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베드로와 다비다와 교인들

부활절 네번째 주일 / 5월 두번째 주일
부활절, 베드로와 다비다와 교인들
요한복음서 10:27-30, 사도행전 9:36-43
정해빈목사

 

오늘 5월 둘째 주일은 어버이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본래 5월에는 Mother’s Day가 있고 6월에는 Father’s Day가 있지만 두 개를 합쳐서 오늘 어버이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에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에베소서 6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 된 이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이 땅에서 잘 되고 오래 살 것이라고 주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또 잠언서 23장 22절은

“너를 낳아 준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늙은 어머니를 업신여기지 말아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 어머니 마리아가 옆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이 목수 일을 하면서, 또 공생애를 사시면서 어머니를 가까이 모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고난 받으실 때 가장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 요한이 새로운 가족이 된 것처럼, 우리 교회가 서로 돌봄을 주고 서로 돌봄을 받는 영적으로 새로운 가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 십계명의 4번째 계명으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말씀하셨고 이어서 5번째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말씀하셨습니다. 1번부터 4번까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계명이고 5번부터 6번까지는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인데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의 첫번째 계명으로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멀리 있는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과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서로 붙어있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백성들에게 안식일에는 경제적인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생명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안식일이 없다면 사람들은 일주일 내내 돈만 생각하면서 일할 것입니다. 안식일이 있기 때문에 잠시 우리의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자연을 산책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가정을 돌볼 수 있습니다. 안식일 계명 바로 다음에 나오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을 경제적인 기준으로 바라보지 말고 생명의 기준으로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은 더 이상 일을 할 수도 없고 돈을 벌어올 수도 없습니다. 경제적인 기준으로 보면 연로하신 부모님은 무능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생명의 기준으로 보면 나의 생명이 부모님을 통해서 왔기 때문에 부모님은 나의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킬 것과 부모님을 공경할 것을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주일에 묵상한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주님을 3번 배반한 베드로에게 똑같이 3번 “아직도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고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고 돌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9장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탁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욥바”라는 해안가에 위치한 동네가 나옵니다. 이 동네에 초대교회가 생겨났고 다비다/도르가 라는 여제자가 착한 일과 구제사업을 많이 하다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신도들이 베드로가 옆동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사람을 보내서 지체하지 말고 와 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심부름꾼을 따라서 급히 욥바에 도착해보니 신도들이 다비다가 자신들을 위해서 만들어 준 속옷과 겉옷을 베드로에게 보여주며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을 바깥으로 내보낸 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고 시신 쪽으로 몸을 돌려서 “다비다여, 일어나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다비다가 욥바에서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성실하게 목회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베드로도 다비다의 임종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비다와 베드로 모두, 예수님이 부탁하신 것처럼 양을 먹이고 돌보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 다비다와 베드로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초대교회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다비다의 임종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와서 기도하였고 그녀에게 일어나라고 말했고 이어서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예수님이 어린 소녀를 향해서 “달리다쿰, 소녀야 일어나라” 말씀하신 것처럼, 베드로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주님의 능력을 받아서 다비다를 죽음에서 일으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가만히 읽어보면 다비다가 임종할 때의 모습이 성도님들이 임종할 때의 모습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님이 임종할 때가 가까워지면 가족들은 한 자리에 모이고 또 목회자를 부릅니다. 그러면 목회자는 베드로가 한 것처럼 지체하지 말고 성도님이 누워계신 곳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목회자는 임종을 앞둔 또는 이미 운명하신 고인을 향해서 기도를 하거나 찬송가를 부르며 임종예배를 드립니다. 사람이 운명할 때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것이 청각이라고 합니다. 임종하는 사람은 말을 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만 완전히 임종할 때까지 가족들와 목회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이 고인을 향해서 감사의 말을 전하고 목회자가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면 고인은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다비다의 손을 잡았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마지막 순간에 고인의 손을 잡아줄 때, 목회자가 고인의 손을 잡아줄 때, 임종하는 분은 가족들과 목회자의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인생이 복된 인생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아름답고 편안하게 인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급히 달려왔고 다비다를 향해서 간절하게 기도하였고 다비다를 향해서 다시 일어서라고 말했고 다비다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다비다를 향해서 최선을 다해서 목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욥바 주변 지역을 담당하는 목회자로서 교인들의 요청에 응답하며 최선을 다했고 욥바 지역에서 가난한 성도들을 돌보았던 다비다는 임종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을 위해 속옷과 겉옷을 만들어 주며 최선을 다해습니다. 그렇게 다비다가 교인들을 돌보아주었기 때문에 교인들은 베드로에게 다비다가 만들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주며 슬피 울 수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평생을 살았던 테레사 수녀가 어느 날 정신병에 걸린 여성 환자를 복도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수녀들은 이 환자가 테레사에게 덤벼들어서 해를 입히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테레사는 키도 작았고 몸집도 작았습니다. 그래서 수녀들은 이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을 꽉 붙잡았습니다. 하지만 테레사는 정신병에 걸린 그 여성 환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다가가서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했습니다. 테레사가 그의 어깨에 연약한 손을 얹자 그 사람도 순한 양처럼 조용해지더니 미소를 지었습니다. 키도 작고 몸집도 작은 테레사의 따뜻한 미소와 따뜻한 손이 정신병에 걸린 환자의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나오는 다비다도 마더 테레사처럼 자신을 돌보지 않고 가난한 성도들을 정성으로 돌보았을 것입니다. 다비다의 따뜻한 사랑이 성도들에게 전해지게 되었고 그 사랑이 다시 성도들을 통해서 베드로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다비다 같은 성도가 있는 교회는 행복한 교회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 부모님들이 다비다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테레사와 다비다 처럼 몸도 연약하고 힘도 없습니다. 오랜 세월 고생하시다보니 허리는 굽어지고 기력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의 헌신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살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들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우리 교회가 영적인 가정이 되어서 서로 돌보고 서로 돌봄을 받는 복된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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