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불과 바람의 소리

성령강림절 세번째 주일 / 6월 첫번째 주일
성령강림절, 불과 바람의 소리
사도행전 2:1 – 4
정해빈 목사

 

6월 첫번째 주일, 성령강림절 세번째 주일입니다. 1917년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난 정대위 목사님은 토론토대학 임마누엘 신학교에서 공부하시고 미국 예일대학에서 종교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건국대학교 총장을 8년 역임하시고 토론토한인연합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1968년-1969년 2년 목회하시고 오타와 칼튼 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부임하셔서 14년간 학생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정대위 목사님이 쓰신 책 중에 [그리스도교와 동양인의 세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기독교와 동양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기독교가 동양에 전파되었을 때 아시아 사람들은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중국, 한국, 일본에 기독교가 전파되었는데 왜 한국에서만 기독교가 빠르게 전파되고 성장하였나? 하는 질문들을 다루었습니다. 이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라는 사람은 [문화의 유형, Cultural Patterns]이라는 책에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있는 두가지 문화를 아폴로(apollonian) 문화와 디오니소스(dionysian) 문화로 설명했는데 아폴로 문화는 조용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문화를 가리키고 디오니소스 문화는 감정적이고 열광적인 사고를 하는 문화를 가리킵니다. 중국 사람들은 땅이 넓어서 그런지 느긋하고 조용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에 아폴로 문화와 비슷하고 한국 사람들은 감정적이고 열정적이기 때문에 디오니소스 문화와 비슷하다고 보았습니다. 어떤 서양 학자는 중국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하고 비슷하고 한국 사람들은 아일랜드 사람들하고 비슷해서 한국 사람들을 오리엔탈 아이리쉬(Oriental Irish)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영국 사람들이 아일랜드 사람들을 낮게 여기듯이 한국 사람들을 낮게 여기는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동양에 전파되었을 때 왜 한국에서만 빠르게 전파되고 성장하였을까? 정대위 목사님은 그 이유가 한국인들의 풍성한 종교성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수천년 동안 무교의 영향을 받았고 이어서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1000년간 불교의 영향을 받았고 조선시대 500년 동안에는 유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국 사람의 마음 맨 밑바닥에 무교가 있고 그 위에 불교가 있고 그 위에 유교가 있고 맨 위에 기독교가 있습니다. 마치 땅 위에 거름을 많이 주면 식물이 빨리 자라듯이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러 종교들이 수천 년 동안 쌓이고 쌓였습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의 맨 밑바닥에는 무교가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아폴로 기질이 아니라 디오니소스 기질이 있어서 감정적이고 열정적이고 노래를 좋아합니다. 이렇게 여러 종교들이 오래 전에 한국 땅에 와서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기독교가 한국 땅에 전파되었을 때 한국 사람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종교성이 풍성하기 때문에 서양 기독교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종교성이 풍성해서 서양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도 사실이지만 거기에 더해서 한국 사람들이 고통받을 때 서양 기독교가 큰 힘이 되었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영적으로 힘들 때 무교를 찾아가서 위로를 받았고 불교와 유교에 의지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때 기존 종교들은 무력했고 변화를 이끌 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 전파되는 기독교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한자로 기록된 불경과 사서삼경은 일반 사람들이 읽을 수 없었지만 한글로 번역된 성경은 일반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기독교는 신분차별에 반대하였고 여성들을 우대하였으며 학교와 병원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기독교의 가르침에 시대의 변화를 이끌 힘이 있었기 때문에 서양 기독교는 한국 땅에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첫째로 종교성이 풍성했기 때문에 서양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둘째로 고통받을 때 기독교가 큰 힘이 되었기 때문에 서양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한 가지 더 이유를 말씀드린다면 불같은 성령께서 우리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서양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불같은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임하셔서 제자들을 감동시키시고 그들을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불같은 성령께서는 한국 땅에 임하셔서 우리들을 위로하시고 치유하시고 감동시키시고 우리들에게 새 힘을 주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기도할 때 비둘기 같은 성령을 받아서 조용하고 부드럽고 평화스럽게 기도하는 것이 맞는 분이 있고 반대로 불같은 성령을 받아서 방언을 하고 뜨겁게 기도하는 것이 맞는 분이 있습니다. 3박 4일 침묵기도회를 가시면 말을 못하게 하고 침묵기도를 하게 합니다. 조용히 침묵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침묵기도가 잘 맞는 분은 침묵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하지만 침묵기도만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슴이 뜨거운 분들, 가슴에 아픔과 상처가 많은 분들은 기도원에 올라가서 소리지르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분들은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하였듯이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해야만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런 분들은 불같은 성령을 받아서 가슴 속에 남아있는 죄와 아픔과 상처를 성령의 불로 불태워야 합니다. 그렇게 가슴이 뜨거워져야만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150년 전 200년 전 기독교가 한국 땅에 들어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불같은 성령을 받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제 식민지 시대에 육체적/정신적/영적으로 고통을 받았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불같은 성령을 통해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진실로 성령께서는 하늘의 불로 임하셔서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시고 우리들의 죄와 아픔과 상처와 원망과 분노를 불태워주시고 우리를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것이 불같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는 불처럼 임하시고 바람처럼 임하십니다. 불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임재를 상징합니다. 불은 어둠을 밝히고 더러운 것을 태우고 열을 내줍니다. 불이 하나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배를 시작할 때 촛불을 켭니다. 불을 켜놓으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거룩해집니다. 하나님께서 불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 취미생활 중에 야외에 나가 캠핑을 하고 모닥불을 피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불을 피우는 것은 무언가 마음이 외롭고 허전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불을 피우면 무언가 마음이 채워지는 것 같고 불을 보기만 해도 Healing이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됩니다. 옛날 원주민들은 서로 모여서 가운데 불을 피워놓고 서로의 갈등을 해결하고 공동체의 앞날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불을 피워놓으면 사람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게 됩니다. 불같은 성령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주시고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하늘의 불과 바람은 사람을 살리고 일으켜 줍니다. 불 중에는 좋은 불도 있지만 생명을 불태우는 나쁜 불이 있고 바람 중에는 좋은 바람도 있지만 생명을 파괴하는 잘못된 바람이 있습니다. 잘못된 바람을 만나면 저 사람 바람피운다, 춤바람이 났다고 말하는 것처럼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진실로 불같은 성령, 바람같은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일으켜주시고 새사람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때로는 침묵기도가 필요할 때가 있고 불같은 기도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불같은 성령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 있는 슬픔과 아픔과 분노와 원망을 치료하시고 불태워주실 때 우리는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불같은 성령을 받으면 우리 교회가 더 따뜻해지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과 바람을 통해서 새사람, 새교회로 변화받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Pentecost, the voices of fire and wind
Acts 2:1 – 4

