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세계를 가진 나그네

주현절 네번째 주일 / 1월 네번째 주일
열린 세계를 가진 나그네
히브리서 11:8 – 16
정해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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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 세계 민족들 가운데서 가장 고통받는 민족을 꼽으라면 시리아 국민들과 미얀마의 로링야 사람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시리아에서는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러시아와 이란은 시아파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고 유럽과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 반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500만 명 이상이 고국을 떠나서 난민이 되었고 캐나다도 5만 명 이상을 수용했습니다. 미얀마에서는 로힝야 사람들이 난민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100여 년 전 미얀마를 식민지로 만든 영국은 미얀마 사람들에게서 쌀 농장을 빼앗아 인도와 방글라데시에 사는 로힝야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로힝야 사람들은 원래 가난한 소작인들이었는데 영국이 자기들에게 땅을 줘서 쌀 농장을 짓게 하니까 미얀마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대로 미얀마 사람들 입장에서는 영국이 자기들 땅을 빼앗아서 로힝야 사람들에게 주고 농사짓게 했으니까 미얀마 사람들이 로힝야 사람들을 좋게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영국에 분노한 미얀마 사람들은 일본군이 동남아시아로 진출하자 일본군이 영국군을 몰아내기를 기대했습니다. 미얀마와 일본이 같은 편이 되었고 로힝야와 영국이 같은 편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이런 악연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미얀마는 로힝야 사람들을 적대적으로 대하고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리아와 미얀마 사태를 보면 그들의 문제가 여러 가지로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의 가해자가 오늘날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옛날의 피해자가 오늘날의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만약 옛날에 강대국들이 약소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들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난민 문제가 이렇게 복잡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다른 민족들이 난민으로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동병상련의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 한민족도 지난 100년 전에 이와 비슷한 일들을 많이 겪었기 때문입니다. 1937년 소련의 스탈린은 한인들과 일본인들이 구별이 안 된다는 이유로 연해주에 살고 있던 17만 명의 한인들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로 이주시켜 그곳에서 살게 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도착한 한인들은 맨손으로 땅에 굴을 파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1903년에는 약 100여명의 한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1905년에는 약 1000여명의 한인들이 배를 타고 멕시코에 도착해서 외국인 노동자로 외국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농장에서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 나니 생활이 막막해졌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인들 중 290명이 1921년에 멕시코에서 배를 타고 쿠바로 건너가서 그곳 사탕수수 밭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쿠바에 가면 한인후손회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한인들이 난민과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배를 타고 해외에 나가 살기 시작했습니다. 1년 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신 이상철 목사님의 삶을 돌아보면 목사님의 삶 자체가 지난 100년 동안 한인들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를 대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한말 일제에게 농토를 빼앗긴 부모님은 두만강을 건너 시베리아로 이주하였고 이 목사님은 그곳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소련을 피해서 중국으로 이주해야만 했고 청년 시절에는 일제 징용을 피해서 집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중국 공산당을 피해서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남쪽으로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피난과 난민 생활을 시작하셨지만 목사님은 고난의 역사를 기쁨의 역사로 바꾸셨고 우리들에게 꿈과 희망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나의 땅이며 내가 뿌리내려야할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방관자와 외국인으로 살지 말고 당당한 주인이 되어서 이 땅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목사님께서는 2011년 자서전을 쓰시면서 책 제목을 “열린 세계를 가진 나그네”로 정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목사님의 두가지 삶의 자세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나그네 신앙입니다. 나그네는 머무를 땅이 없어서 떠도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정치/경제적인 이유로 나그네/유목민/난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나그네는 어쩔 수 없이 떠도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영적으로 해석하면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이 땅에서의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실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더 좋은 본향을 향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나그네는 자신의 인생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땅의 소유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고 검소하게 인생을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면 그동안 쌓아왔던 것을 다 내려놓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이 영적인 나그네입니다. 이 목사님은 주님께서 부르시면 그곳이 어디든지 달려가서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선배들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본향을 위해서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들은 성경을 통해서 수천 년 전에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1년 전 우리 곁을 떠나신 이 목사님을 통해서 영적인 나그네로 사는 삶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지를 보았습니다.

