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해치거나 상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창조절 네번째 주일 / 9월 네번째 주일
이사야서 65:17 – 25
창조절, 해치거나 상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정해빈목사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월요일 미국 뉴욕 UN 총회에서 연설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연설의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존재입니다. 인류는 공동체를 통한 집단 지성과 상호 부조에 기대어 수많은 감염병을 이겨내며 공존해 왔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역시 인류애와 연대의식으로 극복해낼 것이며 유엔이 그 중심에 설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 대응을 위해 국경을 초월해 유전체 정보를 공유하고 긴밀한 협업을 통해 백신 개발에 성공했으며 치료제 개발도 빠른 진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코로나를 이기는 것은 경계를 허무는 일입니다. 우리의 삶과 생각의 영역이 마을에서 나라로, 나라에서 지구 전체로 확장되었습니다. 나는 이것을 ‘지구공동체 시대’의 탄생이라 생각합니다. ‘지구공동체 시대’는 서로를 포용하며 협력하는 시대입니다. 함께 지혜를 모으고 행동하는 시대입니다. 지금까지는 경제 발전에 앞선 나라, 힘에서 우위를 가진 나라가 세계를 이끌었지만 이제 모든 나라가 최선의 목표와 방법으로 보조를 맞추어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코로나를 이기는 것은 경계를 허무는 일입니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연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인류는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경계를 허물고 서로 지혜를 모아서 어려움을 극복해 왔습니다. 이번 코로나 감염병도 제약회사들은 제약회사들대로 노력하고 의료진들은 의료진들대로 노력하고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방역에 협조하고 각 국가들은 국가들끼리 서로 협력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은 있었지만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유엔(UN)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국제기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이제는 정말로 지구공동체 시대가 되었습니다. 옛날 정보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먼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쪽에서 전염병이 발생해도 그 지역에 머물거나 이쪽으로 확산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옛날 냉전시대에는 서로 대립하면서 국가들끼리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빠르게 왕래하는 시대가 되었고 지구가 하나의 마을처럼 좁아졌습니다. 저쪽 나라에 문제가 생기면 이쪽 나라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이제는 지구촌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노력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코로나 감염병이 우리가 서로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촌이 걸어가야 할 길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전세계의 백신 보급률이 극과 극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기사가 최근 신문에 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캐나다는 전체 인구의 70%, 영국은 66%, 독일은 63%, 미국은 55%가 12차 주사를 맞았는데 가난한 나라들은 1.9%만 주사를 맞았습니다. 미국 인구의 55%만 주사를 맞은 것은 백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부러 주사를 안 맞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선진국 국민들은 맞으라고 해도 안 맞는데 가난한 국가의 국민들은 맞고 싶어도 백신이 없어서 맞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 1천달러 이하 저소득국가의 백신 접종률이 1.9%입니다. 세계보건기구가 백신격차를 해소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선진국 국가들이 백신이 부족하다며 수출을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백신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백신이 남아도는데도 백신을 맞지 않고 수출을 안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구촌이 하나의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65장에서 서로 해치거나 상하는 일이 없는 새로운 세상, 새하늘과 새땅을 예언하였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말씀이 이사야서 65장과 요한계시록 21장, 이렇게 두 번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전쟁도 없고 폭력도 없고 질병도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사야가 노래한 하나님 나라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하고 소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제국처럼 강대국이 되어서 세상을 호령하면 좋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가 소망하는 꿈은 너무도 평범합니다. 예를 들면 집을 지은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집에 들어가 살고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자기가 기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을 보면 히브리 백성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억압과 수탈을 당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지은 집을 다른 사람이 빼앗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농사지은 것을 다른 사람이 빼앗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사야는 바벨론제국이 쳐들어와서 힘없는 백성들을 죽이고 포로로 끌고가고 집을 빼앗고 농사지은 것을 빼앗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죽었고 노인들도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나라를 잃고 제국의 침략을 받아서 모든 것을 빼앗겨 본 사람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음력 8월 한가위 같으면 좋겠다고 노래한 것처럼, 이사야 선지자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기가 농사지어서 자기 집에서 살면 좋겠다, 서로 빼앗고 해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노래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이 땅을 치료하셔서 백 살에 죽은 사람을 젊은이라고 말할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나무처럼 오래 건강하게 살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먹으며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이로 삼을 것이다.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이 말씀처럼 진실로 우리들은 주님의 거룩한 산, 주님께서 지으신 세상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기독교 신앙이 창조신앙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매주일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창조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희망을 잃고 절망 중에 살아가는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저 옛날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앞으로도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창조신앙과 구원신앙이라는 두 개의 뿌리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쉬지 않고 창조의 완성, 세상의 완성을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신앙이 창조신앙이고 하나님께서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는 신앙이 구원신앙입니다. 이사야 65장은 창조신앙과 구원신앙을 너무도 아름답게 고백하였습니다. “보아라, 내가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새롭고 놀라운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지기를 우리는 고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이 유언에서 연설한 것처럼 남북한과 주변 4개 나라가 합의해서 전쟁을 잠시 휴전하는 휴전협정이 아니라 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종전협정이 맺어지기를 우리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먹으려면 이리가 변해야 하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려면 사자가 변해야 하고 뱀이 사람을 물지 않고 흙을 먹이로 삼으려면 뱀이 변해야 합니다. 강자가 먼저 변해야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없는 그런 세상이 올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각자도생(各自圖生),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상이 되면 이리는 양을 잡아먹게 되고 양들은 양들끼리 서로 싸우는 세상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런 세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큰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큰일을 할 수는 없지만 새하늘과 새땅을 우리 신앙의 중심에 놓고 날마다 묵상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고난 가운데서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선포하고 예언하였던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새하늘 새땅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우리들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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