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열번째 주일 / 11월 첫번째 주일
한결같은 사랑
룻기(Ruth) 1:6-18
최성혜 목사
우리 모두는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본 적이 적어도 한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각자가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떠오르는 사랑의 순서가 다르겠지만, 보편적으로 남녀간의 사랑, 부모-자녀간의 사랑, 친구들의 사랑, 또 크리스찬들을 하나님의 사랑, 내가 심취해 있는 일에 대한 사랑 등을 생각하겠지요. 사랑이라는 말은 우리의 언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함과 동시에 그 의미 또한 다양하게 변형되어 사용되는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하트가 샘솟는 기본적인 사랑의 뜻을 포함해서 ‘좋아하다’, ‘원하다’, ‘필요하다’, ‘열광하다’, ‘집착하다’ 등등 간절함, 열정, 진실함 등을 표현할 때에도 사용합니다. 아가페, 플라토닉, 필리아, 에로스, 루두스, 매니아 등 철학적이며 심리학적으로도 사랑의 개념을 깊이 있게 연구하게 합니다.
이번 주 성서일과 주제가 바로 이 사랑입니다. 복음서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제일 중요하고 첫째되는 계명이 바로 사랑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나의 이웃을 나 자신을 아끼고 돌보는 것처럼 사랑하는 것이라 합니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리고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라 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사랑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사랑은 오늘 함께 나눈 나오미와 룻의 관계를 통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룻기는 사사기와 사무엘서 사이에 기록되어 있는 룻이라는 여인과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룻기의 말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엮는 삶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찡한 감동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룻은 다윗의 증조 할머니이며 예수님의 족보에 올려져 있는 유다 집안의 계보를 잇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녀 삶의 이야기의 시작은 가뭄과 흉년 그리고 배고프고 고생스러운 시절에서 시작됩니다. 첫 장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사람이 나오미와 오르바와 룻인데, 이 세 여인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입니다. 이들은 모두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에 놓이게 됩니다. 이 당시의 풍습은 남자들이 여자들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주고 법적인 보호자나 후원자가 되는 것인데, 남편을 잃은 여인들은 보호받을 수도 경제적인 빈곤함을 벗어날 수도 없는 사회적 약자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이전에 나오미는 그의 남편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그들의 고향인 베들레헴을 떠나 이방 나라 모압으로 갔습니다. 극심했던 흉년을 피해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이주를 하였고, 그곳에서 나오미의 두 아들이 결혼을 하여 오르바와 룻이라는 이방의 여인들을 며느리로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미의 남편과 두 아들, 곧 오르바의 남편과 룻의 남편이 모두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룻기의 이야기는 가난과 흉년으로 고향 땅을 떠나야만 했고, 또 낯선 곳에서 힘들게 살다 남편을 잃은 세 여인의 슬픔에서 시작됩니다. 얼마나 가슴 아프고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상황인지 모릅니다.
이 절망적인 때에 나오미는 “주님께서 백성을 돌보셔서 고향에 풍년이 들게 하셨다(6).” 라는 반갑고 희망에 찬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들이 떠나온 땅에 하나님이 다시 찾아오셔서 자기 백성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이 소식을 들은 나오미는 절망과 슬픔을 털고 두 며느리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차비를 합니다. 10년 넘게 살아온 제2의 고향 같은 모압을 떠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민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닌 것은 모두 잘 아시겠지만 또다시 역이민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희망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돌보시는 고향땅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길을 떠납니다.
이렇게 세 여인이 결심하여 베들레헴을 향해 떠나가다가, 나오미가 두 며느리를 불러 세우며 말합니다. “너희는 제각기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너희의 남편들과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여 주었으니, 주님께서도 너희에게 그렇게 해주시기를 빈다. 너희가 각각 새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기를 바란다.” 나오미는 분명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가 자신의 아들들을 사랑하였고, 시모인 나오미를 사랑으로 섬긴 것을 기억하며 감사의 마음을 갖았습니다. 또한 두 며느리가 한결같은 사랑을 보인 것처럼, 하나님이 그녀들에게도 깊은 사랑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세 여인들은 서로에게 의리가 있었고, 변함없는 사랑과 신실하고 진실한 사랑을 나누었는데, 성서는 이를 헤세드(Hesed)라고 표현합니다. 헤스드는 곧 관계가 깊고 진실하며 쉽게 마음을 바꾸거나 배신하지 않는, 흔들림 없이 단단하게 맺어진 사랑, 변함없는 한결같은 사랑을 말합니다. 나오미는 참 선하며 며느리들을 깊이 사랑한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에게 이 헤세드가 있었기에, 오르바와 룻을 그리워하고 마음 아파할 며느리들의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며 두 며느리를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였습니다. 게다가 그들을 보내면서 편안한 안식처를 얻고, 각자 좋은 남편을 만나길, 그래서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하나님께 빌어주었습니다. 당시의 고아나 과부나 나그네들은, 안식처를 잃고 어느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입니다. 남편을 잃은 나오미 스스로가 그 처지를 잘 알기에 오르바와 룻의 앞길을 하나님께서 축복하고 이끌어주시길 간절히 바랬습니다. 이 진실되고 깊은 사랑의 마음을 서로가 잘 이해하기에, 나오미가 두 며느리를 포옹하며 떠나라고 할 때 모두 함께 소리 높여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변함없는 사랑과 서로를 품어주는 뜨거움이 넘치는 눈물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두 며느리 역시 어머니처럼 사랑과 의리가 가득하여 자신들도 어머니의 고향에 함께 돌아가겠노라고 대답합니다. 이들 역시 망설임 없이 단호하였고, 뜻을 실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베들레헴으로 향하며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나누는 이 한결같은 사랑과 눈물의 대화가 얼마나 아름답고 애잔하며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시어머니가 각자의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 집으로 돌아가라고 간곡히 부탁해도 며느리들은 완강히 거부합니다. 아무리 말해도 그녀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습니다.