When the day of Pentecost had come, they were all together in one place. And suddenly from heaven, there came a sound like the rush of a violent wind, and it filled the entire house where they were sitting. Divided tongues, as of fire, appeared among them, and a tongue rested on each of them. All of them wer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began to speak in other languages, as the Spirit gave them ability. (Acts 2:1-4)

Dr. Rev. David Chung has described in his book, [Christianity and the World of East Asians], why Western Christianity had grown rapidly in Korea. First, Koreans was naturally able to embrace western Christianity because they had a rich tradition of religious experience. They have been influenced by Shamanism for thousands of years, Buddhism for 1000 years in Silla and Korean Dynasty, and Confucianism during 500 years of Joseon Dynasty. Because of the experience of these religions rooted in Korea, Christianity has been rooted in Korea. Since many of these religions had been spread to Korea long ago, Christianity was also able to take root naturally in Korea.

Moreover, since the Holy Spirit like a fire touched the hearts of Koreans and transformed them into the people of God, our ancestors were able to accept Christianity positively. When Koreans had suffered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the Holy Spirit comforted them and gave them hope and courage. Just as the fiery Holy Spirit encouraged the disciples of Jesus and made them a church, the fiery Spirit not only healed Koreans but also gave them new strength and power. Truly the Holy Spirit cleanses and burns away all kinds of sins, pains, and wounds that remain in our hearts. Through the Holy Spirit, we can become a new person and a new church. May the grace of the Holy Spirit be with us and with our church. May the Holy Spirit transform us into new beings.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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