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첫번째 주일 / 2월 세번째 주일
사순절, 사랑의 능력을 주셨으니
요엘 2:12-14, 요한복음 15:9-14
정해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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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부활절 40일 전 수요일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수요일 토론토 대학 임마누엘 신학교에 가서 아시아신학센터가 주관하는 설날점심식사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재의 수요일 채플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는 저녁에 교회당으로 와서 랜싱연합교회와 함께 재의 수요일 예배를 한 번 더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난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이면서 동시에 Valentine Day 였습니다. 재의 수요일과 발렌타인 데이가 같은 날에 있는 경우가 거의 희박한데 올해는 같은 날에 있게 되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다운타운으로 내려가는데 젊은이들이 손을 잡고 꽃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식당마다 자리가 꽉 차고 꽃집과 초콜릿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일 년에 두 번 2월 발렌타인 데이와 10월 할로윈 데이 때 사탕과 초콜릿이 제일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이런 문화들이 자본주의 문화의 한 단면일 수 있습니다. 무언가 이런 이벤트가 있어야 장사가 잘 됩니다. 물론 이런 이벤트를 꼭 나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친구들끼리 선물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발렌타인 데이나 재의 수요일 모두 기독교 문화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로마 황제가 군인들이 군 복무 중에는 결혼하지 못하게 했는데 발렌타인이라는 신부가 황제의 명을 어기고 결혼하는 싶어하는 사람들을 결혼시켜 주어서 순교를 당했는데 여기서 발렌타인 데이가 시작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두가지 상반된 얼굴을 보았습니다. 한쪽에서는 젊은이들이 꽃과 선물을 들고 활짝 웃는 모습이 보였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이마에 재로 십자가를 표시하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발렌타인 데이는 인생의 가장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재의 수요일은 인생의 가장 어두운 면을 보여줍니다. 우리들은 서로 사랑할 때 인생이 너무 아름답고 기쁘다는 것을 깨닫고 반대로 우리 몸이 재로 변하게 되는 것을 볼 때 인생이 허무하고 연약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은 인생의 가장 밝은 모습과 가장 어두운 모습 그 중간 어딘가에서 지금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재의 수요일에서 부활절까지 40일간은 세례를 준비하는 기간이었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금식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고난은 부활과 함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난이 기독교 신앙의 절반을 차지한다면 부활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기독교 신앙에서 고난을 빼버린다면 기독교 신앙은 반쪽짜리 신앙이 되고 말 것입니다. 고난을 회피하고 축복만 생각하는 신앙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물론 기독교는 고난을 찬미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고난과 아픔과 죄와 죽음은 극복되고 사라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가 올 때까지 고난의 순례의 길을 걸어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난받으시고 죽으신 것처럼,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고 영광도 받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사순절을 지내면서 죄 없으시고 의로우신 예수님이 왜 고난받으셨는지를 묵상하고 이 땅에서 억울하게 고난받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사순절을 지내면서 인생에는 밝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프고 어두운 면도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인들은 40일 동안 매일 성경을 읽고 구제와 봉사를 하고 유흥과 오락을 줄이며 경건한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전통을 따라서 40일 동안 매일 성경을 읽고 이웃을 위해 중보기도를 한다든지, 하루에 1달러씩 모아서 구제헌금을 하거나 봉사활동을 한다든지, 자녀들 컴퓨터 사용 시간을 1시간 줄인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경건의 시간을 보내면 사순절이 뜻 깊게 다가올 것입니다. 사순절은 우리들의 인생을 더 의미있고 진실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재의 수요일이 되면 이마에 재를 바르는 의식을 행합니다. 보통 재와 씨앗과 기름을 섞어서 만드는데 재는 우리 죄악을 가리키고 씨앗은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가리키고 기름은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름 바르셔서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재의 수요일은 첫째로 우리들이 흙에서 왔으니 때가 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리켜 줍니다. 우리들이 흙에서 왔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연을 가리켜서 어머니 자연(mother nature)라고 부르는데 우리들은 어머니 자연에서 왔기 때문에 때가 되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들은 재를 이마에 바르는 의식을 통해서 내가 자연에서 왔음을 깨달으며 겸손을 배우고 자연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기독교 영성 훈련 중에 “촉루관 체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촉루(髑髏)는 백골/해골을 뜻합니다. 옛날 수도사들은 장례를 치르지 않고 버려진 시신을 산으로 가져가서 시신의 살이 없어지고 뼈가 바람에 날리고 완전히 자연으로 스며들 때까지 6개월 혹은 1년 동안 지켜보면서 삶과 죽음을 묵상했습니다. 지금도 신학교에 가면 관 속에 들어가서 내가 죽었을 때를 묵상하는 훈련을 하게 합니다. 죽음을 소홀히 하면 삶을 소홀히 하게 되고 죽음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삶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관 체험을 통해서 내가 때가 되면 흙이요 먼지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동시에 나도 그리스도처럼 겉사람이 죽고 속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재를 이마에 바르는 의식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묵상하고 우리의 삶을 더 진실하게 살도록 인도해 줍니다.
