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광야에서 만난 불뱀

사순절 네번째 주일 / 3월 두번째 주일
민수기 21:4-9, 요한복음 3:14-21
사순절, 광야에서 만난 불뱀
정해빈 목사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민수기 21장은 히브리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뱀을 만나 죽게 되었다가 장대에 달린 구리뱀을 보고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약속의 땅 입구에 일찍 도착해지만 정탐꾼들의 과장된 보고를 받은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였고 결국 발걸음을 돌려 광야로 되돌아갔습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가나안 땅 입구에 도착했지만 이번에는 에돔 민족이 그들의 발걸음을 가로막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다시 광야로 내려갔다가 동쪽으로 우회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이 막히고 또다시 광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히브리 백성들은 길을 걷는 동안에 마음이 조급해졌고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습니까?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합니까? 먹을 것도 없습니다. 마실 것도 없습니다. 이 보잘것없는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납니다.” 백성들이 이렇게 불평하자 불뱀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물어서 많은 백성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민수기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불뱀을 보내셨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불뱀은 광야에서 서식하는 코브라 뱀을 가리킵니다. 코브라 뱀에 물리면 불에 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고 해서 이름이 불뱀이 되었습니다. 또한 코브라 뱀은 애굽 제국의 수호신을 가리킵니다. 이집트 제국의 파라오(바로) 왕관을 보면 머리에 코브라 뱀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뱀은 한꺼번에 많은 알을 낳고 허물을 벗고 또아리를 틀고 자기 꼬리를 물기 때문에 생식력/창조력/치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집트 제국은 자신들의 제국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코브라 뱀을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뱀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합니다.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뱀 한마리가 휘감고 있는 지팡이를 들고 다녔고 이 지팡이가 오늘날 의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뱀이 의학의 상징이 된 것은 독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의학의 도움을 받으면 죽음의 허물을 벗고 다시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불뱀에 물렸다는 이야기는 그들이 실제로 광야에서 코브라 뱀에 물렸다는 이야기길 수도 있고, 뱀의 혀가 갈라진 것처럼 히브리 백성들이 분열하면서 서로 원망했다는 것을 가리킬 수도 있고, 그들이 과거의 애굽 제국을 그리워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 백성들 중에는 거대하고 화려했던 애굽 제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곳에서 노예로 살고 있었지만 먹을 것이 있었고 화려한 신전과 거대한 건축물이 있었습니다. 배고픈 자유보다 배부른 노예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집트 제국은 피라미드 사회였습니다. 맨 꼭대기에 있는 파라오 왕이 세상을 다스렸고 귀족-군인-평민-노예 순으로 인구가 많았습니다. 그 사회는 불평등한 사회였고 억압사회였고 계급사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가장 밑바닥 노예로 고통받았던 당신의 백성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서로 원망하고 과거로 돌아가려는 그들의 마음상태를 가리켜서 그들이 불뱀에 물렸다고 표현했습니다. 영적으로 불뱀에 물리면 서로 원망하고 과거의 애굽 제국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과 평화, 사랑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향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신앙입니다. 과거로 되돌아가는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과거 사회는 계급 사회였고 불평등한 사회였고 폭력 사회였고 가부장적인 사회였습니다. 과거 사회에는 노예가 있었고 여성들은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소수의 권력자들이 폭력으로 다수의 사람들을 지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세상에서 억압받던 당신의 백성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요즘 미얀마에서는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에 의해서 국민들이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은 이번에 세번째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오랫동안의 유럽 식민지와 해방, 군부 세력의 지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얀마도 오랫동안의 군부 세력의 지배를 받다가 2015년 아웅산 수치 여사를 통해서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이번에 다시 군부 세력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민주주의 사회를 싫어하는 구세력들은 자신들이 지배했던 과거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기회만 있으면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치/경제/언론을 통제하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어두웠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사람들,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 제국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 자유를 말살하는 사람들, 신체적/경제적/문화적 약자들과 소수자들을 괴롭히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오늘날의 불뱀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불뱀은 사람들을 물어서 사람들을 죽게 만듭니다. 불뱀이 제국이고 제국이 불뱀입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불뱀에 물렸다는 말은 그들이 과거의 애굽 제국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광야의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광야의 고난이 힘들다고 하더라도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백성들을 보시고 심히 진노하셨습니다. 모세는 불뱀에 물린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간절하게 중보기도하였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모세가 장대 위에 높이 달린 구리뱀을 보고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요한복음 3장을 보면 예수님이 당신의 사명을 말씀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대 위에 구리뱀을 매단 것처럼, 오늘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하늘 높이 바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된 미얀마 사람들, 인종차별철폐운동을 벌이다가 인종주의자의 총에 맞아 죽은 마틴루터킹 목사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벌이다 희생된 사람들, 생명과 평화와 정의와 사랑을 위해 희생된 순교자들이 인류를 살리기 위해 장대위에 높이 매달린 구리뱀 같은 사람들입니다.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장대 위에 높이 달린 구리뱀을 보고 살아난 것처럼, 정의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통해서 인류는 과거로 퇴보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셔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불뱀에 물려서 서로 원망하고 서로 지배하고 서로 악을 행하려고 하는 우리의 마음이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통해서 바뀌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순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불뱀과 구리뱀 이야기는 땅/과거를 쳐다보지 말고 하늘을 쳐다보아야 광야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고, 죄와 악의 권세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가리켜 줍니다.

불뱀과 구리뱀 이야기는 어두었던 과거를 그리워하지도 말고 어두웠던 과거의 악습으로 되돌아가지도 말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의 땅을 향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자유의 땅을 향해서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불뱀에 물리면 서로 악을 행하고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약속의 땅에 도착하지도 못한채 중간에서 다 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눈을 들어 우리를 향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마음과 생각이 바뀌게 되고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신 그리스도를 따라가게 됩니다. 광야는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과거에서는 떠났지만 아직 약속의 땅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광야가 힘들다고 해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가 혼란스럽다고 해서 과거의 독재 국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뜨거운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신 주님, 불뱀에 물린 우리를 살리기 위해 하늘 높이 십자가 위에 매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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