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바울과 루디아, 동양과 서양

 

 

한국에서 활동한 캐나다 선교사들 중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윌리엄 존 멕켄지(William John Meckenzie) 선교사입니다. 1861년 캐나다 동쪽 끝 노바스코샤에서 태어난 멕켄지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 조선에 대한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아서 조선선교를 결심합니다. 하지만 당시 캐나다장로교는 재정여력이 없어서 그의 선교사 후원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친구들의 도움을 얻어서 교단 파송 선교사가 아닌 개인 선교사 자격으로 32살의 나이에 조선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는 황해도 소래 마을 사람들이 조선 최초의 교회를 세우고 나서 목회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가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소래교회는 1883년 세워졌는데 이때는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선교사가 아직 한국 땅을 밟기 이전이었습니다. 소래 마을에 살던 서상륜/서경조 형제가 인삼 장사를 하기 위해서 만주를 오고가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죽게 되었는데 당시 만주에서 선교하던 매킨타이어와 로스 선교사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서상륜은 로스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로스 선교사와 함께 성경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형제들이 소래지역에 복음을 전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 아직 서양 선교사가 조선 땅에 도착하기도 전에 조선 최초의 교회가 소래 지역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온 멕켄지 선교사는 소래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조선 사람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서양 사람이 조선 사람과 똑같은 한복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초가집에서 생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을 사람들과 똑같이 살면서 복음을 전했고 아이들 교육에도 힘썼습니다.

소래교회 십자가 깃발과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기와집으로 지은 소래교회 옆에 높은 십자가 깃발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조선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 조선 땅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멕켄지 선교사는 하얀 바탕에 빨간색 십자가, 적십자 깃발을 교회당 옆에 높이 달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깃발을 보면서 이곳이 교회라는 것과 치외법권(治外法權) 지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동학농민들, 청나라, 일본 어느 누구도 소래교회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또 전쟁에서 부상당한 동학농민들이 소래교회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종의 도피성으로서 피난민들이 소래교회에 몰려들기도 했습니다. 멕켄지 선교사는 조선 사람들과 똑같이 너무 열정적으로 살다가 풍토병을 견디지 못하고 2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멕켄지가 죽은 후에 서상륜은 캐나다장로교회에 멕켄지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썼고 그 편지를 받은 캐나다장로교회는 본격적으로 조선선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16장 말씀을 읽어보면 멕켄지 선교사가 조선 땅에 도착해서 선교를 한 것처럼, 사도바울도 낯선 땅 빌립보에 도착해서 선교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래 정통 유대교인이었던 사도바울은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유대교를 망치고 세상을 어지럽힌다고 생각해서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던 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변화를 받아서 정반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되시는 주님의 부활을 통해서 죽음이 무너지고 차별이 무너지는 새로운 세상, 미래의 부활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첫번째 방향전환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이 환상체험을 통해서 두번째 방향전환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1,2,3차 이렇게 세 번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본래는 소아시아 지역, 이스라엘 땅 위에 위치한 지금의 터키 지역을 순회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소아시아의 중요한 도시를 다니면서 1차 선교여행을 마쳤고 이어서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에 선교보고를 한 후에 2차 선교여행을 떠나려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2차 선교여행을 계획하면서 1차 선교여행 때 다녔던 지역을 다시한번 둘러본 후에 다른 아시아 지역을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사도바울의 앞길을 막으시고 그들을 계속 서쪽으로 이끄셔서 마침내 당시 동양과 서양의 경계선으로 알려진 트로이/드로아 지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터키에 속한 트로이/드로아 지도를 보면 바닷가 서쪽은 유럽 마케도니아 지역이었고 바닷가 동쪽은 아시아 터키지역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곳에서 환상체험을 합니다. 유럽 마케도니아 사람이 자신을 향해서 이곳으로 와서 자유와 해방의 복음을 전해달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이곳 마케도니아 지역에 영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곳에 와서 복음을 전해달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환상체험이 주님의 뜻인 줄 알고 방향을 서쪽으로 바꾸어서 배를 타고 유럽 마케도니아 지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마케도니아 지역은 다른 곳에 비해서 미개한 지역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정통 유대인이었고 태어난 곳도 이스라엘 북쪽 다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개한 서쪽 땅을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서쪽으로 와달라는 환상을 보고나서 동양에서 서양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두번째 환상체험/방향전환이 되었습니다.

멕켄지 선교사가 소래마을에서 살다가 풍토병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낯선 땅에서 낯선 음식과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미개한 땅으로 가는 것이 주님의 뜻인 줄 알고 그 환상체험에 순종하였습니다. 이 환상체험을 통해서 복음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덕분에 유럽이 복음을 통해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만약 사도바울이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갔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복음이 유럽을 거쳐서 미국/캐나다를 거쳐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동아시아로 전해지지 않고 반대로 처음부터 이스라엘 땅에서 시작해서 동쪽으로 가서 인도를 거쳐서 중국을 거쳐서 한국 땅에 일찍 전해졌더라면 아시아의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도 크게 보면 아시아 지역이니까, 복음이 아시아에서 시작되었으므로 아시아에서만 맴돌 것이 아니라 복음이 더 필요한 유럽 지역으로 건너가서 유럽을 변화시키고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마케도니아로 건너간 사도바울은 네압볼리를 거쳐서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 빌립보에 도착하였고 안식일에 유대 동포들이 기도하는 곳에 가서 예수의 복음을 전했고 그곳에서 자색옷감 장수인 루디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루디아는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안식일에 유대인들이 모이는 곳에서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옛날 로마사회에서 옷감을 물들여서 색깔있는 옷을 만드는 것은 고상한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냄새나는 물질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노예 혹은 노예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담당하였습니다. 아마도 루디아는 노예에서 풀려난 사람으로서 옷감 만드는 재주가 좋았기 때문에 계속 이 일을 했을 것입니다. 루디아는 빌립보에 와서 복음을 전한 바울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덕분에 유럽 최초의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루디아 덕분에 바울은 빌립보에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바울을 후원하였고 바울이 가장 의지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립보서를 읽어보면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이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한가지 중요한 영적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길을 열기도 하시고 막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여행을 가거나 인생계획을 세울 때 가장 효과적이고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계획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성령께서는 우리를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하시고 그 전혀 다른 길을 통해서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만남을 갖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멕켄지 선교사와 사도바울처럼,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낯선 이웃을 방문하고 환영하며 하나님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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