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후 여섯번째 주일/7월 세번째 주일
성령강림절, 마리아의 배움과 마르다의 섬김
누가복음 10:38 – 42
정해빈 목사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지난주일 읽었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와 같이 읽어야 더 잘 이해될 수 있습니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져 있느냐고 물으셨고 율법교사는 네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쓰여져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에 쓰여진 대로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율법교사는 나의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고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영생 얻고 구원받으려면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설명하는 비유이고 오늘 우리가 읽은 마리아/마르다 이야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으면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와 마르아/마르다 이야기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지난 주일과 오늘 읽은 누가복음 10장 말씀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강도를 만나 피 흘려 쓰러졌는데 같은 유대인 종교 지도자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쳤는데 평소에 원수처럼 무시하는 사마리아 사람이 자신을 구해 주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웃 사랑은 내가 평소에 잘 아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고 고통당하는 사람을 조건없이 구해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웃 사랑의 놀라움이 있습니다. 율법교사는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 누가 나의 이웃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이웃을 사랑할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질문했는데 예수님은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아닌가를 묻지 말고 나는 고통당하는 사람의 이웃인가 아닌가를 물으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과 강도만난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구해주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메시야가 되었습니다. 서남동 목사님은 강도만나 피 흘리는 사람이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라고 말했습니다. 강도만나서 고통받는 사람을 만나야 내가 편협하고 교만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겸손한 사람, 긍휼의 사람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한국의 중견 탤런트인 김혜자씨가 평소에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인생을 살다가 아프리카에 구호활동을 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깨달음을 얻어서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라는 책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강도만나 피 흘리는 사람을 만나야 우리가 영적인 눈을 떠서 이 세상에 얼마나 고통받는 사람이 많은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동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고통받는 사람을 조건없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리아/마르다 이야기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구원받고 영생을 얻으려면 내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하는데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이웃사랑을 설명하고 있다면 마리아/마르다 이야기는 하나님 사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우리의 상식을 깨트리는 것처럼, 마리아/마르다 이야기도 우리의 상식을 깨트리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성을 비하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두 명의 여성을 격려하고 축복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마르다/마리아의 집에 왔는데 마르다는 시중을 들었고 마리아는 예수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발 곁에/밑에 앉았다”는 말은 문하생, 제자를 가리킵니다. 2000년 전에는 보통 남자 제자들만 스승의 발밑에 앉을 수 있었고 여성들은 시중을 드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밑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남성 제자들이 마리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리아를 제자로 인정하셨고 그녀가 좋은 선택을 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사랑하시는 것처럼 예수께서도 마리아를 차별없이 사랑하시고 칭찬하셨습니다. 마르다처럼 밖에서 섬김과 봉사를 실천하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마리아처럼 방 안에서 말씀을 공부하고 듣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마르다와 같은 섬김/봉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마리아처럼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공부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겉으로 보면 예수님이 마르다를 꾸짖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르다를 꾸짖은 것이 아니라 마르다를 격려/칭찬하시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시중을 들었는데 마르다 조차도 동생이 예수님 발밑에 앉아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2000년 전에는 누구나 여자는 밖에서 시중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생각을 깨우쳐 주시고 동생이 좋은 선택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제자가 될 수 있고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리아의 배움이 귀한 것처럼 마르다의 섬김도 귀합니다. 중동지방에서는 사막이 많기 때문에 집을 찾아온 나그네를 대접하지 않으면 그 나그네는 생명을 위협받게 됩니다. 그래서 중동지방에서는 집을 찾아온 손님을 정성으로 대접하는 전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마르다는 손님을 대접하는 몫을 선택했습니다. 마르다의 역할은 생명을 살리는 역할이었고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너는 너무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슈퍼우먼/슈퍼맨처럼 가정/직장/교회에서 너무 많은 일을 너무 잘 하려고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교회가 너무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교인들을 힘들게 하고 무엇을 강요하고 교인들을 교회에만 붙잡아 두지 말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시겠지만 우리가 아니어도 다양한 방법으로 새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주의 일을 너무 힘들게 많이 할 필요도 없고 많은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입니다. 배움이든 섬김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서 기쁜 마음으로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마르다를 향해서 너무 많은 일로 염려하거나 비교/경쟁하지 말고 자신이 선택한 한가지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성령충만을 강조하는 유명 목사님들이 왜 범죄를 저지르고 물의를 일으키냐고 어떤 사람이 질문을 하니까 그것은 유명 목사님들이 배움과 섬김을 게을리 하기 때문이라고, 첫째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가까이 하지도 않고 공부하지도 않고 말씀을 듣지도 않기 때문이고 둘째로 섬김과 봉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누가 답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배움을 게을리 하고 섬김을 게을리 하면 사람은 누구나 나태해지고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 발밑에 앉아서 말씀을 공부하고 배워야 하고 마르다처럼 섬김과 봉사를 실천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유럽을 가면 산속에 수도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세시대를 대표하는 수도원으로 베네딕트 수도원이 있는데 베네딕트를 한자로 쓰면 분도(芬道)가 됩니다. 한국에도 경상북도 왜관에 베네딕트 수도원과 분도출판사가 있습니다. 이 수도원의 표어가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입니다. 하루의 절반은 기도하고 공부하고 나머지 절반은 노동/섬김/봉사를 하면서 농작물을 기르고 장식품/가구를 만들기도 합니다. 마리아처럼 공부하고 기도하고 마르다처럼 섬기고 봉사할 때 우리는 하나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배움이든 섬김이든 무슨 일을 하든지 염려/비교/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기쁜 마음으로 하면 됩니다. 마리아의 배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마르다의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entecost, Mary’s learning and Martha’s service
Luke 10:38 – 42
Now as they went on their way, he entered a certain village, where a woman named Martha welcomed him into her home. She had a sister named Mary, who sat at the Lord’s feet and listened to what he was saying. But Martha was distracted by her many tasks; so she came to him and asked, “Lord, do you not care that my sister has left me to do all the work by myself? Tell her then to help me.” But the Lord answered her, “Martha, Martha, you are worried and distracted by many things; there is need of only one thing. Mary has chosen the better part, which will not be taken away from her.”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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