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연약함의 힘

성령강림절  일곱번째 주일 / 7월 첫번째 주일
마가복음서 6:4-13, 고린도후서 12:7-10
성령강림절, 연약함의 힘
정해빈목사

 

미국의 비영리 재단에서 운영하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20분짜리 인터넷 강연 동영상이 있습니다.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라고 부르는 많은 강연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던 강연 중 하나가 미국 휴스턴 대학 사회복지학과 브렌 브라운( Brené Brown) 교수가 강의한 “연약함의 힘(The Power of Vulnerability)”이라는 동영상이었습니다. 연약하다는 것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교수는 연약함에 놀라운 힘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분은 연구와 조사를 통해서 자신이 연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가치있고 보람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강하고 부유하고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치있고 보람있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하고 부유하고 모든 것을 다 갖추어야 삶의 만족도와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조사해 보니 자신이 연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가치있고 보람있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연약하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삶의 만족도가 낮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연약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치있고 보람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3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용기(courage), 자비(compasion), 관계(connection)이었습니다. 자신의 약점/연약함을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고 합니다. 하지만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로 삶의 만족도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볼 때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셋째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관계(connection)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어도 나 혼자서 세상을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칫하면 독불장군이 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연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관계/연결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브렌 브라운 교수는 자신이 연약하다는 것을 알면서 동시에 용기, 자비, 관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고 보람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조사를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연약함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연약함이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약함 자체보다 연약함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연약함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수치, 두려움, 가치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수치스러워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브렌 브라운 교수는 “연약함은 불편하지만 아름다움을 준다”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연약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연약하기 때문에 겸손해질 수 있고 연약하기 때문에 자비로워질 수 있고 연약하기 때문에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고 연약하기 때문에 매일매일의 삶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연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보다 더 가치있고 보람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연구/조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가 첫번째로 읽은 마가복음서 6장을 보면 예수님이 갈릴리 고향에서 배척받으시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고 병자를 고치자 고향 사람들이 놀라며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말하며 주님을 달갑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난한 목수 집안 출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진 선입관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주님은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예수님의 연약함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외모와 출신과 배경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이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였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도움이 필요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마을을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열두 제자를 둘씩 마을로 보내서 예수님처럼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식탁을 제공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길을 떠날 때 빵이나 자루나 동전을 가지고 다니지 말고 지팡이만 가지고 다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지중해에서는 가르침을 전하고 점을 치고 굿을 하는 대신 대가와 숙식을 요구하는 순회 설교자들/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 조건없이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씀하셨고 다만 그 마을이 너희를 영접할 때만 그 마을에 머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혼자서 모든 일을 다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의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제자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 나라 사역은 갈릴리 모든 마을에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두번째로 읽은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사도바울이 자신이 십사 년 전에 세번째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의 엄청난 계시를 받았고 주님을 만나는 특별한 신비체험을 했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말에 의하면 그 체험은 너무도 환상적이어서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왜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말했는지 그 이유를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은 무당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신비체험이 많았고 고린도 교회 교인들 사이에서도 방언/예언/은사/신비체험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신비체험을 자랑하는 교인들을 향해서 신비체험을 말한다면 자신의 신비체험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이러한 신비체험을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신비체험을 자랑하지 못하도록 또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몸에 가시(질병)을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말한 가시가 무엇인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시력이 좋지 못했을 수도 있고 간질병을 앓았을 수도 있고 풍토병을 앓았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신비체험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는 것보다 연약함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는 것이 훨씬 더 크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약할 때 주님께서 나의 약점을 채워주시고 나를 겸손하게 만드시고 나의 약점을 통해 은혜를 체험하게 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진실로 우리는 연약함을 통해서 주님을 더 의지하게 되고 브레네 교수의 강의처럼 용기와 자비와 관계를 통해서 더 풍성한 삶을 살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연약함을 통해 나타남을 깨닫고 감사를 고백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미국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정현경 교수는 똑같은 제목 [연약함의 힘]이라는 책에서 소통과 연결을 중요시하는 연약한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세상에서는 강한 사람들이 남을 지배하고 세상을 주도하려고 하였습니다. 강한 사람들이 세상을 주도하면 세상이 파괴되고 거칠어집니다. 이제부터는 연약함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관계성을 가지고 함께 일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개미와 거미는 연약한 작은 동물이지만 개미와 거미들이 서로 협력하면 맹수를 물리치기도 합니다. 지배와 복종이 아니라 거미줄처럼 네트워크를 넓혀 갈 때 새로운 세상은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연약함이 부끄럽고 수치스런 것이 아니라 연약함이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하고 더 관계적으로 만들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연약함을 통해서 감사드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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