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하늘의 빛과 땅의 고난

주현절 여섯번째 주일 / 2월 두번째 주일
열왕기하 2:8-12, 마가복음서 9:2-9
주현절, 하늘의 빛과 땅의 고난
정해빈 목사

 

오늘은 2021년 주현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주현절(主顯節, Epiphany, 주님이 나타난 날)은 글자 그대로 주님의 빛이 이 땅에 나타난 날을 가리킵니다. 주님의 빛이 이 땅에 나타났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으로 밝은 빛 속에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자연적인 햇빛도 필요하고 영적인 햇빛도 필요합니다. 빛이 없는 캄캄한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 갇혀있다고 생각하면 생각 만해도 끔찍합니다. 빛이 있어야 어둠과 병균이 물러가고 빛이 있어야 열이 나옵니다. 빛이 없으면 우리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습니다. 어느 종교에나 빛을 기념하는 절기가 있습니다. 유대교는 12월에 하누카(Hannjkkah), 힌두교는 10월에 디왈리(Diwali) 빛의 축제를 기념합니다. 세계 기독교를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나눌 수 있는데 서방교회(Western Church)는 카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하여 주로 서쪽 지역에 퍼져있고 동방교회(Eastern Church)는 그리스/러시아/동유럽에 퍼져 있습니다. 서방교회는 아기 예수님이 동방박사들을 만나면서부터 예수님의 빛이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동방교회는 예수님이 성인이 되어 세례를 받으면서부터 예수님의 빛이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대략 1월 6일부터 2월까지 주현절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빛을 주기 원하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땅이 혼돈하고 흑암이 가득할 때 “빛이 있어라” 말씀으로써 세상을 밝게 창조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때가 되었을 때 예수께서는 어둠의 땅 갈릴리에 오셔서 빛을 비추시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고 가난한 자를 먹이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악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주님께서 빛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이 세상이 어둡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으면서도 절망하지 않는 것은 주님께서 구원의 빛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주현절을 마감하며 저 하늘의 밝고 따뜻한 햇살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밝은 빛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마가복음 9장을 보면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을 때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가복음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1장부터 8장까지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기록되어 있고 9장부터 16장까지는 예수님의 고난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가복음 9장부터 예수님의 고난이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마무리하신 후에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얼굴이 해 같이 빛나는 체험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가리킵니다. 앞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가실 예수님에게는 하늘의 영광과 축복과 격려가 필요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여주신 신실하신 삶,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신실하신 삶을 인정하고 축복하는 의미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빛나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예언자를 대표하는 엘리야를 만나셨습니다. 모세가 예수님에게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마찬가지로 예언자를 대표하는 엘리야가 예수님에게 나타났다는 것은 예수님이 예언자의 완성이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높은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셨을 뿐만 아니라 믿음의 조상들을 또한 만나셨습니다. 누구든지 인생의 무거운 짐을 혼자서 지고 갈 수 없습니다. 하늘의 격려가 필요하고 믿음의 조상들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가실 예수님을 축복해 주셨고 과거에 이미 고난을 받았고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도 역시 예수님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축복과 조상들의 축복을 받으시고 영적인 힘을 얻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장면을 보고 너무 황홀해서 산 정상에 초막을 짓자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말은 산 위의 영광/번영/축복만을 원하는 우리들의 나약하고 이기적인 신앙을 가리킵니다. 산 위의 영광이 아무리 좋아도 산 위에서 계속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산 위에서 산 아래로 내려와야 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자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늘의 영광은 땅의 고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높은 산에서 하늘의 능력을 받으시고 하산하셔서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개인의 영광으로 누려서는 안 되고 땅에서 고난받는 이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장면은 마치 우리가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받고 있을 때, 일제 강점기 때 고난 받았던 조상들과 해방과 전쟁을 겪었던 조상들이 우리에게 나타나 우리를 격려하는 장면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보다 더 큰 고난을 받았던 우리의 조상들이 꿈에 나타나서 지금의 고난을 잘 견디라고 격려한다면 우리는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얼굴이 해 같이 빛나는 체험과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체험을 통해서 고난을 견딜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열왕기하 2장은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할 때 제자 엘리사가 스승의 능력을 계승하는 장면을 기록했습니다. 엘리사는 하늘로 떠나는 스승을 붙잡고 세상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갑절의 능력을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살았던 북이스라엘은 아합 왕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바알종교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스승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하니 홀로 남은 엘리사에게는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독재자와 우상과 싸울 수 있는 갑절의 능력을 물려달라고 스승에게 요구하였습니다. 구약성경을 자세히 보면 모세와 엘리야 사이에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원전 1,200년대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바로 왕과 대결하며 히브리 백성들을 노예에서 해방시켰고,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만들었고, 요단강 근처에서 생을 마감하였고, 지금까지 그의 무덤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원전 800년대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북이스라엘의 독재자 아합과 대결하였고, 엘리사를 후계자로 만들었고, 요단강에서 생을 마감하였고, 무덤없이 하늘로 승천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독재자/우상과 대결하였고, 기적을 일으켰고, 야훼 하나님의 뜻을 히브리 백성들에게 가르쳤고, 자신의 뜻을 이어갈 후계자를 키웠고, 무덤이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모세/엘리야처럼 악과 대결하셨고, 기적을 일으키셨고, 높은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셨고, 제자들을 가르치셨고, 무덤이 없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은 고난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산 위에서 얼굴이 해 같이 빛나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산 아래 어둠 속에서 고난받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에게 하늘의 빛을 비추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산 위에서 영광만 받으려고 하는 이기적이고 기복적인 신앙 때문에 기독교가 신뢰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 아래로 내려가시는데 기독교는 자꾸 영광만 받으려고 하고 자꾸 높아지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빛을 산 아래로 가지고 내려가서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현절을 마무리하며 하늘의 빛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날씨가 추운 겨울철을 지내면서 밝은 햇살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우리는 매일 실감하고 있습니다. 밝은 햇살을 쬐면 어두운 생각이 물러가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밝아집니다. 예수님은 높은 산에서 얼굴이 해같이 빛나는 영광을 받으셨기 때문에 산 아래의 고난을 견디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빛/영광/은혜/사랑을 받은 사람은 땅의 고난을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의 빛을 받으면 고난을 견딜 수 있습니다. 하늘의 빛을 받으면 어둠이 물러갑니다. 이 땅의 고난이 깊으면 깊을수록 좌절하지 말고 하늘의 빛을 받아서 그 빛의 능력으로 고난을 극복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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