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형제증오와 유다의 회개

사순절 두번째 주일 / 2월 네번째 주일
사순절, 형제증오와 유다의 회개
창세기 44:27 – 34
정해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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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끝난 평창 겨울 올림픽에서 인상 깊었던 몇가지 장면이 있었습니다. 캐나다 하키 선수 출신인 세라 머리 (Sarah Murray)가 남북한해외 여자 하키 단일팀 감독을 맡았는데 나이도 젊은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인상이 좋고 차분하고 침착하게 선수들을 잘 이끌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한 번도 이기지는 못했지만 모든 경기가 끝나고 나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면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여자 스피드 스케이트 팀추월 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이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을 보았습니다. 서로를 밀어주면서 3명이 같이 들어와야 하는데 2명은 일찍 들어오고 1명은 늦게 들어왔습니다. 같이 뛰는 3명도 마음이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은 한국 여자 컬링 팀이 은메달을 딴 사진입니다. 예전에 캐나다 시골에서 사는 분에게 캐나다는 겨울이 긴데 시골 사람들은 무엇하면서 지냅니까? 하고 물어보았더니 젊은이들은 하키를 하고 나이든 사람들은 컬링을 하면서 겨울을 보낸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캐나다처럼 컬링을 잘하는 나라들이 많지만 한국은 컬링을 시작한지 몇 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한국 여자 컬링팀이 결증에 진출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4명 선수 모두 경상북도 의성 출신으로 서로 자매이자 친구이자 고등학교 동기들입니다. 성도 모두가 김씨라서 해외에서는 Team Kim 이라고 부릅니다. 한동네에서 자매처럼 자라서 그런지 눈빛만 봐도 서로 잘 알기 때문에 호흡이 잘 맞아서 이런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함께 일하면 좋은 결과를 내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면 너도 망하고 나도 망하고 다같이 망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말씀을 통해서 형제사랑과 형제증오의 결과가 얼마나 큰 차이를 일으키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형제들이 서로 미워하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어쩌면 형제들이 서로 미워하는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피를 나눈 형제들이 서로를 미워할까요? 아마도 그것은 형제가 나와 가장 가깝고 많은 것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은 나와 상관없기 때문에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형제는 나를 잘 알고 같은 집안이고 부모의 사랑과 재산을 가지고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가까운 형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서로 미워하기도 합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들 사이에서 가인과 아벨을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좋아하시니까 가인이 화가 나서 동생 아벨을 죽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맨 처음 가족부터 형제살인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가인은 부모를 떠나 한평생 떠돌아다니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2장부터 시작되는 아브라함 가족 이야기를 보면 여기에서도 형제들이 서로를 미워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자식이 없던 아브라함은 나중에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고 사라를 통해서 이삭을 낳았는데 어머니가 다른 이스마엘과 이삭은 누가 아버지의 상속자가 되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경쟁하였고 마침내는 서로 갈라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뒤를 이어서 이삭이 족장이 되었고 이삭은 리브가를 통해서 쌍둥이 형제 에서와 야곱을 낳았는데 에서와 야곱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서로 경쟁하면서 세상에 나왔고 장자권을 누가 갖느냐 하는 문제 때문에 20년을 원수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에 나오는 형제간의 갈등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를 꼽으라면 야곱의 형제들이 겪었던 갈등 이야기를 꼽을 수 있습니다. 야곱은 여러 부인들 사이에서 12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가장 사랑하는 부인 라헬에게서 낳았던 열한번째 아들 요셉과 열두번째 아들 베냐민을 가장 사랑했습니다. 아버지가 요셉을 사랑하니까 형들이 질투가 나서 요셉을 이집트로 가는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고서는 아버지에게는 요셉이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 일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을까요? 요셉을 편애한 아버지 야곱에게도 책임이 있고 배다른 동생을 상인에게 팔아넘긴 형들에게도 책임이 있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니까 그것이 좋아서 맨날 좋은 옷 입고 형들이 나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 요셉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어쨌든 야곱의 형제들은 요셉을 미워하였고 요셉은 그 결과로 이집트로 가서 노예생활과 감옥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꿈이 많은 사람이었고 총명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어서 이집트의 왕 바로의 꿈을 잘 해석해서 이집트의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서 야곱의 아들들은 식량을 구하러 이집트로 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막내아들 베냐민은 집에 남겨두고 나머지 10명만 이집트로 보냈는데 요셉은 이집트에 온 형들을 알아보았지만 형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성공했기 때문에 형들에게 복수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화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형들이 옛날 자기를 팔아넘긴 것을 후회하고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옛날 그대로인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요셉은 자신과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동생 베냐민, 아버지 야곱이 요셉 다음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막내아들 베냐민을 대상으로 형들을 시험했습니다. 형들이 배다른 동생 베냐민을 하찮게 여기면 형들은 옛날과 똑같다는 것을 가리키고 형들이 베냐민을 아끼면 형들이 과거 행동을 회개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요셉은 형들을 첩자로 몰아서 한명은 여기 남아있고 나머지 9명은 고향으로 가서 고향에 있는 베냐민을 이곳으로 데리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고향으로 가서 막내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이집트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의 짐에다가 은잔을 몰래 집어넣고는 은잔이 없어졌다는 이유를 대서 형들의 짐을 다 조사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베냐민의 짐에서 은잔이 나왔습니다. 요셉이 베냐민은 이집트의 종이 되고 나머지 형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유다가 요셉에게 이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이 아이가 돌아오지 않으면 아버지는 곧바로 숨이 넘어가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저희들이 백발이 성성한 아버지를 돌아가시도록 만든 꼴이 되고 맙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그 아이를 안전하게 집으로 다시 데리고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저 아이 대신에 소인을 주인 어른의 종으로 삼아 여기 머물게 해주시고 저 아이는 형들과 함께 돌려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 아이 없이 제가 어떻게 아버지의 얼굴을 뵙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의 아버지에게 닥칠 불행을 제가 차마 볼 수 없습니다.” 요셉은 넷째 형 유다가 베냐민 대신 자신이 이집트의 종으로 남겠다는 말을 듣고 형들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요셉이라는 것을 밝히고 형들과 화해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유다가 회개하고 변한 것은 아버지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식을 편애했습니다. 모든 원인이 아버지의 편애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늙으신 아버지를 가장 먼저 걱정했습니다. 자식을 편애하는 아버지가 밉다고 해서 아버지가 사랑하는 요셉을 내버렸는데 이번에는 막내아들까지 내버리면 아버지가 더 이상 이 세상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유다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도 망하고 그런 아버지를 보는 자식들도 망하게 된다는 것을 유다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가족/형제끼리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고 복수하면 가족이 다 망한다는 것을 유다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네번째 아들 유다가 아브라함/이삭/야곱의 뒤를 이어서 믿음의 족장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왜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가 믿음의 맏아들이 되었을까요? 왜 유다의 혈통에서 다윗이 나오고 그의 후손들인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의 정신적인 주인이 되었을까요? 서로 배다른 형제들을 품어주고 용서하고 회개하는 넓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유다는 믿음의 족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과거를 회개하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배다른 동생을 사랑하는 유다를 보시고 이스라엘 12지파의 운명을 그에게 맡기셨습니다. 형제를 품을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고 믿음의 족장/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순절을 맞이해서 우리들도 혹시 형제를 증오하고 미워하지는 않았는지 우리들 자신을 돌아보면서 유다와 같이 모든 가족들을 품어주는 큰 믿음의 조상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Lent, brotherly hatred and repentance of Judah
Genesis 44:27 – 34

