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싸움 (4) / 신태성 목사

주현절 다섯번째주일 / 1월 다섯번째 주일
선한 싸움 (4)
히브리서 11:1-10, 마가복음 4:26-32
신태성 목사

우리는 몇 주 동안 선한 싸움의 길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선한 싸움에 참여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싸움은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한 싸움은 말 그대로 좋은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선한 변화, 선한 사건, 선한 열매를 맺기 위해 부르셨다면, 선한 싸움은 그리스도인의 숙명과도 같다 할 것입니다.  God’s Answer

그렇다면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한 또 다른 길은 무엇일까요? (다같이 외쳐봅시다)언제나 준비되어 있기.”

선한 싸움을 싸우기 원하는 사람은 새로운 삶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선한 싸움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새로운 변화, 사건, 열매를 의미한다고 할 때, 새로운 삶의 태도를 갖지 않고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것은 온당하지도 적절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한 태도가 무엇이라고요? 네.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

아마도 여러분들 중에 이 말을 듣고 이런 질문을 가지실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준비하란 말이지?” 언제나 싸울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얘기 같은데… 싸움닭이 되라는 말인가? 호전적이고 사납고, 아니면 계획적인 사람이 되라는 말인가?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항상 준비하라는 말은 믿음과 하나님 나라의 성질에 부합된 삶의 태도를 갖는 것을 뜻합니다.

구체적으로 선한 싸움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과 공동체는 세가지 부분들에 있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첫번째는, 성장할 준비, 두번째는 추수할 준비, 세번째는 위대하신 주님을 만날 준비.  왜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요? 왜냐하면 그것이 믿음 가운데 산다고 할 때, 하나님의 나라를 산다고 할 때 가질 수 밖에 없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하루 하루 맞딱드리는 과제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것들을 헤쳐나가다 보면, 이미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치게 되고, 무엇인가를 준비하거나 장래일에 대해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것 없이는 선한 싸움도 없다 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선한 사건, 변화, 열매를 맺기 원하다면 언제나 준비된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어떤 준비들이요? 성장할 준비, 추수할 준비, 위대하신 주님을 만날 준비.

왜 그런 것일까요? 왜 우리는 이 세가지 준비들을 항상 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번째는 만약 그러한 태도가 없다면 믿음도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성질에 부합된, 즉 (하나님의 나라를 산다고 할 때) 꼭 들어맞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어떤 것을 준비하는 것을 마치 걱정을 많이하고, 근심을 많이하는 것과 동일시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준비”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걱정과 근심이 말그대로 아직 오지도 않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부정적인 생각들을 갖는 것이라면, 영적인 의미에서 준비하는 것은 이미 약속된 것을 믿음 속에서 미리 상상하고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하나인 히브리서 11장 1-2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제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확실한 것이 몇가지나 됩니까? 여러분을 불안하게 만들고자 드리는 질문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진실 혹은 실재에 대해 묻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확실한 것이 존재하긴 합니까?

여러분! 혹시 태어났을때, 여러분이 캐나다로 이민 올 줄 알고 계셨습니까? 얼마전 코비드 19 팬데믹의 영향권으로 부터 곧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얼마전에 WHO에서 발표를 했는데, 여러분! 혹시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마스크를 쓰고 만나게 될 줄 알고 계셨습니까? 여기에 결혼하신 분들이 많으신데, 여러분이 그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게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우리가 알파연합 교회라는 곳에서 함께 예배 드리게 될줄 알고 계셨습니까? 얼마전 예상도 못했던 장례식에 다녀왔는데, 우리가 사는게 사실 불확실한 것 투성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예비하는 삶을 살면 안되는 것입니까?

시드니 필클스틴이라고,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중에 하나인 다트무스 대학에서 경영과 리더십 분야를 가르치고 있는 교수가 있습니다. 제가 그분의 책, 슈퍼보스들이라는 책을 읽고 너무 감명 받아서 휴가 기간을 이용해서 그분의 전략적 리더십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얼마전에 과정을 마쳤습니다. 시드니 교수는 강의 중에 예외적이고 성공적인 리더들이 되는 사람들의 특징들을 분석하면서 그 중에 하나를 다음과 같이 소개 했습니다.

성공적이고 예외적인 리더들은 상황을 직시하지만, 상황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들은 애초에 사업의 시작부터 남다른 태도를 보이는데, 이들은 마치 100명의 직원과 1000명의 고객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된다.”

