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주일, 달리다와 다비다

부활절 네번째 주일/5월 두번째 주일
어버이주일, 달리다와 다비다
사도행전 9:36 – 43
정해빈 목사

 

오늘은 5월 두번째 주일/어버이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연로하신 성도님들/부모님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성경에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십계명의 다섯번째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고, 잠언서 1장 8절은 “아이들아, 아버지의 훈계를 잘 듣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말아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 된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 잘되고 오래 사는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 인생도 성공한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또 잠언서 16장 31절은 백발은 영화로운 면류관이니 의로운 길을 걸어야 그것을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시대를 가리켜서 Anti Aging 시대라고 말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노화를 방지하고 젊어질 수 있을까 노력을 많이 합니다. 건강하고 젊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이 드는 것을 피하거나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이 드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백발은 영화로운 면류관이고 의로운 길을 걸어야 그것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백발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그동안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가정을 돌보고 자녀를 키웠다는 증거입니다. 백발이 되신 분들 염색하지 마시고 백발이 영화로운 면류관이다 생각하시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시기를 빕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인데 옛날의 가정과 오늘날의 가정을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0년 전만 해도 3세대나 4세대가 함께 사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가정마다 식구가 10명이 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식구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서 요즘은 4인 가구가 제일 많고 1인 가구가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2016년 캐나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28%를 차지하고 자녀가 있는 전통적인 가구가 2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전체 가구 중에서 혼자 사는 가구가 제일 많아졌습니다. 한국도 비슷합니다. 지금은 4인 가구가 제일 많고 그 다음이 1인 가구인데 2030년이 되면 한국도 전체 가구 중에서 1인 가구가 제일 많아지게 된다고 합니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거나 배우자와 사별하고 혼자 사는 분들이 많아지다 보니까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혼자서 밥 먹는 “혼밥”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식품점을 가면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상품이 나와 있고 식당을 가면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있을 정도로 1인 가구가 요즘 유행이 되었습니다. 혼자 살면 다른 사람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좋은 점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사는 것이 항상 좋을 수는 없습니다. 살다 보면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고 가족의 보살핌을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지으실 때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1인 가구가 점점 많아지는 시대에서 교회가 영적인 가정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부모님으로 모시는 영적인 가정입니다. 우리 교회가 서로서로 돌보고 보살피는 가정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는 공생애를 사시면서 아픔이 있는 가정을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가정을 방문해서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열병을 앓고 있는 장모를 고쳐주기도 하셨고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시고 그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한 가정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모든 식구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가정의 아픔을 아시고 병자를 고치심으로 그 가정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이 가정을 항상 좋게만 보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픔이 있는 가정을 회복시켜 주셨지만 동시에 가정에 불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4절.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자기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내가 가정에 평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불화를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다보면 가정과 충돌할 수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가정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자녀나 배우자에게 집착하지 말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가정은 행복한 곳이지만 가정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2000년 전 가정은 너무도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어서 아내, 딸, 며느리 들이 고통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런 곳이 있지만 예를 들어서 부모가 딸을 강제로 시집을 보내려고 하면 딸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때로는 가정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보수적인 가치관이 충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가정이 하나님 나라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유와 평등과 사랑의 하나님 나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 가정이 더 좋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억압적인 가정이 평등한 가정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픔이 있는 가정을 치료하고 회복시켜주셨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억압적인 가정을 자유로운 가정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달리다와 다비다인데 서로 이름이 비슷합니다. L자를 T자로 바꾸면 달리다가 다비다가 됩니다. 마가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12살 된 죽은 딸을 살리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달리다 쿰,” 달리다는 소녀, 쿰은 일어나라, “소녀야 일어나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12살 된 딸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육체적인 병에 걸려서 죽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정신적인 이유 때문에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학자들 중에는 이 아이가 아버지의 지나친 과보호와 엄격함 때문에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죽었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12살이면 가장 활기차게 살아야 할 나이인데 아버지가 아이를 집 안에만 가두어 두고 너무 엄격하게 다루어서 그랬는지 하여튼 소녀가 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달리다 쿰, 소녀야, 일어나거라, 이제부터 당당하게 너의 인생을 살아가거라, 밝고 활기차게 너의 인생을 살아가거라” 말씀하시고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9장에는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리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달리다가 소녀를 가리킨다면 다비다는 중년 여인을 가리킵니다. 다비다는 예수님을 믿는 여제자였고 착한 일과 구제사업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다비다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베드로가 와보니까 과부들이 울면서 다비다가 그들에게 만들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비다가 홀로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옷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소녀를 향해서 “달리다 쿰” 말했던 것처럼, 다비다를 향해서 “다비다여 일어나시오” 말하고는 손을 내밀어서 그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소녀를 죽음에서 일으켜주셨고 베드로는 과부들을 돌보았던 여제자 중년 여인 다비다를 살려주었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능력이 예수님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제 탈북민 새가족들을 돌보셨던 네티 하프만 목사님 추모예배가 있었습니다. 추모 예배를 참석하며 오늘날의 다비다가 네티 목사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비다 이야기는 혈육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새로운 가정이 교회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비다가 홀로 사는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해 옷을 만들어 준 것처럼, 우리 교회가 1인 가구가 점점 많아지는 이 시대에 다비다처럼 어르신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영적인 가정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달리다와 다비다를 살리는 교회, 홀로되신 분들을 돌보는 교회, 어르신들을 존경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Mother’s Day, Talitha and Tabitha
Acts 9:36 – 43

Now in Joppa there was a disciple whose name was Tabitha which in Greek is Dorcas. She was devoted to good works and acts of charity. At that time she became ill and died. When they had washed her, they laid her in a room upstairs. Since Lydda was near Joppa, the disciples who heard that Peter was there, sent two men to him with the request, “Please come to us without delay.” So Peter got up and went with them and when he arrived, they took him to the room upstairs. All the widows stood beside him, weeping and showing tunics and other clothing that Dorcas had made while she was with them. Peter put all of them outside and then he knelt down and prayed. He turned to the body and said, “Tabitha, get up.” Then she opened her eyes and seeing Peter, she sat up. He gave her his hand and helped her up. Then calling the saints and widows, he showed her to be alive. This became known throughout Joppa and many believed in the Lord. Meanwhile he stayed in Joppa for some time with a certain Simon, a tanner. (Acts 9:36043)

For many people, the identity of the church has become associated with a rigid morality more focused on individual sins than on the common good. Too often the church is seen as the defender of structures of domination rather than as communities of resistance. For the early church community, however, the church was simply a community. People worshipped, sang, prayed, shared meals, and served others together in small communities. They didn’t stay in a room or a building. They went out to transform the world. Tabitha was devoted to the transformation of her community, specifically the lives of the widows and marginalized. When she is healed, Peter tells her to get up! That movement reinforces the idea of a church that is dynamic, in motion, and moving beyond its walls. Tabitha’s story reminds us that everyday individual and congregational acts of love, compassion, kindness have the power to lift people to life. It also reminds us that we are called to be the church that serves others and especially the widows and the aged peopl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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