Sir, our father then reminded us that his favorite wife had given birth to two sons. One of them was already missing and had not been seen for a long time. My father thinks the boy was torn to pieces by some wild animal, and he said, “I am an old man. If you take Benjamin from me, and something happens to him, I will die of a broken heart.” That’s why Benjamin must be with us when I go back to my father. He loves him so much that he will die if Benjamin doesn’t come back with me. I promised my father that I would bring him safely home. If I don’t, I told my father he could blame me the rest of my life. Sir, I am your slave. Please let me stay here in place of Benjamin and let him return home with his brothers. How can I face my father if Benjamin isn’t with me? I couldn’t bear to see my father in such sorrow. (Genesis 44:27-34)

The book of Genesis tells us that Judas and his brothers, who saw his father love Joseph more than them, were jealous and sold Joseph to slavery. But Judas later repented and protected Joseph’s brother Benjamin. Although his father Jacob had always favored his children from old times, Judas tried to understand his old father and to reconcile the family. The scripture says that Judas, the fourth of Jacob’s twelve sons, finally became the patriarch of the family after Abraham, Isaac, and Jacob. Why did Judas become the firstborn of faith? Why did David come out of the line of Judah and his tribe became the spiritual head of Israel? Judas could be the leader of his family because he had an open heart to embrace and forgive different brethren.

God entrusted Judah with the destiny of the twelve tribes of Israel, acknowledging the fact that he had repented of his past wrongdoings, cared for his old father, and protected his other brother. Today’s scripture reminds us that only those who welcome and embrace their siblings can become the agent and messenger of God. The season of Lent gives us an opportunity to look back and repent our past life. Just as Judas had worked for the reconciliation of his family, we are also called to work for the reconciliation with our family, neighbor, and nation.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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