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믿음의 조상들이 걸어간 길

성령강림절 후 열번째 주일 / 8월 세번째 주일
광복절, 믿음의 조상들이 걸어간 길
히브리서 11:32 – 40
정해빈 목사

 

오늘은 8월 세번째 주일, 8.15 해방 광복절 74주년 감사예배로 드리는 날입니다. 요즘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계속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제철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4명이 기업을 대상으로 불법강제징용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4명중에 3명은 돌아가셨고 1명만 살아계십니다. 피해자들은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보상은 합법적으로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고 배상은 불법적인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피해자들은 밀린 임금이나 보상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불법으로 끌고 가서 노동을 시킨 불법을 배상하라고 요구했습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이 재판은 10년을 끌어오다 지난 2018년 10월 대법원에 의해 최종 결정이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일본이 1965년 한일협정을 맺을 때도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그때 일본이 한국에 보상한 것은 국가와 국가 사이에 보상한 것이고 따라서 일본 국가권력이 개입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한일협정으로 해결될 수 없고 피해를 본 개인이 회사를 향해서 위자료/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일본 전범기업을 향해서 아직 살아있는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일본 아베 정부가 반도체 부품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수출우대정책을 폐지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사과했지만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단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었습니다. “피해를 줘서 미안하지만 한일병합이 불법은 아니었다, 피해를 줘서 미안하지만 위안부 여성들이 불법이 아니었다. 피해를 줘서 미안하지만 강제징용이 불법은 아니었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웃나라와 관계가 좋으려면 서로 침략하지 않고 존중하면서 살면 됩니다. 서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프랑스와 독일이 원수처럼 지냈지만 지금 평화스럽게 사는 것은 독일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철저하게 사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역사를 보면 고려시대부터 가을에 추수할 때쯤 되면 왜구들이 쳐들어와서 노략질을 일삼았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일본에 쳐들어가서 일본여성들을 위안부로 끌고 간 적도 없었고 일본청년들을 군대/징용으로 끌고 간 적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침략하지 않았는데 일본은 틈만 나면 한반도에 쳐들어와서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일본은 옛날부터 나라가 힘들면 이웃나라를 공격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일본은 세계에서 국가부채가 제일 많을 뿐만 아니라 30년째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노인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도 일본이고 젊은이들이 결혼/취업 안하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2011년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이 터져서 그쪽 지역은 지금도 접근할 수가 없고 방사능이 없어지려면 300년이 지나야 합니다. 이렇게 나라사정은 안 좋은데 한국이 자꾸 따라오니까 한국에 경제전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일본에서 만든 제품이 최고로 좋았지만 지금은 핸드폰/TV/냉장고/반도체/조선/철강을 한국이 더 잘 만듭니다. 일인당 국민소득으로 보면 한국과 일본 사이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여러분, 한국사람들이 더 친절할까요 아니면 일본사람들이 더 친절할까요? 한국사람들이 더 친절합니다. 한국사람들이 일본사람들을 더 좋아할까요 아니면 일본사람들이 한국사람들을 더 좋아할까요? 한국사람들이 일본사람들을 더 좋아합니다. 한국사람들이 일 년에 일본을 750만명 방문하고 중국사람들이 800만 명 방문합니다. 중국인구가 14억이니까 0.5%가 일본을 방문한다면 한국은 인구가 5000만 명이니까 15%가 매년 일본을 방문합니다. 인구대비로 일본을 가장 많이 방문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일본 대형서점에 가면 한국을 혐오하는 혐한 서적들이 비치된 코너가 따로 있고 일본 시내에서는 트럭에 마이크를 달고 한인/조센징은 한국으로 떠나라고 외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일본 TV를 켜면 한국을 조롱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서울 서점에서는 일본을 혐오하는 코너도 없고 트럭에 마이크를 달고 일본인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없고 TV에서 일본을 조롱하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한국사람들이 훨씬 더 수준높고 점잖고 친절합니다. 물론 일본사람들 중에는 양심적이고 친절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런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을 통치하는 아베 정권이 군국주의/제국주의를 부활시키려고 시도한다는데 있습니다. 일본이 그런 식으로 하면 절대로 동아시아에서 존경받을 수 없고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베 정권에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본사람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로 돌아가려고 하는 일본정부를 반대합니다. 어느 나라이든지 다른 나라를 괴롭히고 침략하려고 하는 제국주의를 우리는 반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위해서 일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11장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일한 믿음의 조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예언자들. 그들은 각각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와 생명과 사랑을 위해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방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기 때문에 고난과 죽음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 중에는 적절한 보상과 대가를 받지 못하고 인생을 마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39절.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의를 위해서 살다가 억울하게 고난받고 죽임당했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완전한 상급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 상급은 하나님 나라일 수도 있고 부활일 수도 있습니다. 더 중요한 말씀은 40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두셔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행한 의로운 삶을 우리가 완성시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없이는 그들의 노력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에게는 믿음의 선배들이 피 흘리면서 실천한 정의와 생명과 평화를 완성시켜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성경은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 앞에 있다고 말했는데 성경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에도 독립운동에 헌신한 많은 증인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한국은 옛날부터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지만 부당한 억압과 침략이 있을 때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 민족이라는 것을 제국주의자들에게 깨우쳐 주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국을 꿈꾸는 나라를 망하게 하셨습니다. 이집트제국도 망했고 바벨론제국도 망했고 로마제국도 망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던 믿음의 선배들, 바른 삶을 보여주었던 믿음의 조상들을 따라가며 이 땅을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Korean Independence Day, our ancestors of faith
Hebrews 11:32 – 40