둘째로 우리는 재를 이마에 바름으로서 우리의 죄악과 욕심과 탐욕을 회개합니다. 재를 뒤집어쓴다는 것은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엘서 말씀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지금이라도 너희는 진심으로 회개하여라. 금식하고 통곡하고 슬퍼하면서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요엘은 옛날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져 있을 때 남유다의 선지자였는데 남유다의 왕 요아스가 우상을 숭배하고 부패하게 된 것을 보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순절은 회개의 기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의롭고 진실하게 살지 않은 것과 이웃의 고통에 무관심한 것과 자연을 남용하고 오용한 것을 회개하는 기간입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 사이에서 “Me Too”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아시는 분은 아실 것입니다. 옛날에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 성추행을 당해도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말하고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겠다는 운동이 Me Too 운동입니다.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철저한 고백과 회개가 있어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너무 빨리 용서를 말하면 안 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으면 피해자가 용서할 때까지 가해자는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2018년 사순절에는 남자들이 많이 회개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일본 아베 총리가 한국에 와서 소녀상을 다 철거하라고 요구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독일은 일본과 같은 가해자이지만 전 세계에 있는 유대인 학살 기념관을 철거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그만 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계속 사과를 합니다. 일본은 독일의 이런 자세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올림픽 잔치에 와서 일어나지도 않고 박수도 치지 않습니다. 지도자가 그런 행동을 하니까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재를 이마에 바른다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하나님과 이웃들 앞에서 한 잘못된 행동들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 너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는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며 한결같은 사랑을 늘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많으셔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거두기도 하신다.” 우리 주님께서는 진정으로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하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재를 이마에 바른다는 것은 우리가 먼지임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질그릇 속에 사랑의 능력을 불어넣어주셨으니 남은 인생 사랑하며 살겠다는 고백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흙에서 왔을 지라도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에게 사랑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친구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함께 아파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사람이 남겨준 사랑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주님 주신 사랑의 능력으로 우리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Lent, the power of love
Joel 2:12-14, John 15:9-14
Yet even now, says the Lord, return to me with all your heart, with fasting, with weeping, and with mourning; rend your hearts and not your clothing. Return to the Lord, your God, for he is gracious and merciful,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steadfast love, and relents from punishing. Who knows whether he will not turn and relent, and leave a blessing behind him, a grain-offering and a drink-offering for the Lord, your God? (Joel 2:12-14)
As the Father has loved me, so I have loved you; abide in my love. If you keep my commandments, you will abide in my love, just as I have kept my Father’s commandments and abide in his love. I have said these things to you so that my joy may be in you, and that your joy may be complete. ‘This is my commandment, that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No one has greater love than this, to lay down one’s life for one’s friends. You are my friends if you do what I command you. (John 15:9–14)
Last Wednesday was Ash Wednesday. After the Epiphany, 40 days of Lent, began on Ash Wednesday. Ash Wednesday is the first day of Lent, which is six weeks of repentance before Easter. It drives its name from the placing of repentance ashes on the foreheads of participants to either the words “Repent, and believe in the Gospel” or the dictum “Remember that you are dust, and to dust you shall return.” The ashes may be prepared by burning palm leaves from the previous year’s Palm Sunday celebrations. Among Roman Catholics, Ash Wednesday is usually observed by fasting, repentance, or abstinence from particular foods. Ashes Wednesday first indicates that we have to return to the soil again because we have come from the nature. Second, we repent of our iniquities and greed by applying ashes on our foreheads. Third, it indicates that God loves us for the rest of our life since God has blessed us with the power of love even though we are dust. Although we came from the dust, we are called to live the life of love that God has given us. Although our bodies will return to the earth, the love that we left behind will not disappear. We are called to make our life more beautiful with the power of love that we have been given by God.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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