둘째로 목사님은 열린 세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사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고난을 겪으면서 자라셨기 때문에 고통받고 소외된 이웃들을 볼 때마다 그들과 함께 아파하셨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토론토에 도착한 한인 이민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때로는 사택을 개방에서 그들에게 쉼터를 제공하셨습니다. 한반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일하셨고 캐나다의 소수자들과 원주민들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소수자/이민자/유색인종으로 살다보면 우리들 스스로가 경계를 정해놓고 그 경계 안에서 살기가 쉽습니다. 소수자로 이 땅을 살다 보면 우리들의 마음이 좁아지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이 목사님은 그 경계를 넘으셨고 우리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이웃들과 소통할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다른 민족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당당하게 이 땅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약소국과 주변인으로 살아온 우리들의 경험이 이 사회에 기여할 부분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약자들과 소수자들을 경멸하고 배척하고 증오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웃을 경멸하고 배척하고 증오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키는 작으셨지만 누구보다도 큰 가슴을 가지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품으셨던 목사님이 그리워집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이 보수적이고 배타적이고 협소하고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이웃을 환영하고 포용하는 삶과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목사님은 우리들에게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큰 꿈과 유산을 물려주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목사님의 뜻을 이어받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가슴을 크게 열고, 더 나은 하나님의 나라의 본향을 향해서, 열린 세계를 가진 나그네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Wanderer of an open mind
Hebrews 11:8 – 16

By faith Abraham obeyed when he was called to set out for a place that he was to receive as an inheritance; and he set out, not knowing where he was going. By faith he stayed for a time in the land he had been promised, as in a foreign land, living in tents, as did Isaac and Jacob, who were heirs with him of the same promise… They confessed that they were strangers and foreigners on the earth, for people who speak in this way make it clear that they are seeking a homeland. If they had been thinking of the land that they had left behind, they would have had opportunity to return. But as it is, they desire a better country, that is, a heavenly one. Therefore God is not ashamed to be called their God; indeed, God has prepared a city for them. (Hebrews 11:8-9, 13-14)

During his time as Moderator from 1988 to 1990, The Very Reverend Dr. Sang Chul Lee faced many contentious issues, but he handled them with grace and compassion, urging church members to “live together, struggle together, and grow together.” Today’s United Church benefited greatly from the Rev. Lee’s leadership. As Moderator, he lifted up the voices of the isolated and oppressed, tackling issues relating to LGBTQ rights, racial equality, and Indigenous affairs. The United Church of Canada’s intercultural vision owes much to him, as he built bridges between our church and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Republic of Korea. Lee was named Rainbow Chief at the All Native Circle Conference in 1989 and from that moment became an honoured member. He said the United Church had a special role in the world. “The religious community is the one constantly supplying dreams and visions and hopes, not despair and destruction,” he once said. “Sometimes our dreams are so small. God’s dream is so much larger than ours.” – Observer, The United Church of Canada, January 30, 2017 –

We gathered here to remember our spiritual mentor and leader, the Late Very Rev. Dr. Sang Chul Lee who had passed away one year ago, whose death has sparked many of us in various ways. He has been a symbol of our church and showed us what path our church should go through his entire life. Recalling how wide, deep, and high minds he had for God and mankind, we want to cherish many spiritual heritages that he had left for us. He called himself “a wanderer of an open world.” A wanderer refers to a person who does not settle down in the past, but moves forward for God’s kingdom created by God. His life reminds us of how valuable living with God for justice and peace as God’s wanderer. He had also lived with an open heart, more exactly, “extra large size heart,” as he called himself with a sense of humor. Considering there are still many people in the world who despise, reject, and hate the weak and the minorities, we miss him who embraced all kinds of people with the love of God. I hope that our church will remember and follow his entire life who had lived with love and peace, a wanderer of an open heart.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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