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뜻 / 서동천 목사

성령강림절 열한 번째 주일 / 8월 두 번째 주일
이 시대의 뜻 (Understanding the times)
이사야 5:1-7
히브리서 11:1-2, 29   12:1-2
서동천 목사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잘되도록 여러가지로 돌보며, 온갖 정성을 다 하시는데 반해, 이 백성은 하느님의 기대에 적절하게 반응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말씀을 거역했죠.  주전 8세기 예언자 이사야는 오늘 이사야서 본문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마나 실망하셨는가 하는 하느님의  심정과 모습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공평을 기대하셨는데, 이 백성은 약자들을 불평등하게 취급하고, 서로 싸우며 피를 흘리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정의를 기대하셨지만, 힘과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취급을 받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사회 현실을 지적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을 베풀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는데 반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할 줄 모르고 사악한 행동을 계속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 물도 주지 않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괴롭힙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아직도 무엇을 더 해 주어야 하겠느냐”고 하느님께서는 매우 날카롭게  그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 한국의 전쟁종식을 위한 서명 운동에 대해 들어 보셨습니까?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까지  한국전쟁이 계속되었는데, 1953년 7월에 휴전협정을 맺었죠. 내년 2023년이면 휴전협정을 맺은 지 70년이 됩니다.  더 이상 휴전상태로  머물 것이 아니라, 남북이 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죠. 전세계에서 최소한  1억의 서명을 받고, 캐나다에서는 적어도 1만명이 서명하도록 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이미 서명하신 분들이 계시겠지요?

우리가 왜 이런 노력과 운동을 지금도 해야 하나요?  우리 한반도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1910년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고 점령하여 강제로 한반도를 자기네 속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서 독립된 나라로 비교적 평화스럽게 살아오던 우리 백성들은 일본의 한반도 점령 이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침략자들의 지배와 억압 속에 한 많은 삶을 36년간 살았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을 억지로 전쟁터에 끌고가서 총탄받이로 이용하거나,  탄광에서 그들을 노예처럼 부려 먹었죠. 뿐만 아니라, 어리고 젊은 한국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가서 성노예로 착취해 온 상처투성이 한반도 역사를 우리는 너무도 잘 알며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눈물과 피투성이로 얼룩진 우리의 아픔은 1945년 일본이 2차 세계전쟁에서 패망하여 한반도에서 쫒겨나간 후 내일이면 77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치유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 많고 쓰린 경험은 77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우리 가운데 깊숙히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처와 찢김을 당한 우리의 역사는 1950년의 한국전쟁을 통해 더욱 곪고 폐허와 잿더미로 쌓여져 갔습니다. 3년간의 처참한 전쟁을 통해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었죠.  많은 사람들이 휴전 이후에는 남으로나 북으로 방문할 수도 없을뿐 아니라, 가족들을 만나거나, 잃은 가족을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지난 70년간 남북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 일천만 이산가족들은 여러가지 모양과 방법으로 서로 만나는 기회를 가지려고 엄청난 시간과 정성을  바쳤고,  편지를 서로 주고 받아 보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했지요. 적십자사를 통해 금강산에서 만나는 일도 있었고,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은 직접 이북을 방문해서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기도 했죠. 이외에도 남북의 기독교 대표들이 해외에서 여러 차례 만나  한반도 통일을 위해 논의를 하는 일도 있었고, 북한의 기독교연맹 대표들이 캐나다를 방문하는 기회에 이곳에 사는 한국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식사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습니다.

토론토에 사는 어느 한국분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는 이북에 두고 온 그리운 가족을   수소문하여  찾았고, 그들의 상황도 알게되었습니다. 몇십 년 만에 북한을 방문하는 기회를 갖게 되어 감격스럽게 가족이 살고 있는 고향을 찾아갔습니다.  영영 잃어버렸고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아들이  북한의 그리운 식구들을 찾아서 먼 외국땅 캐나다에서 온다니 모두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아들이 걸어오는 모습을 멀리서 애타게 기다리며 지켜보던 그의 어머니가 아들을 향해 달려가서 그를 얼싸 안으며  하시는 첫 말씀이, “보고싶은 내 아들아, 이렇게 살아서 고향에 돌아오다니, 꿈만같고 너무도 기쁘고 반갑구나!  잠시 몇주 동안만 남한에 갔다가 돌아오겠다고 말하더니, 왜 몇십 년 만에 이제사 돌아오느냐?”

침략국 일본의 한반도 강탈과 식민지화 그리고  6.25 전쟁으로 찢기고  상처투성이된 국민들, 개인들이나 가정들의 상황,  뼈아픈 경험과 기억들을 어찌 다 말로 펼쳐 놓을 수 있겠습니까?  휴전협정 이후 지난 70년 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논의는 얼마나  많았습니까?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비롯해서 여러번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남북 기본합의서와 여러가지 선언들.  희망으로 우리의 마음을 설레이게도 했지만, 또한 많은 실망을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안겨주고 있기도 합니다.

60만이 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를 건넜습니다.  40년동안 광야의 온갖 힘든 여정을 거쳐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정착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어려운 여건과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지도자를 신뢰하며 따르는 행동을 함께 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죠.

오늘의 본문 히브리서는 크리스천들이 당시 여러가지 반대에 직면해서 그들의 믿음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적대심과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당하며 사는 믿음의 식구들에게  권고합니다. 인내하며 용기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믿음의 중요한 실마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일깨워 줍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또 그렇게 경험하며 삽니다. 우리는 교회생활을 해 나가면서, 우리에게 용기를 갖게하는 대신에 실망을 안겨 주거나,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들을 이따금 접하기도 하죠.

많은 종교단체나 교회들이 교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교회를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 지금 세계적으로 확대되어가고 있습니다. 도심지를 벗어난 지역들의 인구가 급속히 줄어들고, 은퇴기에 접어드는 연령층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은 현대 사회가 제공하는 새로운 과학과 첨단의 기술, 급속히 달라지며 편리한 생활환경, 그리고 흥미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적응하기 위해 그들의 관심과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나 전통적인 믿음을 이해하고 거기에 따라 살려고 하는 경향이나 노력은 많이 약해지고 소홀해질 수밖에 없겠죠.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그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과 여건 속에서 실망스럽지만, 용기와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여전히 하느님을 신뢰하는 생활을 계속했죠.  우리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를 버리지 않고 함께해 주시는 하느님을 믿고 따릅니다.

알파한인연합교회는 지난 55년간의 목회와 믿음의 여정을 통해서 마치 홍해나 긴 광야와 같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며 지내오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촛점을 두고

계속 그의 길을 따르다 보면, 여러가지 역경 가운데서도 삶의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어려운 문제들을 초월하여 볼 수 있는 힘을 줍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하시는 일들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가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시는 미래의 기
쁨도 보게 해주십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삶이란 우리 자신들과, 믿음의 공동체, 그리고 우리의 세상을 변화시키는 여정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변화가 하나의 위협이 될수 있지만, 희망을 갖고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용기를 줍니다. 그리고 믿음을 갖고 살려는 사람들에게는 예상치 못하는 새로움을 발견하는 기쁨을 갖게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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