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부활절  여섯번째 주일 / 5월 두번째 주일
요한복음서 15:9-17, 사도행전 10:44-48
부활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정해빈 목사

 

2015년에 개봉된 영화 [사도]는 조선시대 영조임금과 아들 사도세자 사이의 비극적인 관계를 자세하게 묘사했습니다. 무수리의 몸에서 태어나 왕이 된 영조는 신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하들의 경멸을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 긴장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영조는 신하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40세가 넘은 나이에 낳은 아들 사도의 세자교육에 집착했습니다. 아들을 위해 직접 자녀교육 책을 써서 주었지만 세자는 나이가 들면서 칼놀이와 그림 그리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자신의 기대를 저버린 세자를 보며 영조는 분노하였습니다. “너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왜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냐? 너를 제대로 된 임금 만들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 줄 아느냐? 하나만 삐딱해도 신하들이 멸시한다. 너 같은 인간을 세자로 세운 것이 내 잘못이다. 너는 존재 자체가 역모다!” 아버지의 이 말이 사도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결국 사도세자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영조는 나중에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죽은 아들의 이름을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슬픔을 생각한다”라는 뜻에서 사도(思悼)로 정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을 꼽으라면 “너는 존재 자체가 역모이다” 라는 말일 것입니다. 이 말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가장 잔인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존재 그 자체로 귀한 존재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는 나이가 들면 돈을 벌 수도 없고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가 능력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귀하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을 보면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 바로 다음에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나옵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경제활동을 하지 말고 존재 그 자체를 기뻐하라는 계명이 안식일 계명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의 능력을 따지지 말고 부모 그 자체를 귀하게 여기라는 뜻에서 안식일 계명 다음에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만드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세례받을 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막1:11)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큰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기뻐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존재 자체를 기뻐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존재를 기뻐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불완전하고 불순종합니다. 불완전하고 불순종하기 때문에 우리는 의로우신 하나님께 먼저 가까이 다가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완전을 요구하시고 우리의 죄악을 심판하는 분이시라면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주님 보시기에 불순종하고 불완전할지라도 우리의 존재 자체를 기뻐하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의지하며 두려움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요한복음 15장에서 3가지 단어를 같은 뜻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사랑은 계명이고 계명은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고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2000년 전 요한교회가 어떻게 신앙생활했으며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요한교회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는 이유로 유대교로부터 배척을 받고 있었습니다. 요한교회가 유대교의 배척을 견디는 길은 포도나무와 가지가 붙어있는 것처럼 서로 붙어있는 것이었고 서로 사랑하면서 기쁨을 나누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난과 핍박을 이기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로부터 배척받는 요한교회를 축복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선택하였고 너희는 나의 종이 아니라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인과 종은 수직적으로 명령하고 훈계하지만 친구와 친구는 수평적으로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서로 격려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심으로서 고난받는 요한교회를 격려하셨습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이기고 고난을 이깁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요한교회 성도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사랑의 뜨거운 능력만이 고난과 시련을 물리쳐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는 613개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유대교의 율법은 훈계와 명령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 모든 계명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한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율법을 다 지킨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하면 613개의 율법은 저절로 지켜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기쁜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감시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요한교회는 이런 면에서 유대교의 신앙과 달랐습니다. 요한교회는 하나님과의 교제/만남/기쁨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사랑 안에서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랑은 우리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으니 우리는 그 받은 사랑을 이웃과 나눌 수 있을 뿐입니다. 4세기의 신학자 어거스틴은 사랑하는 자(the lover), 사랑받는 자(the loved), 그리고 이 둘을 연합하는 사랑(the love)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과 이 둘을 연합하는 사랑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서 현존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이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은 세상의 고난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사도행전 10장은 베드로가 로마의 군대장교 고넬료를 만나는 장면을 기록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와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여 있든지 다 받아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또한 고넬료의 집안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성령을 받는 것을 목격하였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람들을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만남을 통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기쁨을 주십니다. 베드로는 이방인들은 성령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고넬료와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경계를 넘습니다. 사랑은 차별을 넘습니다. 만일 우리가 완전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면 소수의 사람만이 사랑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유대인만 사랑하신다면 유대인이 아닌 사람은 사랑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존재를 인정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는 존재 자체가 죄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우리의 존재를 기뻐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서로에게 귀한 존재입니다. 큰 능력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귀한 존재입니다. 그대가 있으니 내가 의지할 수 있고 내가 있으니 그대가 의지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보면 기뻐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답답하고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존재 그 자체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의 고난을 견딜 수 있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과 같이 서로 사랑하며 사랑의 힘으로 지금의 고난을 극복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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