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깊은 곳으로 가십시오

주현절 다섯번째 주일 / 2월 첫번째 주일
주현절, 깊은 곳으로 가십시오
이사야서 6:5-8, 누가복음서 5:4-11
정해빈목사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이라는 미국 여의사가 있었습니다. 1865년 뉴욕에서 태어난 로제타는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여성들에게 의대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퀘이커 신도들은 이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서 세계 최초로 펜실베니아 여자의과대학을 세웠고 덕분에 로제타는 의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시아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말을 들은 로제타는 의료 선교사가 되기로 다짐을 하고 1890년 25세의 나이에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로제타는 약혼자였던 캐나다 온타리오 출신 의사 윌리엄 홀과 조선 땅에서 결혼하였고 결혼하자마자 남편 윌리엄은 평양에서 진료하였고 로제타는 서울에서 진료하였습니다. 불행하게도 남편은 청일전쟁 부상자들을 치료하다가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서 결혼한 지 2년 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혼자 남은 로제타는 43년간 조선에서 활동하면서 조선 최초의 여자의학전문학교와 여성병원을 세우고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어느 날 로제타의 통역을 도와주던 선교사가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가난한 선비의 딸인 김점동이라는 여학생이 통역을 하였고 그때부터 로제타는 김점동을 딸처럼 여기며 데리고 다녔습니다. 로제타는 잠시 미국으로 귀국했을 때 김점동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서 의과대학에 입학을 시켰습니다. 김점동은 남편 성을 따라서 이름을 박에스더로 개명하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인으로는 서재필 다음 두번째, 한인 여성으로는 최초의 의사가 되었습니다. 박에스더는 의사 자격증을 따자마자 조선으로 돌아가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면서 매년 3천 건 이상을 진료했습니다. 당시 조선 여성들은 남자 의사를 만나는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김점동이 의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여성들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주술이나 부적에 의존하던 여성들에게 위생교육을 시켰습니다. 하지만 박에스더는 너무 무리를 해서 그런지 10년 동안 진료를 하다가 결핵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로제타는 젊은 시절에는 남편을 잃었고 나중에는 딸 같은 박에스더을 잃었습니다.

박에스더와 로제타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로제타는 남편이 죽기 전에 조선에서 셔우드 홀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셔우드는 조선에서 태어난 첫번째 서양 사람이 되었습니다. 셔우드는 아버지가 살았던 캐나다 토론토로 유학와서 토론토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된 후에 자신이 태어났고 어머니가 있는 조선으로 돌아가서 어머니와 함께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셔우드는 박에스더를 누나처럼 따랐는데 박에스더가 조선에서 10년간 진료하다가 결핵으로 죽은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셔우드는 조선에 결핵병원을 세웠고 결핵퇴치비용을 모금하기 위해서 우표처럼 생긴 크리스마스 실(christmas seal)을 판매했습니다. 아버지 윌리엄, 어머니 로제타, 아들 셔우드, 박에스더 의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줍니다. 그들은 평생 고통받는 조선 백성들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어부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입니다. 2020년부터 코로나 방역을 지휘하고 있는데 3년째 일을 하다보니 머리가 하얗게 되었습니다. 100년 전에 박에스더 의사가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정은경 의사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덕분에 한국이 코로나에 잘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4개의 복음서가 모두 기록할 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갈릴리 호숫가에 계신 예수님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시몬의 배에 오르셔서 배 위에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후에 그물을 씻고 있는 시몬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어부였기 때문에 고기 잡는 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기를 잡으려면 적당히 얕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너무 깊은 곳에는 고기가 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메시지입니다. 풍성한 인생,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너의 인생의 그물을 깊은 곳에 내리라는 말씀입니다. 찬송가 302장을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왜 너 인생은 언제나 거기서 저 큰 바다 물결 보고 그 밑 모르는 깊은 바다 속을 한번 헤아려 안 보나.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보고 맘이 조려서 못 가네”

얕은 물가에서 사소한 일에 시간을 보내지 말고 더 넓고 깊은 세계로 나가라는 말입니다. 영어 표현 중에 Red Ocean, Blue Ocea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붉은 바다는 서로가 싸우고 경쟁하는 좁은 세상을 가리키고 푸른 바다는 서로 싸울 필요가 없는 넓은 세상을 가리킵니다. 사소한 일로 다투는 붉은 바다, 좁은 바다에서 살지 말고 넓고 깊은 푸른 바다에서 살라는 말입니다.

언젠가 TV를 보다가 어느 시장에서 음식을 잘 만드는 가게가 소문이 나니까 바로 옆에 똑같은 음식을 파는 가게가 문을 열어서 두 가게가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쪽 집이 A를 잘 만들고 저쪽 집이 B를 잘 만들면 손님들이 A도 사고 B도 살 것이고 그러면 모두가 행복할 것입니다. 남들 잘하는 것에 뛰어들어서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을 하면 그곳이 붉은 바다이고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개발하고 개척하면 그곳이 푸른 바다입니다. 애플 회사를 세운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처음 시작할 때 펩시콜라 사장에게 우리 회사로 와서 일하지 않겠냐고 말했더니 사장이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가 “남은 인생 설탕물을 팔면서 살 겁니까?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꾸실 겁니까?” 이렇게 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펩시콜라 사장 입장에서는 돈과 명성을 얻었으니 회사를 옮길 이유가 없었습니다. 콜라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스티브 잡스의 말을 듣고 신생회사로 옮겼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은 남은 인생 좀 더 의미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말씀하셨는데 여기 나오는 “낚는다”는 말은 헬라어로 “조그레오”를 가리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을 위험으로부터 구하여 살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제부터는 사람을 죽음에서 건지는 어부, 사람을 살리는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박에스더처럼 사람을 살리는 유명한 의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꼭 유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얕은 물가에서 사소한 일에 신경쓰며 살지 말고 깊은 세계로 들어가서 주님을 만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어부들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이전에 관심 가졌던 사소한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인생을 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주님 앞에 엎드려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이사야서 6장에서 베드로와 똑같이 말을 했습니다.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베드로와 이사야와 똑같은 감정을 갖게 됩니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실패자입니다. 나는 부정한 사람입니다. 나는 그냥 이대로 살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깊이있고 의미있는 인생을 살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고 여러번 실패했고 세상적으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소명을 주십니다. 우리 인생이 헛된 것에 시간을 낭비하는 인생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는 깊은 인생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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