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빌립보의 어둠을 밝히다

부활절 일곱번째 주일 / 5월 다섯번째 주일
부활절, 빌립보의 어둠을 밝히다
사도행전 16:16-23, 29-34
정해빈목사

 

우리는 지난 5월 한 달 동안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따뜻한 날씨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슬픈 소식도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5/24) 미국 텍사스 주에서 18세 청년이 할머니를 총으로 쏜 후에 초등학교에 뛰어들어서 초등학생 19명, 어른 2명을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 텍사스 주에서는 18세부터 총을 구입할 수 있는데 이 청년은 생일날 소총을 구입한 후에 이와 같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내린 것처럼 갑자기 어린 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말로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도 우크라이나에서 죽어가는 어린이들과 여성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어린이들과 여성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가 있는 것일까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지키고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이다 보니, 또 총기회사들의 로비 때문에 총기구입을 강력하게 규제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누구나 총기를 구입할 수 있으면 이런 불행한 일은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운전이 위험하기 때문에 운전을 하려면 필기시험/실기시험을 보고 면허증을 따야 하는데 운전보다 몇 배 위험한 총기를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18세 청년이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번 경우와 같이 자신의 화를 억제하지 못한 사람은 화풀이를 하기 위해서 총을 쏠 것이고 그러다보면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바울이 아시아에서 2차 선교여행을 하다가 트로이/드로아에서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고서 서쪽 마케도니아/유럽으로 배를 타고 건너가서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케도니아 사람이 바울에게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영적으로 고통받고 있으니 이곳으로 건너와서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본래 바울은 아시아 지역을 돌아다니려고 하였는데 이 환상을 보고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서쪽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덕분에 유럽 지역에 복음이 전해질 수 있었고 빌립보에서 자색 옷감 장수 루디아가 유럽 최초의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루디아는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안식일에 유대인들과 같이 모여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루디아가 만드는 자주색 옷은 귀족들이 입는 옷이었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이 힘들고 복잡했습니다. 루디아는 옷감을 물들이는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부를 쌓을 수가 있었고 바울은 루디아의 집에서 빌립보 교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유럽 최초의 도시 빌립보에서 복음을 성공적으로 전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바울과 실라가 유럽 최초의 도시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했고 유럽 최초의 기독교인을 만들었고 유럽 최초의 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바울의 빌립보 선교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읽어보면 바울과 실라가 불의한 경제와 불의한 권력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불의한 경제가 바울과 실라를 박해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는 곳으로 가다가 귀신들려 점을 치는 노예 여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노예 여종의 주인들은 노예 여종으로 하여금 점을 치게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이 노예 여종이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바울을 귀찮게 하니까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이 여종을 괴롭히던 귀신을 내쫓았고 이 여종은 더 이상 점을 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돈벌이가 끊긴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서 로마 관원들에게로 끌고 갔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유럽 최초의 도시라는 빌립보에서 노예제도가 있었고 귀신들려서 점을 치는 여성노예가 있었고 그 여성노예를 통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신매매가 있었고 여성이 학대당하였고 그런 학대를 통해서 일부 사람들이 돈을 벌었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성차별, 인종차별, 불의한 경제와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둠이 물러가듯이 기독교 복음이 들어가면 모든 차별과 불의는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빛이 싫어서 그 빛을 박해하기도 합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150년 전, 200년 전 기독교가 조선 땅에 들어왔을 때, 서양종교라고 해서 오해도 있었고 박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가 생명을 구원하고 인권을 증진시키고 사회를 개혁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기독교가 전래되었을 때, 여성들은 자기 이름도 없었고 한글을 쓸 줄 아는 여성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세워지고 한글 성경이 보급되면서 여성들은 교회에서 자기 이름을 찾게 되었고 한글 성경을 읽으면서 한글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누구 엄마가 아니라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아무개 성도님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복음은 여성을 해방시키고 사회를 개혁하고 사회를 평등하게 만들고 불의한 경제를 정의로운 경제로 만들어 줍니다. 바울과 실라는 귀신들렸을 뿐만 아니라 여러 명의 주인들에게 붙잡혀 있는 여성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복음이 억눌린 사람을 자유하게 하고 복음이 불의한 경제를 자유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기독교 복음이 들어가면 노예제도가 사라지고 성차별이 사라지고 불의한 경제가 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불의한 권력이 바울과 실라를 박해하였습니다. 이 여종의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서 로마의 관원들에게로 끌고 가서 이 사람들이 도시를 소란하게 하고 부당한 풍속을 선전하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로마 치안관들과 간수들이 바울과 실라의 옷을 벗기고 매질을 하고 발에 차꼬를 채운 후에 그들을 깊은 감방에 가두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재판도 하지 않고 매질을 하고 감옥에 가두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빌립보의 치안관들과 간수들은 여종의 주인들의 말만 듣고 그들을 지하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불의하고 부패한 권력이 바울과 실라를 박해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실라는 좌절하지 않고 감옥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문이 열리고 모든 죄수의 수갑과 차꼬가 풀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잠에서 깬 간수는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는 죄수들이 다 달아난 것으로 생각하고 자결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실라는 우리가 도망간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몸을 스스로 해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죄수 신분인 바울과 실라가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간수를 살렸습니다. 죄수 신분인 바울과 실라가 간수를 위로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간수에게 복음을 전했고 간수와 간수의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로마제국의 공무원이었던 간수는 로마제국의 법과 종교가 최고인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통해서 로마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참 생명의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위로하고 살리고 자유하게 하는 복음의 참 진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지하 감옥에서 차꼬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신앙과 믿음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감옥 안에서도 감사와 기쁨을 고백하였습니다.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문이 열렸을 때, 두려워한 사람은 바울과 실라가 아니라 간수장이였습니다. 참 신앙인은 어려운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오히려 어려운 환경을 뛰어넘는 사람이라는 것을 오늘 말씀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빅터 프랭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를 이곳 강제수용소로 끌고 온 사람들은 우리의 건강, 우리의 재산, 우리의 자유,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다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빼앗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지금의 비참한 상황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유의지입니다. 우리는 운명의 희생자들이 아니라 운명의 주인공들입니다. 주어진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제로 포로수용소에 끌려왔지만 이 상황에 대처하는 우리의 의지/믿음/용기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불의한 경제와 권력에 의해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그들의 신앙과 믿음과 의지는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모함도 받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지만 노예를 해방시켰고 간수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빌립보의 어둠을 밝히는 빛의 사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의 사자로서 이 땅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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