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성령의 춤과 악령의 춤

성령강림절  여덟번째 주일 / 7월 두번째 주일
사무엘기하 6:13-19, 마가복음서 6:22-29
성령강림절, 성령의 춤과 악령의 춤
정해빈목사

 

구약성경 신명기 17장을 보면 왕의 자격에 대해서 모세가 길게 설명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서 살 때에, 주위의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당신들도 왕을 세우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지켜야 한다고 모세는 말했습니다. 첫째로 왕은 군마를 많이 가지려고 해서도 안 되고 군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이집트로 보내서도 안 됩니다. 둘째로 왕은 많은 아내를 둠으로써 그의 마음이 다른 데로 쏠리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셋째로 왕은 금과 은을 많이 모아서도 안 됩니다. 대신 왕은 율법책을 평생 자기 옆에 두고 읽으면서 자기를 택하신 주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과 규례를 성심껏 어김없이 지켜야 합니다. 마음이 교만해져서 자기 겨레를 업신여기는 일도 없고 그 계명을 떠나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도 않으면 그와 그의 자손이 오래도록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정착한 히브리 백성들이 왕을 세우지 않고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며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를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어쩔 수 없이 왕을 세워야 한다면 위와 같은 사항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당부하였습니다.

모세가 말한 왕이 해서는 안 되는 3가지는 이집트와 가나안의 왕들을 가리킵니다. 이집트 왕과 가나안 왕들은 군마를 많이 모으고 아내를 많이 두고 금과 은을 쌓아두고 백성들을 통치했습니다. 이런 사회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피라미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맨 위에 있는 왕이 맨 아래에 있는 백성들과 노예들을 억압하고 다스립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오랫동안 이집트에서 이런 왕의 억압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히브리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 가나안 왕을 따라가지도 말고 피라미드 같은 사회를 만들지도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가나안의 문화, 가나안의 종교, 가나안의 정치는 정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히브리 백성들에게 가나안과 같은 제도를 만들지도 말고 왕을 세우지도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왕을 세워야 한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백성들을 섬기는 왕을 세울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구약성경과 예언자들이 왜 가나안 문화를 닮지 말라고 반복해서 말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사무엘기하 6장은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면서 백성들과 함께 기뻐하는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당시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십계명이 들어있는 언약궤를 빼앗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언약궤를 빼앗길 만큼 블레셋 사람들은 강했습니다. 그들은 철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청동기를 사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지도력을 발휘하여 블레셋 군대를 무찔렀기 때문에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주님 앞에서 온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나팔을 불었습니다. 다윗의 부인이자 사울의 딸인 미갈은 다윗이 주님 앞에서 뛰면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를 업신여겼습니다. 다윗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에 그곳에 모인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녀를 가리지 않고 각 사람에게 빵 한 덩이와 고기 한 점과 건포도 과자 한 개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미갈이 다윗을 향해 임금님이 체통도 없이 왜 맨살을 드러내며 춤을 추냐고 흉을 보자 다윗은 “내가 스스로 보아도 천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주님을 찬양하는 일 때문이라면 이보다 더 낮아지고 싶소” (삼하 6:22) 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언약궤를 다시 찾은 것을 기뻐하며 춤을 춘 것과 모든 남녀노소 백성들에게 음식을 베푼 것을 보면 다윗이 주님을 찬양하고 백성들과 하나되는 순수하고 겸손한 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였고 체면을 따지지 않고 백성들과 함께 기뻐하였고 백성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다윗이 젊은 시절에는 백성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백성들과 동거동락을 함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나이가 들면서 범죄하였고 교만해졌습니다. 그것은 그가 모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모세의 가르침대로 군마와 아내와 금은보화를 멀리하고 율법책을 평생 자기 옆에 두고 읽으면서 자기를 택하신 주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과 규례를 성심껏 어김없이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더라면 그는 더 좋은 왕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부터 노년에 인생을 마칠 때까지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타락하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고 사람들과 동거동락하며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 다윗은 마음이 순수하였습니다. 그는 언약궤를 되찾았을 때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령의 춤을 추었고 백성들과 함께 똑같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 헤롯왕은 악령의 춤을 추었습니다. 헤롯은 백성들과 잔치를 벌인 것이 아니라 귀족들과 잔치를 벌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마가복음서 6장은 갈릴리를 통치했던 헤롯 안티파스 왕이 부인 헤로디아의 요구에 따라 세례요한을 처형하는 장면을 기록했습니다. 권력욕심이 많았던 헤로디아는 삼촌 빌립과 결혼해서 딸 살로메를 낳은 후에 이혼하고 또 다른 삼촌이자 갈릴리를 통치하는 헤롯 안티파스와 결혼하였습니다. 이 결혼은 모세의 율법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반발을 샀고 특히 세례요한은 헤롯 안티파스와 헤로디아의 결혼을 비판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이 자신을 비판한 것을 안 헤로디아는 세례요한을 죽일 계획을 짰습니다. 그의 딸 살로메가 춤을 추자 헤롯 안티파스는 기분이 좋아서 네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살로메는 어머니와 상의한 후에 요한의 목을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마가복음은 헤롯이 요한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마음이 몹시 괴로웠지만 자신이 맹세한 것과 거기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 때문에 살로메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결국 세례요한은 헤롯/헤로디아/살로메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서 권력을 탐하고 백성들을 지배하고 예언자를 죽이는 권력자의 횡포, 악령의 춤을 추는 권력자의 횡포를 고발하였습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레닌과 간디를 꼽았습니다. 레닌은 1870년, 간디는 1869년 1년 차이로 태어났고 차별과 억압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목적을 이루는 방식은 달랐습니다. 레닌은 폭력과 독재를 통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였고 간디는 비폭력 저항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였습니다. 20세기는 레닌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극좌 공산주의, 극우 히틀러 나치 정권, 1차세계대전, 2차세계대전 모두 레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폭력과 독재를 통해서 목표를 이루려는 방법은 인류를 파멸로 몰고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도의 전통 불교인 자이나교의 가르침 중에 아힘사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아힘사(ahimsa)는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과 내가 상처를 받을지언정 남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겠다는 가르침을 가리킵니다. 간디는 이 아힘사의 원리를 실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간디는 종교 간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노력하다가 극단적인 힌두교도가 쏜 총탄에 맞아 숨졌습니다. 20세기가 레닌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간디의 시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는 아힘사의 가르침은 모든 인류가 따라가야 할 가르침이고 또한 성령의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성령의 춤을 추었고 헤롯은 악령의 춤을 추었습니다. 악령의 춤을 추면 사람이 죽고 성령의 춤을 추면 사람이 살아납니다. 우리는 작년부터 지금까지 코로나로 인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요즘 델타 바이러스로 인해 4차 대유행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캐나다 온타리오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백신 접종이 이루어져 바이러스가 확신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성령강림절을 묵상하며 자연과 함께, 이웃과 함께,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며 성령의 춤을 추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군마와 아내와 금은보화를 모으고 의인을 억압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이웃을 섬기고 함께 고난을 견디며 성령의 춤을 추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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