며느리들이 완강하게 버티자, 나오미는 더욱 강하게 설득합니다. 나오미는 자기가 모압에서 겪은 어려움들을 생각하며, 두 며느리에게 계속해서 펼쳐질, 고생길이 아닌 편안하고 행복한 길로 나아가길 바랬습니다. 서로를 위한 진심을 알기에 세 여인은 또다시 통곡하며 절규합니다. 셋이 옥신각신 논쟁을 벌이다 결국 오르바는 시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룻은 어머니께 얘기합니다. “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 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죽음이 어머님과 나를 떼어놓기 전에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16-17).”
룻은 자신의 생명을 내 건 확고한 선택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룻을 상상할 때, 어머니를 잘 모시는 착하고 순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만난 룻은 얼마나 강하고 강단있는지 모릅니다. 시어머니가 대성통곡을 하면서 자신을 떠나는 것이 어머니를 위하는 것이라 말해도, 절대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어머니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룻은 이렇게 집요함과 끈질김과 신실함을 지닌 사람입니다. 룻기가 주는 감동의 절정은 바로 이것입니다. 행복하고 풍족한 룻의 삶이 아니라, 룻의 용기있고 신실한 한결같은 사랑,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어머니를 절대 떠나지 않겠다는 집요함과 끈질긴 사랑입니다.
나오미는 가난과 직면했었고,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고향을 떠나야만 했었습니다. 또한 남편과 자식을 잃는 슬픔을 겪었으며, 작은 희망을 가지고 또다시 고향으로 이동해야하는 갈급한 인생이었습니다. 며느리들은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길 바라며 연로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멀리 떼어 보내려 합니다. 룻은 이 어머니의 가슴 깊숙한 아픔과 비통함 심정을 헤아림과 동시에 진실로 룻을 사랑하여 축복의 길로 내어보내는 나오미의 사랑, 흔들림없고 진실되며 한결같은 그 사랑을 선택한 것입니다. 룻은 그런 사람입니다. 희망이 사라지고, 어려움이 계속 될 것이라는걸 뻔히 알면서도, 또다른 고통과 슬픔이 있을지라도 어머니와 함께 미지의 세계를 향해 걸어갑니다. 이들에게는 헤세드, 강인하고 진실한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총이 그들과 함께함을 믿었기에 새로운 역사를 향해 나아갑니다. 눈물 나는 슬픈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는 나오미의 믿음 그리고 어머니의 아픈 심정을 헤아리며 끝까지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 룻의 한결같은 사랑이 곧 이 가문을 살리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거룩하고 위대한 사랑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룻을 통해 유다 집안의 족보가 이어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의 역사는 사랑에서 시작되며 사랑으로 완성되어집니다. 어떤 절망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믿고 의지할 때 그리고 절망과 아픔과 시련에 빠진 우리의 이웃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돌보며 한결같은 사랑으로 감싸 일으킬 때, 우리 안에 구원의 은총임하십니다. 성서에서 보여주는 사랑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은 바로 이것입니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을 만날지라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희망을 발견하게 하시는 하나님. 외롭고 힘들더라도, 염려와 불안이 있을지라도, 실패와 좌절을 겪을지라도 우리를 변함없는 마음으로 돌보며 다시 일으켜주시는 하나님. 그런 하나님이 곧 사랑이십니다. 그 하나님과 같은 한결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믿음과 뜨거운 사랑으로 하나가 된 여인들처럼, 진실하며 한결같은 사랑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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