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아낌없이 주는 나무

사순절 다섯번째 주일 / 4월 첫번째 주일
사순절, 아낌없이 주는 나무
요한복음 12:3-8, 빌립보서 3:5-10
정해빈목사

 

1964년 쉘 실버스타인이 쓴 [아낌없이 주는 나무, The Giving Tree] 라는 유명한 그림책이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소년과 소년이 아끼는 사과나무가 있었습니다. 소년은 나무 그늘 밑에서 그네를 타고 책을 읽고 사과를 따먹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청소년이 된 소년은 가끔 나무를 찾아와서 지금 자신에게는 돈이 필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나무는 자신의 사과를 가져가서 팔라고 말했고 소년은 사과를 팔아서 돈을 벌었습니다. 청년이 된 소년은 이번에는 집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나무는 나뭇가지로 집을 지으라고 말했고 청년은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집을 지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중년이 된 소년은 지금 마음이 슬퍼서 배를 타고 먼 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나무는 나무줄기를 파서 배를 만들라고 말했고 중년이 된 소년은 나무줄기를 파서 배를 만들어서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먼 곳으로 떠난 소년은 노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노인이 나무를 찾아가니 나무는 그루터기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는 나에게 와서 앉으라고 말했고 노인은 그루터기에 앉아서 쉼을 얻었습니다. 나무는 돈이 필요할 때 열매를 주었고 집이 필요할 때 가지를 주었고 배가 필요할 때 줄기를 주었고 쉼이 필요할 때 그루터기를 주었습니다. 소년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사과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겨울을 지난 나무들이 새봄을 준비하는 것을 볼 때마다 모든 나무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 라는 생각이 듭니다. 뿌리는 물을 저장하고 땅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고 줄기는 목재를 만들어 주고 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만들어 주고 열매는 먹을 것을 가져다줍니다. 만약 이 세상에 나무가 없어서 사막과 같다면 사람은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성도님들 집 주변에 나무 하나를 정해서 대화도 나누어 보고 껴안기도 하고 거름도 주면서 평생 친구관계를 맺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나무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선물해 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예수님도 아낌없이 주는 인생을 사셨고 마리아와 사도바울도 아낌없이 주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들도 자식을 위해서 아낌없이 주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를 돌아다니면서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시고 가난한 자를 먹이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악령을 쫓아내셨습니다.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머리 둘 곳이 없으시면서도 가난한 백성들을 향해서 아낌없이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길을 걸어가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에서 고난받으실 것을 아셨지만 그 길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아낌없이 십자가 위해서 살과 피를 다 내주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스스로 한 알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인생을 사셨습니다.

예수님 뿐만 아니라 마리아도 아낌없이 주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마리아는 나드 향유 옥합을 깨트려서 예수님의 발에 부어 드렸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왕이 취임하려면 반드시 머리에 기름을 부어야만 했습니다. 히브리어로 메시야, 헬라어로 그리스도라는 말이 기름부음 받은 자(the anointed)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발에 기름을 부어 드렸습니다. 머리는 가만히 앉아서 세상을 통치하는 것을 가리키고 발은 세상을 걸어다니면서 생명을 살리고 섬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걸어오셔서 우리를 살리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발이 가장 귀하다고 생각해서 발에 기름을 부어드렸습니다. 우리는 보통 머리를 귀하게 여기고 발을 천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생명은 발에서 시작됩니다. 머리가 생각이라면 발은 실천입니다. 예수님은 성목요일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서로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는 하인이 주인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니까 제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여러분의 발을 씻겨 준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의 발을 씻겨주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한 것과 같이 여러분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기 전에 예수님의 발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의 발에 먼저 기름을 부어 드렸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기름을 부어드렸습니다. 옛날에는 시체를 매장할 때 기름을 발랐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죽음의 길을 걸어가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주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의 몸에 기름을 부어 드렸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백성들을 대표하는 남성 예언자가 왕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예수님에게 기름을 붓지 않으니까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어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이 행동을 통해서 스스로 여성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향해서 당신은 남성 예언자도 아닌데 왜 나에게 기름을 부었냐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대로 마리아의 헌신에 감동을 받으셨고 그녀를 진정한 예언자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마리아는 평생 모은 비싼 기름을 아낌없이 부음으로써 예수님을 기름부음 받은 자로 만들어 드렸고 발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예수님의 섬김을 축복해 드렸고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면서 그의 몸에 기름을 부어 드렸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인생을 산 사람은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태어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최고의 지파 중 하나인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고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율법으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사도바울은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서 최고의 대학에서 공부했고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난 인생에서 결격사유가 전혀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겼습니다. 사도바울이 개척한 초대교회에는 유대 그리스도인과 헬라/로마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전통이 유대교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1등 교인으로 자처하였고 헬라/로마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 전통을 잘 몰랐기 때문에 2등 교인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바울은 헬라/로마 그리스도인들의 권익을 위해서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유대인/헬라인, 남자/여자, 주인/종 사이에 아무런 차별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정통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모든 특권을 다 버리고 헬라/로마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주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최고의 상류층에 속한 사람이 낮은 자들의 권리를 위해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아낌없이 주는 그런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가롯 유다는 마리아가 비싼 나드 향유 기름을 예수님의 발에 붓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향유를 300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항상 너희 곁에 두고 그들을 돌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 가장 가난하고 힘든 분은 죽음을 앞에 둔 예수님이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가장 가난하고 힘든 분이셨기에 마리아는 옥합을 깨트려서 주님을 축복해 드렸습니다. 가롯유다처럼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자고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처럼 지금 가장 가난하신 예수님을 위해 거룩한 낭비를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그를 향해서 이렇게 물으셨을 것입니다. 

“유다야, 너는 바른 말만 할 줄 알았지 언제 한번 마리아처럼 뜨거운 사랑의 낭비를 해 본적이 있었느냐”

물론 우리는 아껴야 하고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능하면 과소비를 줄이고 환경을 위해서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끼고 절제하는 이유는 꼭 필요한 순간에 뜨거운 사랑의 낭비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낭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뜨겁게 사랑하기 때문에 낭비할 수 있고 아낌없이 줄 수 있습니다. 마리아와 사도바울처럼, [아낌없이 주는 나무] 처럼 뜨거운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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