bible]이라는 성경책이 있습니다. 하늘, 땅, 바다, 식물과 동물이 나오는 성경구절을 녹색으로 표시했습니다. 옛날 성경책을 보면 중요한 성경구절을 빨간색으로 표시했는데 [녹색성경]은 자연이 나오는 부분을 녹색으로 표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책을 만들 때 재생용지와 콩으로 만든 잉크를 사용했습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를 말하라면 [녹색성경]을 만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녹색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깨달음도 얻을 것이고 기독교의 새로운 미래도 열릴 것입니다. 남아프리카에서 인종차별반대운동을 벌였고 198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데스몬드 투투 주교는 [녹색성경]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연약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족들이고 그들이 가장 심하게 가뭄, 이상고온, 홍수와 기상이변의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서지고 있는 우리의 집/지구를 보존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분별한 소비문화에 빠져서 대체할 수 없는 지구의 자원을 집어 삼키고 있습니다.”
[녹생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창조의 원리와 자연의 중요성에 대해서 보다 크고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녹색성경]으로 성경을 읽으면 자연을 기록한 구절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사야서를 보면 자연을 기록한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사11:6).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할 것이다. 사막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크게 기뻐하며 즐겁게 소리 칠 것이다.” (사35:1). 예수님도 마태복음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6:26).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설명하실 때,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 누룩과 겨자씨, 알곡과 가라지, 포도원, 밭에 감추인 보화, 그물과 물고기 등 자연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셨습니다. 이렇게 자연의 관점으로 성경을 읽으면 사람이 우주의 주인공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 의하면 사람은 맨 마지막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세상을 만드실 때 자연과 식물과 동물을 먼저 만드셨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마지막에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지구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마치 지구의 주인이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지막에 창조된 사람에게 지구의 소유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에게 소유권이 있고 그 다음에 자연과 식물과 동물에게 소유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피엔스] 책을 쓴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의 한 구석에서 자기 앞가림에만 신경쓰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 동물이었다. 이후 몇 만 년에 걸쳐 이 종은 지구 전체의 주인이자 생태계 파괴자가 되었다. 오늘날 이들은 신이 되려고 한다. 이들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체 불만스러워한다. 이들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호모 사피엔스는 인간을 가리킵니다. 그의 글은 호모 사피엔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그리고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겸손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사람보다 먼저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연을 사람보다 먼저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것들에게 복을 베푸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여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하셨다.” (창1:22) 이렇게 자연을 먼저 축복하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1:27-28) 창조의 순서도 자연이 먼저이고 축복의 순서도 자연이 먼저이고 계약의 순서도 자연이 먼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조/축복/계약을 맺을 때 사람보다 자연이 항상 먼저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녹색성경]은 이것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관계를 “계약/언약”이라고 표현합니다. 계약은 상대방과의 약속과 신뢰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과 약속과 신뢰의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피조물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이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축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창세기 8장과 9장을 보면 홍수가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계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노아와만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내가 구름을 일으켜서 땅을 덮을 때마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서 나타나면 나는 너희와 숨 쉬는 모든 짐승 곧 살과 피가 있는 모든 것과 더불어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홍수를 일으켜서 살과 피가 있는 모든 것을 물로 멸하지 않겠다.” (창 9:12-15).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서 살과 피를 지닌 모든 생명과 언약을 맺으셨고 그 징표로 무지개를 보여주셨습니다.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홍수가 나서 자연이 파괴된 것도 자연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계약을 깨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다시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안심하면서 이 땅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요한계시록 22장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도성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을 기록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과 저주와 어둠과 박해는 물러갔고 새하늘과 새땅이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도성 예루살렘을 보니 생명수가 하나님의 보좌에서 시작해서 도시로 흘러갔고 강 양쪽에는 치료하는 생명나무 열매가 열렸습니다. 어둠이나 다시 저주 받을 일이 없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영원토록 다스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가 창조의 시작이라면 요한계시록은 창조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연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시고 마지막 날에 창조세계를 온전하게 완성시키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보다 먼저 자연을 창조하셨고 사람보다 먼저 자연을 축복하셨고 사람보다 먼저 자연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런데 자연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과의 계약을 잘 지키고 있는데 사람이 계약을 어기고 자연을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자연이 파괴된다면 그 책임은 사람에게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죄함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셨습니다. 우리 자신을 볼 때 염치가 없고 부끄럽지만 하나님께서 자연과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시고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고 계약을 지켜주시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적을 바라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파괴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말할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숨 쉴 수 있고 걸을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계속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 낮과 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계속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팔이 부러져서 숟가락을 들 수 없는 사람은 평소에 숟가락을 들어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과의 계약을 지키지 못한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비록 저희들이 범죄할지라도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 땅을 보존하시겠다는 그 약속을 지켜주옵소서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고 우리도 하나님처럼 계약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 이 땅이 파괴되지 않고 평범한 일상, 낮과 밤이 계속되도록 이 땅을 지켜 주옵소서 기도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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