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결핍과 풍성함 사이에서

성령강림절  열번째 주일 / 7월 네번째 주일
사무엘기하 11:11-15, 에베소서 3:14-21
성령강림절, 결핍과 풍성함 사이에서
정해빈목사


어느 덧 2021년 7월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작년 11월말부터 오늘까지 Zoom 또는 유투브 또는 주보를 이용해서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에 참여해 주신 성도님들과 코로나 인한 어려운 시기에 예배가 중단되지 않도록 봉사해 주신 분들과 저희들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8월이 시작되는 다음 주일부터는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조금씩 정상으로 되돌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최근 캐나다에서는 원주민 기숙학교 어린이 무덤이 5월 이후 네번째로 발견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약 천개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과거에 원주민 정책을 만들었던 정치인들의 동상이 시민들에 의해 제거되고 있습니다. 2015년 진실과화해위원회는 6년간의 조사 끝에 원주민 기숙학교 학생 4천 100명이 영양실조와 질병, 학대 등에 숨졌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그 발표의 구체적인 증거들이 요즘 계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원주민 학교 약 70%를 운영했던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역사에는 환경보호, 다문화정책, 전국민의료보험 등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지만 반대로 부끄러운 역사도 있습니다. 원주민기숙학교, 인종차별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지난 6월 토론토 스타(Toronto Star) 신문에 캐나다 정부가 1885년부터 1947년까지 62년 동안 행했던 중국인 인두세에 대한 글이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대륙횡단철도를 놓기 위해 캐나다에 온 중국 남자 노동자들은 당시 일인당 500불에 해당하는 인두세 때문에 아내와 가족들을 캐나다로 데리고 올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1923년에 발표된 중국인이민금지법으로 인해 중국인들은 1923년부터 1947년까지 24년 동안 입국이 금지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 당시 캐나다에 사는 중국인들의 남녀비율이 2000대 1이었고 중국인 남성 노동자들은 결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캐나다 정부는 1949년 이전에는 아시아인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캐나다에 사는 중국인들이 모두 부유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2016년 인구 조사에 의하면 백인들의 빈곤율은 12%이었고 흑인들과 중국인들의 빈곤율은 똑같이 23%였습니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빈곤에 시달리는 중국인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중국인차별정책 때문에 중국인 1세들이 지금도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과거 정부가 저지른 원주민학살, 원주민기숙학교, 중국인인두세, 인종차별, 백인우월주의에 대해서 사과하고 과거의 과오를 전철삼아서 더 이상의 억압과 차별이 없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사무엘기하 11장은 다윗왕의 범죄를 기록했습니다. 다윗은 장군들과 군인들을 전쟁터에 내보낸 후에 저녁에 옥상에서 혼자 거닐다가 한 여인을 발견하고는 그를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다윗이 빼앗은 그녀는 다윗의 심복 우리야 장군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행동을 숨기기 위해서 우리야 장군을 불러서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충직한 우리야 장군은 병사들이 전쟁터에 있는데 혼자서 집에 갈 수 없다고 말하며 궁궐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요압 장군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를 전쟁터 맨앞으로 보내서 그를 죽게 만들라고 말했습니다. 젊은 시절 언약궤를 되찾고 나서 백성들과 함께 춤을 추고 함께 음식을 먹었던 다윗은 이제 권력을 남용하고 간음과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솔선수범하는 마음으로 전쟁터에 참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참가하지 않고 궁궐에 홀로 남았습니다. 그는 외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옥상을 거닐다가 남의 아내를 빼앗았고 충직한 부하 장군을 속이기 위해 궁궐로 불렀고 마침내는 그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범죄일 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의 범죄이기도 했습니다. 모세는 신명기 17장에서 왕은 군마를 많이 가져도 안되고 아내를 많이 가져도 안되고 금/은을 많이 가져도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모세의 유언을 지키지 않았고 반대로 행동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신앙의 결핍, 도덕의 결핍, 양심의 결핍, 사랑의 결핍, 관계의 결핍이 범죄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도덕과 양심, 은혜와 사랑, 감사와 기쁨이 부족한 사람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권력과 이성과 재물을 찾습니다. 다윗은 어느 순간부터 도덕과 양심의 결핍, 신앙의 결핍, 사랑과 관계의 결핍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과 율법을 멀리하기 시작하였고 자신의 허전한 마음을 권력과 이성과 재물로 채우려고 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율법을 어기는 범죄로 이어졌고 결국 그는 이 범죄로 인해서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결핍은 불만을 낳고 불만을 미움을 낳고 미움은 범죄를 낳습니다. 결핍은 우리의 마음을 잘못된 길로 인도합니다. 예를 들면 이민자들이 많이 오면 직업을 빼앗긴다고 생각해서 이민자들을 차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차별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결핍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결핍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환영할 여유가 없습니다. 이민자를 학대하면 그 사회는 좁고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사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민자들이 오면 직업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인구가 많아지고 인구가 많아지면 직업이 많아지기 때문에 모두에게 유익이 됩니다. 이민자들이 많이 오면 그 나라는 더 건강해지고 풍성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입니다. 마음이 풍성한 사람들은 이민자들이 모두에게 유익이 된다고 생각하고 이민자들을 환영할 것입니다. 마음에 결핍이 있으면 죄를 저지르거나 다른 사람을 학대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풍성한 사람은 복을 나누어 주고 이웃을 환영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에베소서 3장에서 아버지께서 그분의 영광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겉사람이 외모와 육체를 가리킨다면 속사람은 영혼과 마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겉사람도 강건해야 하고 속사람도 강건해야 합니다. 겉사람이 강건하다고 하더라도 속사람이 강건하지 못하면 마음에 결핍이 오고 마음에 결핍이 오면 마음이 지치게 되고 마음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헛된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허전해지지 않도록 은혜와 사랑과 자비로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채워 주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충만하시니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닮아서 충만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얼마나 크고 넓고 높고 깊은지를 알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풍성하시고 충만하시니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도 풍성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런 말씀들이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우리는 매일 결핍 속에서 살아갑니다. 갖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갖고 싶은 것을 다 갖을 수 없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없습니다. 매일 결핍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충만하시니 여러분도 충만해지기를 바란다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주만물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풍성한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풍성하시니 우리들도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거하는 사람은 결핍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주님께 인정받기 위해서 더 많이 소유하거나 더 유명한 사람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결핍을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가 마음 문을 닫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마음 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주님께서는 풍성한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주님과 더불어 풍성하고 감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