그렇습니다.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준비된 삶을 사는 것보다 더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방법은 없습니다. 없는 것이 아니라, 있기는 있다는 것을 알지만, 어떤이는 이를 준비함으로 현실에서 살고, 어떤 이는 어짜피 지금 있는 것도 아니고, 불확실하니까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된다면, 현실도 없는 것이고, 미래도 없는 것이고, 더 나아가 믿음도 없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여러분! 믿음의 조상 하면, 어떤 인물이 떠오르십니까? 네, 아브라함. 히브리서 11장 8-10절을 보면 아브라함을 다음과 같이 총평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였으나 믿음으로 나아갔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현실에는 없으나 약속되었기에 믿음으로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어떤 준비 말입니까? 네 성장할 준비, 추수할 준비, 그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날 준비.

아브라함에 있었던 사건이 여러분 각 사람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믿으시면 아멘 아시길 바랍니다) 

종종 저보고 이렇게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특히 목회자들, 사모님들과 함께 목회에 대해서 생각하고 공부하는 모임인 웨슬리 목회 연구 모임에서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연합 집회에서나, 작은 교회에서나, 심지어 주일 학교 몇몇 사람이 있는 곳에서나 똑같이 설교를 열정적으로 하실수 있습니까?” 그럼 저는 답합니다.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그리스도의 말씀을 저를 포함해서, 미래에 그 자리에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전할 뿐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죠. 제 눈에는 이 예배당에 아무런 빈자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

같은 문제도, 같은 사건도 사람마다 다 반응이 다른 것을 우리 모두 잘 압니다. 크게 네가지 부류로 나눌수 있는데,

안될거야” (부정적인 사람)
설마 되겠어?” (의심하는 사람)
될줄로 믿습니다!” (확신하는 사람)
되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할까?” (믿음의 사람)

준비하는 삶은 결코 환상이나 착각을 갖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안될줄 알면서 막연한 기대를 갖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원하는대로~~ 바라는대로~~” 다 될 것이라 여기는 엉뚱한 낙천주의와는 또한 다른 것입니다. 준비하는 삶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것을 시사합니다. 불확실한 세상이 아니라, 태초부터 가장 확실하셨던 하나님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기는 믿음의 반응을 뜻합니다.

그래서 내가 있는 현장에서, 그리고 사역에서 언제나 성장할 준비, 추수할 준비, 그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알파 교회 성도 여러분! 항상 준비되어 있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어짜피 결과를 알 수 없는 것이라면, 그보다 더 현명한 선택이 있을까요? 어짜피 세월이 빠르게 지나는 것이라면, 그보다 더 생산적인 길이 있을까요?

두번째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의 성질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이를 Seed (씨앗)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세가지 성질들에 대해 언급하고 계시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 나라의 두가지 본성들, 두번째는 하나님 나라의 두가지 특징들, 세번째는 하나님 나라의 두가지 역설들. 간단하게 말해서,

  • 하나님 나라의 두가지 본성들 “ 아직(not yet), 이미 (already)”
  • 하나님 나라의 두가지 특징들 “작지만 (small), 굉장한 (big)”
  • 하나님 나라의 두가지 역설들 “우리를 넘어서지만 (beyond), 언젠가는 일어나는 (emerging)”

오늘 본문에 나온 말씀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는 자라나는 씨의 비유, 또 다른 하나는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26-29절)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30-32절)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여기에서 씨드 즉 씨앗은 하나님의 나라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그리고 아직”의 본성들 가운데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씨의 비유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씨앗이 심겨지면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열매가 된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한 싸움을 한다고 할 때,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캐롤 드웩이라는 스텐포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가 있습니다. 그녀의 이론을 “The Power of Yet (아직의 능력)”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그녀는 학생들이 시험을 본 후에  F나 D-를 받은 학생들에게 리포트 카드에 F나 D-를 적는 대신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고 합니다. “Not Yet!”

그녀가 그렇게 적게 된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자신이 심리학 연구를 해보고, 인간이 어떻게 발전되는가를 장기적으로 관찰한 결과 두가지 사실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뭐냐구요?

