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종교의 교만을 멀리하라

창조절 아홉번째 주일 / 10월 네번째 주일
창조절, 종교의 교만을 멀리하라
누가복음 18:9 – 14
정해빈 목사

 

우리는 요즘 성서일과를 따라서 누가복음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마태/마가/누가/요한 4개의 복음서가 있는데 4개의 복음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더 깊고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치 밥을 먹을 때 한가지 반찬만 있는 것이 아니라 4가지 반찬이 있으면 식사를 더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4개의 복음서는 우리의 신앙을 더 넓고 깊고 풍성하게 해 줍니다. 마태복음에는 마태복음이 강조하는 깊은 메시지가 있고 마가복음에는 마가복음이 강조하는 깊은 메시지가 있고 요한복음에는 요한복음이 강조하는 깊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사랑하시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반대로 정치/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꾸짖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물질을 나누지 않는 부자의 탐욕을 꾸짖고 불의를 고발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강조하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들 가운데서는 누가복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가장 유명한 2가지 비유를 말하라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탕자의 비유를 말할 수 있는데 이 비유는 오직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도 누가복음에만 나오고 삭개오 이야기도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우리는 아는 유명한 이야기가 오직 누가복음에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를 사랑하셨고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종교지도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누가복음은 나의 신앙을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누가복음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신앙이 어디에 와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지난 주일에 억울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평생을 침묵하면서 살아야 했던 억울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을 끈질기게 찾아가서 재판관을 굴복시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이 악을 이긴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지만 자비로우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때 악을 이길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말씀도 지난 주일과 마찬가지로 두명의 대조적인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경건한” 바리새인이고 또 한사람은 세금을 걷는 “죄인” 세리입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 와서 기도를 했는데 바리새인은 자신이 세리와 같지 않고 경건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남의 것을 빼앗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더구나 이 세리와 같지 않습니다. 나는 이레와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말 자체가 “분리된 자, 구별된 자”를 가리킵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자신들도 거룩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거룩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나쁜 짓을 하지 않았고 열심히 금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전에 당당하게 나와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세리는 자신이 로마제국을 대신해서 세금을 걷는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세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세리가 의롭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바리새파 사람은 한평생 경건하게 살았고 자신의 종교적 의무를 다했습니다. 칭찬을 받는다면 이 사람이 받아야 합니다. 이 사람의 신앙에 어떤 문제점이 있기에 이 사람은 의롭다고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이 “참여”하는 삶을 살기 원하시는데 바리새파 사람은 “분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만약 바리새파 사람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더라면 그는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로마 식민지 아래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해 주십시오.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저 세리처럼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세금을 걷어야 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제가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깨달음을 주십시오.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더라면 그는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옆에 있는 세리를 멸시했습니다. 자신이 저렇게 더러운 것들과 다르다는 것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리새파의 이기적/개인주의적인 기도를 받지 않으시고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세금을 걷으면서 괴로워하는 세리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만 깨끗한 것을 자랑하는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역사 앞에서 괴로워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잠시 한눈을 팔면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을 갖기가 쉽습니다. 이웃을 혐오하고 자기를 자랑하기가 쉽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이웃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집단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한국 개신교입니다. 한국 뉴스를 보면 개신교 일부 목사들이 앞장서서 “난민을 몰아내자, 이슬람 신자를 몰아내자, 동성애자를 몰아내자”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대략 200만명 정도 됩니다. 3D 업종, 가장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그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이슬람교 신자도 있을 것이고 난민 신청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해야지 나와 종교와 사상이 다르다고 해서 혐오하고 배척하면 안 됩니다. 일반 단체도 그런 주장을 하면 안 되지만 하지만 교회는 더더욱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는 “죽이자, 물리치자, 쫓아내자”가 아니라 사랑하자는 목소리가 나와야 합니다. 교회는 혐오/증오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하는 곳입니다. 사랑을 외쳐야 하는 교회에서 혐오/배제/증오가 넘치고 있습니다. 참으로 슬프게도 한국 기독교가 바리새파 신앙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오늘이 종교개혁 502주년 기념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에 의해서 종교개혁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말씀이 종교개혁 정신인데 이 종교개혁 정신을 한마디로 말하면 오늘 말씀처럼 자기 의를 자랑하고 이웃을 혐오/배척하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세리와 같은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참다운 기독교 신앙은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리되는 삶을 살지 않고 갈릴리 마을 속으로 들어가셔서 병자와 귀신들린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나 혼자 만의 경건을 추구하는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이 아프고 병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을 일으켜 주는 신앙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하나님, 나는 저 더러운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나는 거룩합니다.” 이렇게 말하기 보다는 “하나님, 몸과 마음이 아프고 병든 사람들을 구원해 주십시오. 제가 그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살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신앙이 참된 신앙입니다. 종교의 교만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이웃 속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Creation, stay away from religious pride
Luke 18:9-14

He also told this parable to some who trusted in themselves that they were righteous and regarded others with contempt. “Two men went up to the temple to pray, one a Pharisee and the other a tax collector. The Pharisee, standing by himself, was praying thus,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other people: thieves, rogues, adulterers, or even like this tax collector. I fast twice a week. I give a tenth of all my income.’ But the tax collector, standing far off, would not even look up to heaven, but was beating his breast and saying, ‘God, be merciful to me, a sinner!’ I tell you, this man went down to his home justified rather than the other; for all who exalt themselves will be humbled, but all who humble themselves will be exalted.” (Luke 18:9-14)

In the Gospel of Luke, we can find Jesus criticizing the Pharisees, calling them not only money lovers but adulterers and hypocrites, too. On the contrary, Jesus ate dinner with prostitutes, tax-collectors, people with leprosy, and so-called sinners. The Pharisee seems to think that God lives right inside him, praising his works and his own goodness. Actually, there isn’t much need for God to do anything in the life of this Pharisee except to agree with him. And yet Jesus once again uses an unexpected illustration to teach his audience a lesson. The tax-collector pours out his heart and buries himself so deeply into the voicing of his deepest anguish, his most profound awareness of his own weakness and failures, that he apparently never notices the Pharisee. He flings himself on the mercies of God and depends on God to do something remarkable in his life. There are so many reversals in the Gospel of Luke that perhaps we shouldn’t be surprised that this hated collaborator goes home justified while the observant religious type doesn’t. In commemoration of the 502nd anniversary of the Reformation, today’s scripture reminds us that the spirit of Reformation is not boasting of self-righteousness and holiness but seeking God’s mercy. According to Luke, the Pharisee boasted of his godliness and religious duties, separated himself from his neighbors, and hated the tax collector. In contrast, the tax collector acknowledged his weakness, repented of his sins, and begged God’s mercy. Today’s scripture teaches us that true Christian faith is not in “separation,” but in “participation.” For example, Jesus entered Galilee village to meet the sick and the poor. Jesus did not separate them from Him but became one with them and healed them. It reminds us that our faith must be based not only on God’s grace and mercy but also on solidarity with our suffering neighbors. Truly we are called to live with those who seek God’s mercy, not with the Pharisees who boast of their own godliness.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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