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열한번째 주일 / 11월 두번째 주일
성실하고 진실하게 섬기십시오
여호수아 12:14-18, 22-25
최성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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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며 새로운 다짐으로 새 시대를 열어가는 장면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된 광야생활은 모세와 함께 시작한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면서 고생하고 자유를 빼앗기고 살 때, 자유와 풍요로움이 있는 곳을 향해 시작한 긴 여정이 끝맺음을 갖고 드디어 정착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제 편안하고 안정적인 생활이 시작되고 부족함이 없을 때입니다. 여호수아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생활이 풍요롭고 삶이 편안해질 때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심하게는 우상숭배로 빠져들 수 있음을 알고 우리가 미리 조심하고 예비하도록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이 시대를 돌아봐도 알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지날 때는 하나님을 찾다가도 힘든 시기를 지나면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편리하고 풍요로운 시대를 살다보니 사람들은 교회와 점점 멀어지고, 교회 역시 시대적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로 전락해가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세겜이라는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이 지켜야 할 율례와 법도를 제정했습니다.
세겜 땅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의 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한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은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본래 다른 신을 섬겼던 족속 중에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고 큰 민족을 이루게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언약을 믿고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과의 약속을 확인하고 제일 먼저 제단을 쌓았는데, 그곳이 바로 세겜입니다. 세겜은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여호와 신앙의 출발 지점이었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겜은 이스라엘의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조상 야곱이 가족들과 함께 거주했었던 곳입니다. 이 세겜에 거주할 때, 불행하게도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추장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로인해 양자간에 복수극을 벌이다 위기에 빠지게 되어 야곱이 세겜에서 벧엘로 피난해 갔습니다. 야곱은 예기치 않은 문제로 큰 어려움에 빠졌을 때 자신들 가운데 있던 모든 이방 신상과 귀고리 같은 사치 물질들을 버리고 묻어 버리고 하나님 앞에 다시 새롭게 서는 결단을 보였습니다. 바로 그 결단의 자리가 세겜입니다. 여호수아는 이런 역사적인 장소인 세겜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모아 그들과 더불어 “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라는 언약을 세운 후 큰 돌을 세워 믿음의 결단의 증거로 삼았습니다.(수 24:24).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나아갔습니다. 몇 십년동안의 정복 전쟁이 승리로 끝나고 이스라엘의 각 지파는 각자 제비를 뽑아 자신들의 살 땅을 분배받아 정착하고 있었습니다.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고 다니며 음식이라고는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땅은 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들어야 할 만큼 비옥한 땅에는 온갖 곡식과 과일이 넘쳐났고, 많은 가축들과 진기한 물건들이 가득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 주시기 위하여 약속하셨던 축복의 땅이 틀림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풍요로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마음껏 누리면 되는 이 때에 여호수아는 그들이 지켜야 할 것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당신들은 이제 주님을 경외하면서, 그를 성실하고 진실하게 섬기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조상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섬기십시오(수24:14).”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 그리고 그에 따른 약속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난 뒤,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기라고 권면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그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하는 물질들에 마음을 빼앗겨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 소홀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과거 그들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서 광야에서 모두 죽음을 당했던 잘못을 그의 후손들은 되풀이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입니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1517년에 일어난 종교개혁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부정과 부패가 가득했을 때 성경번역을 계기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성직자들만 읽을 수 있었던 라틴어 성경을 평신도들이 읽을 수 있도록 번역을 시작했고, 당시 교황청은 교회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명목으로 개혁자들을 화형 시켰습니다. 마틴 루터 역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독일어로 성서를 번역하고 대량 인쇄해서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개혁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종교의 개혁자들은 왜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성경을 번역하였을까요? 기독교 신앙은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며, 받은 은혜와 감격을 삶으로 실천하는 신앙이기 때문에, 종교 개혁가들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고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종교개혁의 자리로 찾아가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과 언약과 믿음의 결단이 있는 세겜의 역사적 자리로 찾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우리 신앙의 처음 자리를 찾고, 더 나아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섬겼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던져 버리는 회개의 역사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라는 타이틀을 넘어서, 진실하게 예수를 믿으면서 생각과 삶이 변화된 기독교인으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현대의 교회는 ‘행함’으로 잘 이어지지 않고, 도덕적 행동에 머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어떤 의로운 일을 통해서도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그리고 그 은총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받습니다. 루터에서 시작한 개신교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니는 것은 우리가 믿음을 중요시하는 신앙의 계열에 선다는 것이며, 우리가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며 주 하나님을 섬기며 따르기로 고백하는 세겜으로 모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얼마나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지, 하나님과 만나고 내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하나님을 만난 감격과 은혜를 어떻게 누리고 있는지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다시금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수아와 더불어 거짓된 신을 버리고 오직 한분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고백한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실하고 진실하게 섬기겠다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적 삶에 분명히 서야 합니다. 복음의 삶은 첫째로 오직 하나님만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이고, 둘째로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적 삶과 죽음이 오늘 이 땅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것이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이와 같은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교회가 무엇인지, 신앙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속으로 들어가셔서 민중들과 어울려 소통하시며 복음을 나누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말씀과 은혜와 믿음으로 세상과 소통해야 합니다. 개인의 안위와 평안을 목적으로 둔 편협한 신앙에서 벗어나 성실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소통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받은 은혜를 우리 생활 속에서 나누는 뜨거운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참여하고 이끌어 가는 이 시대의 종교 개혁이며 신앙의 출발지인 세겜 땅에 서는 것입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성실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그 안에서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지며 은혜가 가득한 줄 믿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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