첫번째 깨달은 것은, 한때의 미숙함 혹은 미진함이 영원한 것이 아니더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어릴 때 또래들에 비해 수학을 잘 못하거나, 언어를 잘 못하거나, 공간, 지각 능력이 부족한 사람과 같이, 한때 어떤 것, 특히 학습 능력에 미진하거나 부족한 사람이 훗날에도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미진했던 그 분야에서 다른 이들을 초월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설사 F를 맞았어도, “Not Yet”이 맞는 것이죠.

또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not yet”이라는 평가가 그 사람 뿐만 아니라 관계가 성장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Fail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을 줍니까? 너는 실패했어, 너는 구제불능이야”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사람에게 줄수 있습니다. 반면, “Not Yet”이라고 하는 말은, 너는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어. 너는 새로와질 수 있어. 너는 계속해서 성장할거야”라는 생각을 학생 뿐만 아니라 (학생을 대하는) 자기 자신에게도 주더라는 거예요. 제가 목사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그리스도가 떠올랐는데…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제가 F를 몇차례 받아받기때문에 그랬던 것이었을까요? ㅎㅎㅎ

팬데믹 기간에 운동은 해야겠고 해서, 조깅을 주로 하다가 뭐 더 기술적인 운동이 없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국에 서울 연합 집회 강사로 갔을때 만난 지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분이 저한테 골프를 한번 배워 보라고 권하더라고요. 그래서 골프 레슨을 몇개월 동안 받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골프 코치가 기본 자세를 알려주고, 제가 연습해서 치면, 그분이 교정해 주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됐습니다. 두명 다 백인 코치들이었는데, 한명은,… 제가 스윙을 하면, 한숨을 쉬거나, 짜증을 냈습니다. 심지어 가끔은 아예 포기했다는 듯이 다른 회원에게는 가면서, 제 근처에는 오지도 않았습니다.

반면, 다른 코치는 전에 코치와는 매우 다른 attitude로 저를 대해 주었습니다. 친절하고, 세심하기도 했고, 그룹에 있는 다른 회원들과 공평하게 레슨을 해 주었는데… 그분이 저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이것이었습니다. “Not Yet. Not Yet. You still don’t have it yet. But you will”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이르지 못했어. 그러나 너는 이룰거야.”

전에 코치는 마치 저에게 끊임없이, 너는 정말 골프를 끔찍하게 친다. 너는 결코 골프를 잘 칠수 없을 거야”라는 느낌과 생각을 주었다면, 이 분은 저에게 “너는 다다를수 있을거야. 그리고 이미 다다르고 있어”라는 생각과 느낌을 주었습니다. 제가 그래서 그분에게 뭐라고 물었게요? “Are you a Christian?” 왜 제가 그렇게 물었을까요?… 네. 바로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그가 저에게 보여준 것과 같은 성질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Not Yet, but Already” “아직, 그러나 이미”

하나님이 여러분 각자를 부르셨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부르셨기에 이미 이루고 계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어떤 준비요? 성장할 준비, 추수할 준비, 그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날 준비.

또한 오늘 말씀에서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은 “small, but big”입니다. 작지만 엄청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성질입니다. 화면을 통해 겨자씨를 한번 봅시다. 겨자씨 크기가 별로 크지 않은 것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겨자씨가 나무로 자랐을때는 어떻게 됩니까? 크기가 수만배, 수백만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 나무의 그늘 아래 수많은 새들이 찾아와 머물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와 같다는 거예요. 작아보이지만, 미진해보이지만, 별거 아닌것 같아 보이지만, 엄청난 것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우리 주일 학교 학생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아이들도 몇몇 되지 않는데… 이제 젊은 사람들이 별로 교회를 좋아하지도 않는데…라고 하실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어린 영혼 한명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여러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사가 한사람의 새로운 생각으로 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 영혼 한명이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 가운데 온전한 일꾼이요 지도자로 자라나면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one is many”가 맞는 말이예요. 그래서 저는 여기에 있는 한명 한명이 다 소중합니다.

알파연합 교회의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가 여러분과 만남을 가지면서 몇가지 사실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알파 교회는 규모에 비해 참 내실있는 교회이구나. 알파 교회 성도들 참 저력이 있구나. 하나님이 이 교회를 정말로 사랑하시는구나.”

