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성령은 자립의 영

성령강림절  세번째 주일 / 6월 첫번째 주일
사무엘기상 8:6-11, 마가복음서 3:22-30
성령강림절, 성령은 자립의 영
정해빈목사

 

미국의 블룸버그(Bloomberg) 통신이 지난 수요일(5/25) “코비드 회복 순위(The Covid Resilience Ranking)”를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뉴질랜드, 싱가포르, 호주, 이스라엘에 이어서 한국이 5위를 차지했습니다. 뉴질랜드, 싱가포르, 이스라엘은 1천만 명 이하의 인구를 가지고 있고 호주는 2천 5백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5천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한국이 상위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코로나 방역을 잘 대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은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백신 보급을 담당하기로 합의를 보기도 했습니다. 백신위탁생산능력 1위가 미국, 2위가 한국이라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선진국으로 알려진 북미와 유럽 주요 국가들은 코로나 방역 모범 국가 순위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선진국으로 알려진 국가들은 오랫동안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했습니다. 선진국 국민들은 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하라고 요청해도 정부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시아 문화에 속한 선진국 국민들은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남에게 피해를 줄 것을 걱정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잘 하였기 때문에 코로나 방역 모범 국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질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개인의 자유만을 주장할 때 공동체는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지나친 개인의 자유가 공동체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 사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5월은 아시아 문화유산의 달입니다. 아시아 문화에는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긍정적인 문화도 있지만 권위주의/폐쇄주의/가부장주의와 같은 부정적인 문화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문화는 탈피하고 긍정적인 문화는 계승해야 할 것입니다. 자유(自由)는 무엇에 얽매이지 않는 권리를 가리키고 방종(放縱)은 아무 거리낌이 없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참된 자유는 나의 자유와 공동체의 질서를 모두 소중하게 여깁니다. 만약 이러한 자유를 잃어버리고 자유가 방종으로 흐른다면 그 자유는 통제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질서를 함께 유지하면서 살 것이냐 아니면 지나친 방종 때문에 통제받으면서 살 것이냐 두가지 선택이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질서 모두가 가능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사무엘기상 8장은 히브리 백성들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을 기록했습니다. 본래 히브리 백성들은 오랫동안 이집트에서 바로왕의 억압을 받으며 노예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왕의 억압이 없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였을 때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고 12지파가 자율적으로 다스리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왕 대신 판사/사사들이 다스리는 시대를 사사시대라고 부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가 사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사시대는 억압이 없는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시대였고 12지파가 서로 상의하면서 나라를 운영하였기 때문에 오늘날로 말하면 지방자치시대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히브리 백성들은 자유/자치/자율을 잃어버리고 무질서하고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사무엘 선지자를 찾아가서 우리를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자유/자치/자율을 부담스러워하였습니다. 다른 나라들처럼 왕이 권력을 쥐고 나라를 통치하고 외적과 싸우고 나라를 일으키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무엘은 왕을 세우면 왕이 당신들의 아들들에게는 병거와 말을 다루는 일을 시킬 것이고 당신들의 딸들에게는 왕을 시중드는 일을 시킬 것이고 당신들의 밭과 포도원에서 나는 가장 좋은 것을 가져갈 것이고 마침내 당신들을 왕의 종으로 만들 것이라고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에 왕이 생기면 그 왕이 이집트의 바로왕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하지만 히브리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왕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도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그 왕이 우리를 이끌고 나가서 전쟁에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들처럼 왕이 통치하는 힘센 제국을 히브리 백성들이 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자유/자치/자율을 부담스러워하였고 대신에 왕이 모든 일을 다 맡아서 처리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사사기를 보면 사사시대에 히브리 백성들이 방탕하고 무질서하게 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당한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12지파가 자율적으로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어 주셨지만 그들은 그러한 자유/자치/자율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질서있는 자유가 아닌 방탕하고 부질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사무엘 선지자를 찾아가서 우리는 자유를 지킬 능력이 없으니 왕을 뽑게 해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자유와 자치와 자율 대신에 왕이 명령하는 제국의 나라를 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유를 버리고 통제받기를 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마가복음서 3장은 백성들을 정치/종교적으로 통제하려는 사람들과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려는 예수님과의 충돌을 기록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예수님이 바알세불(귀신들의 왕)에 사로잡혔고 귀신 두목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한 나라가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그 나라는 버틸 수 없다. 또 한 가정이 갈라져서 싸우면 그 가정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에 충만한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을 먹이셨고 병자를 고치셨고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사탄이라면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자유/자치/자립을 주지만 악령은 우리를 구속하고 통제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화해/일치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고 악령은 나라와 가정이 갈라져 싸우게 만듭니다. 성령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고 억압하고 통제하는 악한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하고 자립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악한 권세에게 사로잡혀 통제받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스스로 깨우치고 자립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튼튼해야 합니다. 마음이 약해지면 잘못된 권력, 잘못된 종교, 잘못된 생각이 우리를 통제하려고 할 것입니다. 저 옛날 히브리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하나님나라를 거부하고 왕의 통제를 받기 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악령을 쫓아내고 자유를 선포하셨지만 주변 사람들은 불안해하였고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가족들조차도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에도 무당을 찾아가고 부적을 붙여야만 안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모든 부적을 버리고 자유로운 삶을 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그러한 삶을 불안해 할 것입니다. 스스로 깨우치고 스스로 자립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유가 주어져도 그 자유를 부담스러워하고 다른 사람의 지시/통제를 받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종의 영이 아니라 자녀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 악령은 우리를 억압하고 통제하려고 하지만 성령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고 우리가 자립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권력/종교/생각에 통제받지 아니하고 자유/자립/자치의 백성이 되도록 우리를 깨우쳐 주십니다.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고 우리의 자립하도록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 개인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삶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를 살리는 삶, 사랑/화해/일치, 자유/자치/자립의 삶을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