And what more should I say? For time would fail me to tell of Gideon, Barak, Samson, Jephthah, of David and Samuel and the prophets who through faith conquered kingdoms, administered justice, obtained promises, shut the mouths of lions, quenched raging fire, escaped the edge of the sword, won strength out of weakness, became mighty in war, put foreign armies to flight. Women received their dead by resurrection. Others were tortured, refusing to accept release, in order to obtain a better resurrection. Others suffered mocking and flogging, and even chains and imprisonment. They were stoned to death, they were sawn in two, they were killed by the sword; they went about in skins of sheep and goats, destitute, persecuted, tormented of whom the world was not worthy. They wandered in deserts and mountains, and in caves and holes in the ground. Yet all these, though they were commended for their faith, did not receive what was promised, since God had provided something better so that they would not, apart from us, be made perfect. (Hebrews 11:32 – 40)

Celebrating 8.15 the 74th anniversary of Korean Independence Day, we thank God for giving us freedom and liberating us from the Japanese Imperialism. We can not forget the historical fact that our homeland had suffered from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for 35 years during World War II. Yet we do not hate Japanese people but oppose Japanese imperialism, which had oppressed and ruled over Korea illegally. We strongly urge that the Japanese Shinzo Abe government must acknowledge, apologize, and reimburse past illegal controls, and stop trying to return to wrong past history. At the same time, we commemorate the dedication of our ancestors of faith who had fought against imperialism and had prayed for the independence of the Korean Peninsula. Today’s reading reminds us that “by faith” God’s people did some amazing things. They escaped slavery in Egypt, entered the promised land, and fought for the justice of God. The mere mention of the list of names shows that these people are given as excellent examples of faith. Yet often this is not without a price. People suffered, but they had kept the faith. On the contrary, many of those who are commended for their faith did not receive what is promised. But the example for us is not in the receiving but in the persevering. It is because we are part of a long lineage of faithful people – a veritable cloud of witnesses – that we can dare to move forward. As the metaphor of the race implies, choosing faithfulness is neither easy nor passive. It can be demanding and often requires change and growth. Truly we are called to practice God’s justice, peace, and love, following the ancestors of faith.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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