그런데, 여러분! 처음부터 이렇게 아름답고 건실한 교회였을까요? 아니요. 누가보기에는 참 허접하고 볼품 없는 교회였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위대하게 세워가시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노력과 헌신 덕분이기도 했겠지만, 작은 것을, 어찌보면, 한낱 사람들의 모임을,…  하나님의 엄청난 사건이 나눠지고 전달될 수 있는 장소로 만든 것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하나님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런 것입니다. 작아보이지만, 엄청난 것이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뭐예요?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보기에는 작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것이라면 우리가 할 일은 뭡니까? 네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준비요? (다같이 따라해 볼까요?) 성장할 준비, 추수할 준비, 위대한 하나님을 만날 준비.

하나님 나라의 세번째 성질은 그것의 역설성과 관련되는데, 바로 “우리를 넘어서지만 (beyond), 언젠간 일어나는 (emerging)”의 것입니다.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에서도 언급하는 바, 씨앗이 뿌려지고 난 후 언제 그것이 자라는지… 아마도 가든닝이나 꽃을 키워본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처음에 심을때는 이게 언제 자라나… 언제 꽃을 피우나 하지만, 어느날 아침 출근하다가, 혹은 퇴근해서 보면, 그게 엄청 자라있고, 꽃이 활짝 폈다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렇다는 거예요. 우리가 언제, 어떻게는 알 수 없으나…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지, 언제 열매를 맺게 하실지 우리는 모르지만, when 과 how 는 오직 하나님만 아시지만, 하나님이 분명히 이루실거라는 겁니다. 그분의 방식대로, 그분의 시간에.

겨자씨의 비유도 동일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겨자씨가 너무 작아서,… 심어졌는지 보이지도 않고, 뿌려졌는지도 기억도 감감하지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 속에서 큰 나무가 되어 있다는 거예요.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예상과 방식, 바램을 초월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의 인식과 경험, 계획을 넘어서 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개인 그리고 공동체와 무관하다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왜입니까? 하나님이 뿌리신 것 그리고 심겨진 하나님의 것은 언젠가 위대한 열매로 우리에게 찾아오기 때문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뭡니까? 네. 항상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준비요? 성장할 준비, 추수할 준비, 그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날 준비.

Conclusion
말씀을 마칩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자 하는 사람은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요? 그것이 믿음의 성질, 하나님 나라의 성질에 합당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도 전날밤, 다음날 학교가서 할 일들을 확인하고, 과제와 물품을 미리 챙겨놓습니다. 공부할 준비, 참여할 준비, 그리고 시험볼 준비를 하는 것이죠. 노후를 위해 수입의 일부분을 적금이나 저축보험에 들어놓습니다. 쉴 준비, 즐길 준비, 그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준비를 해 놓는 것이죠. 아직 자식이 대학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학비를 마련해 놓습니다. 겨울이 아직 온 것도 아닌데, 이미 겨울이 온 것처럼 창문을 수리하고, 겨울옷을 세탁해 놓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준비된 자세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과연 합당한 태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항상 준비하라는 말은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질때까지 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항상 준비하라는 말은 어짜피 내 기도와 소원대로 될 거니까 미리 크레딧카드 땡겨쓰고, 큰 집 사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항상 준비하라는 말은 믿음을 가진 사람 답게 사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성질에 부합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 그 약속이 이뤄질것을 믿기에 약속이 이뤄진 후에 할 일을 미리 해나가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항상 무엇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까요? 네. 성장할 준비, 추수할 준비, 그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날 준비.

행여나,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나는 별로 성장도 못한 것 같고, 신앙 생활이나 사역에 있어 열매도 많이 못맺은것 같아서 실망스러운 분들이 계십니까?.  // 이제는 성장하기에는, 열매를 맺기에는 이땅에서 주어진 시간도, 힘도, 능력도, 체력도 없는 것 같아 절망스러운 분들이 계십니까?

만약 그런 분들이 있다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할 수 있는 한가지 준비가 더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준비 말입니까? 네.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날 준비.
성장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추수할 열매가 없는 것 같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모두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이 땅을 넘어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분명 우리와 우리 알파연합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가 나와 함께 걸을려고 참 수고했구나. 내가 성장시키려고 했던 것처럼, 너도 내 안에서 성장하려고 하였고, 내가 열매를 맺으려 했던 것처럼, 너도 나와 함께 열매를 맺으려 노력했고, 내가 너를 보고 싶어 했던 것처럼, 너도 나를 만나기 위해 애썼구나”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선한 싸움에 승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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