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일곱번째 주일 / 7월 세번째 주일
한가지만 염려하는 교회
누가복음 10:38-42
이영정 목사
한가지만 염려하는 교회
그리스도교는 어떤 의미로 볼 때 기다림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전 역사는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역사 였습니다. 신약의 역사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역사입니다.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즐거운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어떤 마음 자세로 기다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 것은 지치고 피곤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반가이 만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준비하는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나아가는 여정은 우리의 믿음이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교회는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이 십자가 밑에 모여 땅끝까지 나아가도록 부름 받고 이 부름에 확신을 가지고 “예” 하고 대답한 하나님의 백성들 입니다.
그러면 기다리던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시면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이 일을 위해서 우리와 교회는 무엇을 준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오늘의 세계 공동성구의 복음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향해가던 중 한 여인 마르다의 집에 초대 받았습니다. 마르다의 마음은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예수님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기다리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초청한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마르다는 손님 대접을 하느라고 무척 바빴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로 와서 이야기 합니다. “주님 이렇게 바쁜데 일은 저만 혼자서 다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지극히 상식적인 불만을 이야기 했습니다. 마르다의 불평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마르다야 너는 걱정이 너무 많아서 괴로워하는 구나. “너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다”고 꾸지람을 주시고. 오히려 마리아가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하십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선과 악이 분명히 구별되지 않는 오늘의 본문 말씀에 의거해서 많은 사람들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중요하냐 친교실에서 식사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냐 하는 것을 가지고 토론을 합니다. 어떤 교회는 중요한 예배참석을 위해서 육아 돌봄이를 돈을 주고 고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전히 남는 문제는 돈으로 천당 입장권을 사는 것이냐 하는 극단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모습에서 기다리던 예수님이 오실 때 교회를 이룬 우리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아래 모인 하나님의 백성 즉 오늘날의 교회를 향해 선포하시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과 더 깊은 만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난 2주간의 공동성구를 회고해 볼 때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예수님과 깊은 만남을 가지고 우리가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믿음 공동체를 이루는 것에 관한 복음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깨달음을 넘어서서 세상과 깊은 만남을 가지게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기다리던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 교회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행해야 할 오직 한 가지 일”은 무엇을 가르키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면에서는 막연하고 오직 한 가지만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상징하는 뜻은 확실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 우리 신앙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먹는 것으로 대접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지금 마리아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 그대로 듣게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걱정을 많이 합니다. 우리의 상식을 따르자면 우리는 필요한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그 점을 경계하십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갈 것이다’ 고 이야기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어디를 가든지 따라가겠습니다 하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겠다 또는 죽은 가족을 장사 지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살 수 없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주변의 많은 일로 걱정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단호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복음 선포를 하는 선교가 모든 것보다 우선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시고 행동으로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이룬 우리 믿음 공동체에 주시는 말씀이고 주님의 일관된 한 가지 가르치심 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라는 단어를 마태복음에서 한번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신약 성경 어디에도 2천년 교회 역사 가운데 절대적인 교회 모델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을 교회라고 칭하고 교회의 본질적인 기능에 대해서 질문함으로써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대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복음선포는 실존적 깊이에서 경험하는, 절망과 좌절을 딛고 구원을 경험하는 새로운 창조에 동참하라는 예수님의 초청입니다. 선교사명을 다하는 살아있는 교회는 케리그마 (복음선포), 디아코니아 (봉사, 섬김), 그리고 코이노니아(친교)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복음선포는 본회퍼가 표현한대로 <타자를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안의 모든 활동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선교를 위한 믿음의 표현으로 집약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부흥 또한 복음 선포를 위한 선교 활동이란 한 가지 목적을 향해 필요합니다. 오늘날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세상이 신앙을 문화적으로 가볍게 이해하려고 할 때 교회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여러 필요한 일 중의 하나로 전락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선교는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차원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세상의 평화를 저해하는 많은 문제에 대해 침묵과 방관, 혹은 방조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교회가 되고 교회가 세상안에서의 믿음공동체가 아닌 개인화 되어버린 친목과 이익 집단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생명을 나누는 열려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교회는 인간과 역사와 세계를 통전적으로 함께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때에 바위같은 확실한 믿음 위에 교회가 바로 서고 그리스도와 한몸 이룬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개인적이며 실존적으로 해석할 때 십자가 없는, 교회없는 신앙인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사람의 집단은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가든지 그저 예수만 믿고 나만 구원 받으면 그뿐이라는 생각이 근저에 깔려있습니다. “일신상의 문제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어떻게 다른 사람과 세상을 위해 봉사하며 일치를 이루며 살 수 있단 말인가” 하는 패배주의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런 삶을 살기 때문에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전하면서도 개인주의적인 경쟁심, 이기심, 시기 질투심으로 가득찬 세상적인 집단을 형성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생명있는 교회로 회복하기 위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복음의 선포를 위한, 선교로 모이는 교회로서 확장돼 나가야 할 것입니다.
가끔 교회는 그들의 다양한 활동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오직 한가지 밖에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짧은 예화 하나 나누겠습니다. 바닷가 조그만 오두막에 인명구조대기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조그만 배 한척과 두세명의 구조대원이 있었습니다. 이 작은 구조대로부터 많은 사람이 구조를 받는 등 작지만 아주 훌륭한 구조대 였습니다. 이 구조대는 더 큰 건물을 짓게되었고 이름이 알려지면서 모금운동을 했습니다. 모금 된 돈으로 재정이 넉넉하여 구조대원을 많이 고용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사람을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구조대원이 늘어감에 따라 활동이 다양해지면서 친교를 위한 모임의 비중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실내 장식에 도 신경을 써 조그만 모형 구조선을 만들어서 천정에 매달아 놓았고 가구와 회의실 등이 갖춰진 안정된 건물로 우뚝 섰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큰 배가 해안에서 파선 되고 고용된 전문 구조원은 더러운 물에 젖은 구조된 사람들을 구조대가 있는 건물로 데려왔습니다. 구조된 사람들은 검은피부, 황색 노란 피부등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들어간 아름답게 단장 된 건물은 쓰레기장 같이 되었습니다. 긴급 건축위원회가 소집되어 건물밖에 샤워실과 화장실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곧바로 시행했습니다. 구조된 지저분한 사람들은 본 건물에 들어오기 전에 말끔히 씻어 건물을 더럽히지 않아야 됐습니다. 구조대 건물은 사교 모임장이 되었고 원래의 정신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비유적인 이야기는 현재 많은 교회가 걸어가고 있는 십자가가 장식품으로 전락한 교회의 슬픈 현실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수님이 오시면 무슨 말을 우리에게 하실런지 생각해 보십시다. “너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다, 히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를 땅끝까지 하도록 하라”고 당부를 하십니다. 교회 주변에는 많은 필요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한 가지 염려로 집약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알파 한인 연합교회는 이일에 충실하다는 것을 예배를 통해서 친교시간과 그 이후의 대화을 통해서 확인을 하고, 많은 것을 배우고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오직 한 가지 복음전파의 선교로 모이기 위한 염려를 하며, 예수님을 만날 때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받을 줄 확신합니다. 이것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다같이 기도 하시겠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우리가 당신이 주신 귀한 사명을 전해듣고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걱정할 일이 주변에 많이 널려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오직 당신의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를 땅끝까지 감당하는 일만을 염려하는 십자가 아래 모인 당신의 백성이 될 것을 결단합니다. 이 모든 말씀 감사하며 예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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