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두세 사람이라도 모인 곳에는 / 서동천 목사

창조절 첫번째 주일/ 9월 두번째 주일
단 두세 사람이라도 모인 곳에는
마태복음 18:15-20. 로마서 13:8-14
서동천 목사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함께 모이는 공동체인데, 이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르지요. 구성원들은 각자 독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상호 의존적입니다. 그래서 각 구성원은 다른 구성원들이 없으면 완전해질 수가 없지요. 그리고 한 사람의 아픔은 모두에게 같은 아픔이되고, 한사람이 기쁨을 누리게되면, 역시 모두가 함께 기뻐하게되지요. 만일에 구성원 몇 사람 사이에 일치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다른 모든 구성원들도 불일치나 조화가 깨어지는 결과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각 구성원의 존재와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아무도 자신이 남들보다 높거나 강한 위치에 있다고 할수가 없는것이죠.

마태복음 18:10-14에 보면, 잃은 양 한마리의 비유가 있습니다. 양 백마리 가운데 길잃고 헤매는 한마리 양을 찾는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하나도 잃는것을 원치않으신다는 것을 강조하지요.

오늘 마태복음 본문은, 우리중에 혹시 잘못한 사람이 있을때에 그런 사람을 정죄하는 대신에 그가 올바른 길이 무엇임을 깨닫고, 원래 구성원으로의 역활을 유지하게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벌을 주는 대신에 치유, 화해, 그리고 회복의 기회를 함께 가지면서 그 사람을 다시 얻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설명해줍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은 어떤것들일까요?
-사람들에 대한 실망?
-이런 저런 일들과 구성원들 때문에 상처받는 느낌?
-체면 상실?
-이렇게 저렇게 실수하는 일들?
-남들의 의견이나 모임에서 결정된 사항에 대해 동의 할수 없어서 교회를 떠나는 분들?

우리가 함께 교회 생활하거나 여러사람이 같이 살아갈 때에 직면하게되는 갈등들은 있을수 밖에 없고 피할수 없을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그런 갈등에 대한 해결점이나 다른 가능성을 찾도록 노력하는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믿는 사람들로서 해야할 일은,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어떻게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함께 생각을 나누면서 같이 해결하려고 노력하는가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하는 사람을 용서하여주는것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도 용서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남들이 잘못한다고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말이죠. 항상 사랑으로 남들을 대하고 연결점을 찾으려고 애써야 하지요. 깨어진 것이 은혜로 회복되기를 위해 노력해야지요.

어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묘사를 다음과 같이 했습니다.
– 제 6일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만들었죠.
– 제 7일에, 하나님이 쉬고 계신데, 그들이 자기들의 생일을 축하할만한 특별한 어떤것을 주실수있는가고 묻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귀중한것들을 넣어두는 상자를 열어 소중한 동전 하나를 꺼내서 주셨는데, 거기에는 “사랑”이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 제 8일에,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어서 에덴동산을 떠나게 되었는데, 떠나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보증을 해주십사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이미 동전을 갖고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셨어요.
– “그러나 그 동전에는 ‘사랑’이라고만 새겨져있는데, 우리는 이미 사랑을 잃어버렸잖아요. 어떻게 다시 사랑을 찾을 수 있나요?”
– “ 그 동전을 뒤집어 보아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죠. 그 뒷면을 보니 “용서”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용서없이 사랑이 있을수 없고, 사랑이 없으면 용서가 있을수 없다는 말입니다. 용서와 사랑은 같은 동전의 양면인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말하기를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 즉, 빚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빚이라고.

어느 팔레스타인의 한 의사가 팔레스타인 지역에 속한 가자에 살면서도 이스라엘병원들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특히 중동지역 여성들의 공중건강과 교육의 향상이 필요함을 직시했습니다. 그는 팔레스타인 지역과 이스라엘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2009년 어느날 이스라엘 군인들이 가자지역을 습격하면서 쏜 총탄에 맞아 그의 세 딸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세 딸들을 동시에 잃어버린 그 아버지는 복수와 증오 대신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 내 딸들의 죽음이 마지막 죽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양쪽 지역의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하자고 촉구했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평화를 이루는 길에 나의 세 딸들의 죽음이 마지막 희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습니다. 용서와 화해를 위한 그의 헌신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심정과 호소를 “I shall not hate” (나는 증오하지 않겠다)이라는 그의 책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신앙과 삶을 이해하면서 또한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강조합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남에게 해야할 의무를 다하라. 그러나 아무리해도 다할수없는 의무가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의무 곧 사랑의 빚이라고.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공동체를 세웁니다. 제자직의 기본요소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가 하는 모든 질문에 답을 줍니다. 또한 용서는 계산해서 따질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남을 용서 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발견하고 체험해보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아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과 함께 하겠다”고 하십니다. 두 사람이라도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구하면 그가 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의 사랑을 위해, 서로의 용서를 위해 우리 함께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삶을 계속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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